"나는 강에서 낚시하는 어부와 같다.
무엇이 잡힐지 모른다.
내 그림은 항상 그렇게 시작된다."
미셸 들라크루아 전시회에서 본 이 문장은 임신 중 어떤 아이가 내게 와줄지 상상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엄마를 닮았을까, 아빠를 닮았을까? 어떤 걸 좋아하고, 무얼 싫어할까? 작은 생명이 내 안에 자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온통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찼다. 마치 강가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물고기를 기다리는 어부처럼, 나는 미지의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삶은 때로 예상치 못한 파도가 덮친다. 그리고 한참을 멈추게 한 또 다른 마음.
'두 번의 유산'
처음 '유산'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다들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흔한 일이라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은 놀랄 정도로 나는 금방 회복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안의 강물은 고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건강하게 내 곁에 와준 딸을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첫 번째였을지, 두 번째였을지 모를 그 아이들은 아장아장 걷는 모습도, 초등학교 입학식도, 들뜬 첫 출근길도, 그 어떤 것도 함께 나눌 수 없음을 지금의 딸이 내게 와주어 알려주고 있었다. 너처럼 태어났다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어떤 목소리로 나를 불렀을지, 자꾸만 그려보게 된다. 그 작은 상상들이 가슴 한편에 아련한 흔적처럼 남아, 내가 놓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주었다.
어부의 마음이 이렇게 슬플 수도 있구나. 무엇이 잡힐지 모른다는 기대감 뒤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거나, 잡았다가 놓쳐버리는 아픔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삶은 예측할 수 없는 강물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들라크루아의 그림 앞에서, 이 가늠하기 힘든 마음들을 살포시 달래본다. 그의 강렬한 색채와 깊이 있는 그림 속에서,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고요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