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밤톨동화

무심함의 축제

by 밤톨맘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무의미가 난무하는 세상이라 다행이다.' 이 생각은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난 뒤 더욱 선명해졌다. 짧은 문장들로 가득한 이 얇은 책은, 육아라는 똑같은 일상 속에서 잠깐 숨을 쉴 수 있게 해주었다.


육아를 하는 부모에게 공공장소, 특히 식당처럼 좁은 공간은 늘 조심스럽다. 아이가 어쩌다 울기라도 하면, 남편과 나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쩔쩔맬 수밖에 없다. 주변의 시선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그날도 그랬다. 오랜만에 외식이라 들뜬 마음도 잠시,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자마자 우리는 패닉에 빠졌다. 애써 두둑이 챙겨 온 기저귀 가방은 꺼내 보지도 못한 채, 서로의 눈치를 보며 이런 말들만 급히 오고간다.


"대충 먹고 나가자. 더는 있을 수가 없겠다"


아기를 달래며 주변에 조심스럽게 눈을 돌리면, 놀랍게도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본인의 식사를 마저 하거나, 옆 사람과의 대화를 계속할 뿐이었다. 그 어떤 짜증 섞인 시선도, 불편하다는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투명 인간이라도 된 듯,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 그들의 '무심함'은 오히려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로 다가왔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무심함은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초보 엄마, 아빠야. 우리들은 괜찮으니까 식사 마저 하세요."


그날 식당에서 만난 사람들의 '무심함'의 다정함을 한껏 누렸다. 나는 그 무심함을, 마치 라몽이 그러했듯, 조용히 들이마셨다. 그날도 무심함 덕분에 남편과 나는 아이를 안은 채 조용히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육아에 지친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였다.


밀란 쿤데라가 말한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자니치게, 서로에게 사과하는 세상'이라는 문장을 곱씹었다. 사실 육아의 많은 순간이 '무의미의 축제' 같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재우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거창한 의미를 찾으려 들면 너무 힘들고, 완벽한 정답을 찾으려 하면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 어쩌면 삶의 진정한 의미는 거창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무의미'해 보이는 순간들 속에서, 그리고 타인의 '무심함'이라는 이름의 다정함 속에서 발견되는지도 모른다. 육아는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여정이지만,

때로는 이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 위로 덕분에 우리는 다시 힘을 내어 나아갈 수 있다.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자니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라몽은 떠오르는 미소를 누리지 못하고서
계속 이 천재들의 공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겸허한 그 천재들은 산책객들이 무심히 지나쳐 주는 덕분에
기분 좋게 자유를 느낄 것이었다.
아무도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얼굴을 보거나
받침대에 새겨진 문구들을 읽으려 들지 않았다.
마치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평온한 고요인 듯
라몽은 그런 무심함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거의 행복에 가까운 미소가 그의 얼굴에 떠올라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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