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밤톨동화

너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면, 내가 서 있더라

by 밤톨맘

아기를 키우는 일은 어쩌면 우리의 과거를 다시 밟아보라는 신이 주신 또다른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딸 아이 덕분에 나의 어린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한 나머지 바쁜 육아 중에도 자꾸만 친정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물어본다. ‘나는 언제 말하기 시작했어~?’라는 류의 질문이 오고 가는 요즘이었다. 친정엄마는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띠우며 나의 어린시절을 기억해내기 위해 잠시 회상에 잠기고는 한다. 부모님께는 소리만 오고가는 통화보다는 영상통화를 자주 한다. 이유는 엄마의 반짝이는 미소 때문이다. 내 딸에게서 나의 모습을 계속 찾으시는 엄마로 인해 엄마의 젊은 시절을 자주 다녀오시라는 마음에서 영상통화를 자주 걸어 드린다.


아이의 웃음 소리 하나에 친정 뿐만 아니라 시댁까지 온 가족이 한 마음이 된다. 세 가족이 타임머신을 타고 이러저리 유영하며 옛시절을 회상하기 바쁘다. 각자 기억에 남는 즐거웠던 추억, 짓궂은 추억, 심장을 쓸어 내렸던 추억들 다양하게 내려놓는다. 그리고 나는 내 기억 속, 어린시절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끄집어 내며 딸 아이에게 말한다.


“조금만 더 크면 놀이동산 가자, 휘황찬란한 퍼레이드를 꼭 보여줄게. 꿈만 같은 환상의 세계거든. 아참, 아쿠아리움도 가야지, 잠수함을 탄 듯 깊은 바다 아래에서 멋있게 헤엄쳐다니는 물고기들을 보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어. 동물원 가서 '어흥어흥'하는 호랑이도 봐야지. 책에서 보던 거랑 다르게 얼마나 큰지 실제로 보면 깜짝 놀랄거야.”


아이가 없었다면 남편과 성인 둘이서 그곳들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딸 아이에게 많은 걸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나의 행복했던 유년시절의 순간들이 오버랩 되어 무미건조했던 삶이 생기로 가득 차고 있었다. 분명 육아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함께 느끼는 이 시간들이 왜 이렇게 벅차 오를까? 딸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기쁠 수 없을 테니까.


딸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매 순간이, 나의 즐거웠던 유년 시절을 다시금 거니는 듯하다. 그렇게 추억 속을 하염없이 서성이다 문득 현실로 돌아오면, 딸의 맑은 눈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눈을 마주할 때마다, 너의 삶에도 이처럼 반짝이는 추억들을 가득 심어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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