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을 꿈꾸던, 재 속의 나에게

by 밤톨맘

어느 에세이 공모전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런 날은 왠지 울컥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8개월 된 아이가 있는 엄마에게는 그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는 내 감정의 상태와 상관없이 어제와 똑같이 돌봐야 하니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은 이번 주 내내 야근 각이라 어떤 것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어느 골방으로 찾아 들어가 남몰래 숨이라도 고르고 싶은데 말이지. 숨을 고르는 일조차 어느새 사치가 되어버린 상황이라니. 애써 아이에게 쓴웃음이라도 지어 보이며 소화도 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을 그대로 삼킨 하루였다.


으레 누구나 그렇듯, 인정받는 삶을 갈망했다. 만인의 사랑을 받는 불꽃처럼 화려하게 피어오르고 싶었지만 나는 재 속에 파묻힌,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작디작은 불씨였다. 호기로운 도전은 나의 마음 문을 닫게 만들었다. 무던히도 노력했던 시절들 앞에서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라는 사람은 상처가 계속되면 내면이 단단해지기보다는 상처에 더 취약한 사람이 되어갔다. 덕분에 먼 훗날 내가 화려한 불꽃이 되리라는 기대는 저버린 지 오래이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길은 오로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니까.


그날 밤, 생각에 잠겼다. 정말이지 화려한 불꽃이 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달려 나가는 것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었다. 돈과 명예, 이 모든 것이 뒤따른다면 나는 가장 무엇이 하고 싶은가?


제일 먼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더욱 많이 쌓아 올려 '하하 호호' 웃을 날을 많이 만드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틈날 때마다 나무 그늘이 만들어 내는 자연으로 달려가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죽는 순간까지 배움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라는 사람을 탐구하여 나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 그것이 나의 기준, 행복의 정의이다.


그러면 나는 절망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도 누리고 있는 것들이었다. 비록 양과 질이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도 여전히 내가 온 마음, 온 정성 다해 가꾸어 나가면 될 일이었다. 불꽃이든 불씨든 둘 다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다. 단지 형태만 다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뜨거운 열기를 간직하고 있냐는 것이다. 그리하여 적절한 바람을 통한 산소 공급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너무 거센 바람에는 불씨가 완벽히 꺼질 수 있으니 조심하며 내 안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게 잘 살피면 될 일이었다. 『불꽃과 재 속의 작은 불씨』는 끝내 꺼지지 않는 희망을 담고 싶어 써내려 간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음이 어지러운 날에는 그 책을 다시 꺼내든다. 다시 내 불씨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에 꼭 쥐어본다.


설령 내 모든 글이 그저 혼자만의 끄적거림으로 끝날지라도, 단 한 사람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그러니 호기로운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눈 감는 순간까지 덕업일치는 결국 나의 것이 아니었다고 아쉬워할지언정, 한탄할 새는 없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맛보고 즐겼으니 유한한 삶의 메커니즘을 이 정도면 충분히 이해한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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