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안아 들고 잠이 들 때까지 ‘흔들흔들’ ‘토닥토닥’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는 온몸에 힘을 쫙 뺀, 말 그대로 이완의 순간이 된다. 그 축 늘어진 작은 몸이 내 살갗에 닿는 촉감은 어떤 말로도 다 담아낼 수 없다. 그런 아이를 재우다 문득 다짐하게 된다. 언제나 너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겠다고. 지금처럼 내 품에서 마음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어떤 가면도, 어떤 역할도 기대하지 않을 테니 내 곁에서는 오롯이 너라는 사람으로 있어주기를 바라본다.
그 다짐 끝에는 어김없이 찡한 마음이 함께 따라온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 했던가. 엄마가 된 순간 나는 점점 겁쟁이가 되어갔다. 산책길에 만난 강아지가 유모차에 탄 아이 쪽을 지켜보거나 다가오기만 해도 나는 온몸에 가시를 뿜어내며 방어자세를 취한다. 몸집 큰 개들이 무섭게 짖어대도 우리 딸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매번 나 혼자 지레 겁을 먹는다.
‘아, 이 아이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구나.’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는 딸에게 세상은 그저 무해한 곳일 뿐이다. 이게 맞다. 내가 그랬듯 세상이 무서울 것 하나 없어야 한다. 한때 불사의 존재라도 된 듯 범죄가 들끓는 마이애미 도시를 깜깜한 밤 속에서도 누비던 나였다. 그게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나이가 든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내 딸도 그래야 한다. 내 딸이 겁쟁이가 되는 건 원치 않는다.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날 밤, 나는 긴 여정을 혼자서 떠나야 했다. 내가 항상 넓은 세상을 누비기를 원했던 엄마가 말을 걸어왔다. 위급상황 대처법을 영어로 말해보라고 말이다. 설사 영어로 전혀 관련 없는 말을 내뱉을지라도 엄마는 어떤 것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엄마의 단호한 얼굴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는 그 넓디넓은, 총기 소지가 되는 미국 땅으로 가는 딸의 걱정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할머니는 어디 용하다는 점집에 가 내가 미국에서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을지 물어보셨단다. 엉뚱하면서도 과한 상황이 웃겼지만 아이를 낳아보니 딸과 관련된, 그 어떤 것은 절대 과하지 않았다.
품 안에 든 내 자식을 보며 이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딸이 아직 위험한 세상이 아닌 내가 만든 소우주 속에서 안전하게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딸은 언제까지나 내가 만든 소우주 안에서만 갇혀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엄마가 그랬듯, 이 아이 또한 자신의 삶을 영위하도록 놓아주는 것이 부모가 해내야 할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아마 제일 어려운 과업이 될 테지.
네가 날아오를 때, 두려움보다 설렘이 먼저이기를. 혹여 날개가 부러지더라도 절망 섞인 울음을 혼자 토해내지 않기를. 엄마에게도 그 다친 날개를 꿰맬 기회를 주기를. 그리고 너만의 온기를 간직한 품이 여전히 이 자리에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