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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Oct 24. 2021

결국, 내 것이 아닌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장이 되었다 6

1층 식당, 2층 카페, 3층 스테프 숙소, 4층 루프탑과 각 층을 연결하는 계단실까지 각 층마다 전혀 다른 콘셉트로 진행하는 리모델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문적인 지원과 실무를 덜기 위해 업체를 선정하였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결과물을 얻으려면 그야말로 '방심은 금물'이었다. 견적서에 적힌 금액을 훌쩍 뛰어넘은 것은 당연한 전개처럼 펼쳐졌고 전기 콘센트 위치를 분명 벽면에 함께 표시까지 하였으나 그 자리 그 위치에 콘센트는 있지 않는 등의 마지막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일들의 연속이었다. 

3월부터 스테프들과 정기적인 모임으로 시장조사와 관련 아이템 회의를 이어나갔다. 동시에 2월부터 싹이 트는 마늘밭에는 잡초들도 함께 올라와 새벽과 저녁에는 풀 뽑기도 해 나갔다. 이제야 밝히지만, 나의 본업은 농부다. 700평에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한지형 마늘 농사를 지으니 잡초 뽑는 것이 최대의 농업 과제였다. 그 와중에 외식업 사업자 등록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한 온라인 위생교육과 참고할만한 외식업 선배님들의 노하우와 식견을 담은 책을 보며 공부도 병행하였다. 거의 24시간 on 상태였다. 눈 뜨면 집 옆 밭으로 가서 풀을 뽑고 스테프들과의 모임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나 기다리는 잠깐의 틈에는 책을 보고, 스테프들과의 모임이 없을 때는 리모델링 현장을 점검하고 틈틈이 실장님, 공사 관계자들과 소통하였다. 책은 보고 나면 쉽게 떠올리거나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려워 밤에는 다 읽은 책들은 블로그에 요약하거나 떠오른 생각들을 함께 기록하였다. 어느 방향으로든 횟수를 더하다 보면 관성이 생기는 것 같다. 당시의 일을 복기하며 적는 이 순간에도 저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해냈을까 싶지만 체력이 부치는 것과 시간이 촉박한 것 말고는 큰 불편함을 못 느꼈다.  물론 체력과 시간이 가장 큰 불편이기는 하지만.



마음을 채우는 한끼, 안동식당

2021년 6월 14일, 마음을 채우는 한끼_안동식당의 문을 열었다. 주방 동선, 테이블 배치부터 그릇 선정까지 두드림 프로젝트에 참여한 4명의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낄낄 거리던 순간과 삐그덕 거리는 충돌, 다시 의기투합하는 장면 등 대성한 스타트업의 스토리 즈음은 넉넉히 채울 이야기들을 쌓아가다 마침내 '꿈의 실체'를 만났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대상을 막상 대면하였지만 기대와 달리 엉성하고 어설펐다. 각오하는 것과 직접 부딪히며 감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임을 절절히 실감했다. 누구 하나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누구와도 협력하고 있지 못했다. 중심에 서서 구심력을 일으켜야 하는 나는 끈기, 뚝심, 아량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하였다. 우리들 각자는 청년이라 부르기에 애매한 나이만큼이나 새로움을 다루는 자세도 애매하였다. 경험에 기대어 자기만의 뇌피셜로 낯선 시도를 경계하거나 시도를 하더라도 안 될 만큼의 인풋만 투입하였다. 그 시기 우리들은 너무 오래 주저앉아있어 스스로 일어나는 법도, 손을 내민 사람의 손을 잡는 법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첫 번 째 스테프와 같이 갈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가오픈 기간이 종료된 마지막 날이었다. 크든 작든 이미 오랜 기간 다른 단체와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어쩌면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르게 이해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나는 '배려'라는 '리더의 품격'을 흉내 내느라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잘못된 결과에 대한 자책으로 내뱉는 말이 아니다. 정말 그럴싸한 리더가 되고 싶은 나의 욕구만 있었다. 무언가를 함께 도모할 사람을 모으고 해 나가다 얼마 가지 못해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으니 자기 평가를 할 수밖에 없고 해야만 했다. 원망과 배신감을 걷어내고야 내가 보였다. 나는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존중한 것이 아니라 나의 아량을 드러내는 대상으로 접근하였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 8월의 그 밤이 아니었다면 나의 본질적 문제는 제쳐두고 내내 그 스테프를 나쁜 사람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8월의 수요일 밤, 무대의 주인공으로 섭외한 그가 짐을 챙겨 떠났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막장 드라마가 연출된 시간을 지나고서야 두드림 프로젝트의 제안이 '당찬' 일임을 알았다. 그때만 해도 남편이 훌륭하다고만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기회를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는 아량이 넓은 사람. 그와 함께하는 조력자로서 내가 누군가의 삶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여한다는 데에 약간의 자아도취마저 있었다. 너를 위해 차린 밥상을 걷어차버리는 무례한 사람들이라 생각을 정리해갈 무렵, 인도의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돈 많은 부자에게 가난한 친구가 있었다. 가난한 친구는 돈 많은 부자에게 늘 돈을 빌렸으나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부자 친구는 가난한 친구에게 "자네는 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가"하고 물었다. 가난한 친구는 "자네는 이미 값을 받았지 않은가. 나에게 돈을 빌려줄 때마다 우쭐함을 가지지 않았는가. 나는 자네에게 돈을 받았고 자네는 나에게 우쭐함을 받지 않았는가." 오래전 읽은 명상집의 한 대목이 죽비 내리치듯 내 머리에 꽂혔다. 

남편에게 리모델링과 꿈이라는 거창한 제안을 한 것, 남편이 자신의 꿈을 답하지 못하여 다른 이의 꿈을 데려온 것, 구원하듯 누군가에게 손을 내민 것. 이미 태생부터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결말이 정해져 있었다. 그 결말을 나만 모르고 있었거나 모른 척한 것이다. 


2021년 8월 31일. 

모든 허영이 사라지고 나는 남았다. 한바탕 꿈을 꾼 듯 죄다 사라지고 오각형 건물에 나만 남았다. 내가 마주해야 할 꿈의 실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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