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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Oct 24. 2021

모르면 배운다

만만해보이는 사람의 특권_누구든 가르쳐준다


귀인貴人


사전적 의미로는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을 의미하지만, 흔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는 '자신의 삶에 유의미하거나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겠다.



안동식당 시즌2는 혼자서 운영할 수 있는 체계로 재정비하여 다시 문을 열겠다고 하였지만! 모든 것을 갖출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갖춘 후에 시작해야한다면, 아마 내년에나 되어야 겨우 문을 열 수 있었거나, '사업성 없음'으로 판단하여 출구전략을 세웠을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벌인 일에 대해 한 단락을 지어야 과정의 완성을 통해 성공과 실패를 얘기해볼 여지가 생긴다. 물러서지 않을 거라면 직접 부딪히며 배워나갈 수밖에 없었다.


안동식당 시즌2 오픈한 첫 번째 토요일, 포스기를 수거하러 오신 업체 사장님께서 식사를 하셨다. 사장님 외에 1인분을 팔았고, 그 날 두 번째 손님인 셈이었다. 식사를 마친 사장님께 식사가 어떠하셨는지 물어보았다.

잘 먹었다고 대답하시는 사장님의 표정이 어딘가 석연찮아 보여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사실대로 말씀해주실 것을 재차 부탁드렸다. 그제야 '비주얼은 좋으나 음식이 전반적으로 손맛이 없고, 자신은 또 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혹평을 해주셨다. 이유를 물으니 입맛은 모두 다르겠지만, 손맛에서 나오는 맛이라기 보다 소스로 맛을 낸 것이 싫다고 하셨다. 사장님은 나름의 솔루션으로 김밥, 돈까스 메뉴를 제시하기도 하셨지만 결과적으로는 폐업을 권하셨다. 물론 사장님의 조언에 너무 큰 힘을 실어 생각하지 않도록 '주변 동네분들의 반응을 살펴봐야겠지만' 이라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길게 생각하지 마시고, 2~3개월 안에 정리하세요."


너무 심한 말을 해서 충격받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사장님에게 솔직하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드렸다.

이런 말들은 대게 '이런 말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기분나쁘게 듣지 말고'라는 서두로 시작한다. 그리고 끝은 '너무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로 이루어진다. 포스기 사장님의 냉정하고 솔직한 평가는 새겨들을 가치가 충분했지만, 그 순간은 도저히 영업을 계속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제 어쩌나, 역시 하지 말아야했다는 등의 마구 구겨넣고 겨우 닫은 가방의 지퍼가 터지듯 웬갖 종류의 불안이 튀어나왔다. 그 날은 결국 가게문을 닫고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서 조용히 뒷정리와 청소를 했다. 그러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남편에게 오늘 늦을 것이라는 말을 전하려 연락했다가 포스기 사장님이 쏘아올린 불안의 공을 엉뚱한 곳에 집어던졌다. 아무 것도 해결하지도, 어떤 것도 전달하지도 못한 어처구니 없는 전화를 끊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내 손맛에 자신이 없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주방을 담당하던 동업자가 내 음식에 비난에 가까운 혹평을 했었다. 가정법이긴 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다는 표현은 다시 생각해봐도 지나쳤다. 그러다보니 나의 취향이나 미식은 주변 소수와만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독특하다는 평가가 '너는 다수와 공감할 수 없어'라는 낙인같았다.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태도로 준비한 첫 주는 흉내내기로 채워졌다. 업소용 소스들로 모두 맛을 냈고. 포스기 사장님은 그 점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가 내놓은 평가와 조언이 평균값을 획득할만한 평가인지, 시장과 상권분석이 반영된 조언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의 말을 통해 새로운 위치에서 현상을 보게 된 것'이다.


내가 나를 믿으려면, 나 자신이 납득할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시판 소스에 의존하지 않고, 대용량 조리 레시피를 갖추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한식, 일식 등 분야와 상관없이 '레시피'로 검색해서 나오는 책들은 빌려 읽었다 (읽고 있다.) 물론 두고 볼 가치가 있는 책 구입도 병행하고 있다. 배민아카데미에서 음식점 운영자들을 위해 업데이트 해주는 대용량 조리에 관한 영상도 수업에 출석하는 마음으로 챙겨본다. 최종적으로 배운 것들을 20인분으로 수정 계량하여 만들어 본 뒤, 가족과 손님들의 반응을 살펴 최종적으로 안동식당 레시피북으로 확정 기록한다.


마치 짠 듯처럼 두 번째 토요일에 그 손님이 방문하였다. 정상적으로 영업을 종료하고 투자비가 아까워 어떻게든 써먹으려 놔둔 '6구 가스그릴'을 주방에서 빼기 위해 정리 중이었다. 그릴이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 난감해 하던 찰나, 두 번째 귀인이 나타났다. 우리 식당 앞 가게 사장님 아들이었다. 그는 잠실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시즌1 때, 우리 식당을 이용하며 투자 대비 음식 가격이 낮게 책정된 점, 객단가가 낮은 점, 상권이 열악하여 힘들겠다며 많은 걱정을 해주었다. 또한 음식이 맛있다며 시래기국을 어떻게 만드는지 등의 레시피에 관해 물었다. 당시에는 잠실 사장님의 행동을 보며 경계를 했다. 레시피를 무단으로 모방하여 자신의 가게에 판매하려는것이 아닌가 했다. 

경계의 대상이 귀인으로 평가가 완벽히 뒤집힌 이유는 아래의 사정들 때문이다.

첫 째, 무거운 그릴을 창고로 옮겨주었다. 둘 째,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내놓지만, 손님들이 알아주지 못하는 상황ㅡ즉, 매출이 따라오지 않으면 노력에 대한 회의감이 들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매출이 따라오지 않으면, 노력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요."


이어서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재료비가 낮은 면요리의 레시피를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또한 이에 관해 어떤 금전적인 요구도 하지 않았다. 안동식당을 준비하고 운영하면서 동업자와 주방운영과 레시피 공유 문제로 분쟁이 잦았다. 레시피 공유나 그에 대한 수정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여 의사 소통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먼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선뜻 필요한 레시피가 있다면 얼마든지 제공하겠다는 잠실 사장님의 제안은 의아스럽기까지 했다. 식당 창업컨설팅부터 레시피가 거래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상으로 제공해도 되는 것인지 물어봤다. 사장님은 상관없다고 하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점이 신선했던 것이 아니라, 대부분 폐쇄적인 구조로 자기 식당만의 레시피가 전수되고 거래되는 요식업 환경에서 자신이 보유한 레시피에 관해 대가없이 공유하는 태도가 신선하였다.


잠실 사장님이 귀인인 마지막 이유는, 그의 조언을 들으며 내가 망설이던 생각을 시도하기로 결심했다는 점이다. 장날은 유동인구가 많고, 이 유동인구들의 특징은 재래시장의 물건들을 사기 위해 오는 목적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 골목은 채소, 생선, 과일, 약초, 민물고기 난전이 들어선다.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소비자 뿐만 아니라, 난전을 펴기 위해 이곳에 오는 상인들 또한 안동식당의 잠재적 고객이다. 이들의 특징은 우리 가게에 머무는 체류시간이 짧다는 점이다. 상인들은 판매대를 비울 수 없거나 비우더라도 그 시간이 길 수 없다. 이 거리는 간단한 간식거리가 없다. 시장 구경의 재미요소인 간단한 간식거리가 없기도 하고, 맛깔나는 반찬이나 포장된 음식이 없다. 그래서 장날을 겨냥한 길거리 음식도 되며 포장해가면 한끼 식사 대용으로 할 만한 음식을 판매하려고 하였다. 시즌2에도 그러한 메뉴가 필요하다고 분석하여고 있었지만, 요일별 정식메뉴를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데에 좀 더 집중해야 했다. 그래서 머릿 속에 구상 중이던 메뉴_판매방식을 더는 지체하지 말고, 일단 시도하면서 구체적인 사항들을 개선해나가기로 하였다. 떠난 손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시즌1의 동업자의 의견은 일리가 있으나, 이 점이 두려워 신메뉴를 출시하거나 적극적인 판매방식을 펼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애석한 것은 맛이라는 것은 '맛집'이라는 보편성을 가지는 것 같지만, 분명 감각에 속하는 개인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개발자인 우리 입맛에는 맞더라도 막상 손님들의 반응은 별로일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얼개가 보이는 개발은 현장 피드백을 통해서 수정 개선해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떨어져나가는 손님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체된 상태를 넘어서고 도약을 위해 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지난 3주차 영업 마무리를 하며 새롭게 적용한 메뉴들의 반응을 정리해보았다. 퇴근길 저녁배송의 피드백은 '밥은 없어도 된다'는 내용이 많았다. 가정에서 반찬을 신경쓰지 않기 위해 주문하는 유형이 대다수이므로 밥은 집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락으로 정식을 판매하는 상품과 가정으로 배달하는 정식의 구성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가정으로 배달하는 '퇴근길 저녁밥상'은 밥을 빼고 주메뉴와 반찬을 정량보다 더 넣기로 하였다. 또 반조리된 상태의 밀키트 형식을 적용해보았다. 닭갈비는 양념에 재워 필요한 채소들을 넣어 구성하였고, 잡채는 후라이팬에 볶기만 하면 되는 형태로 판매하였다. 가격은 시중에 판매되는 밀키트 제품의 용량과 가격을 조사하여 반영하였다. 신선도와 자극적이지 않은 맛은 긍정적이며, 안동식당 매출 기여도 만큼이나 수익이 남길 수 있는 구조가 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금요일이었다. 장날로 어수선한 가운데 점심 장사를 얼추 마무리 해가던 중 세 번째 귀인, 청년 손님이 오셨다. 지난 번 단체손님으로 와 혼자 단체손님을 대하느라 진땀 빼는 나를 보고, 함박 스테이크 조리 방법에 대해 알려주려 일부러 짬을 내어 방문했다고 하셨다.

손님의 조언을 듣고, 그제야 책에서 봤던 내용이 완벽히 이해가 되었다. <당신의 보통에 맞춰드립니다>의 한 구절 중, 함박스테이크를 보온밥솥에서 꺼내다 모양이 망가져 미트볼로 바꿨다는 문장이 나온다. 당시 이 문장을 읽으며 도무지 머리 속에 그려지지가 않았다. 소스까지 한 번에 넣어놓으면 질척해서 맛이 없을 것이고 식감이 눅눅할 것 같았다. 청년 손님의 조언을 듣고야 그 문장이 완벽히 이해되었다.


"아! 그렇군요"


청년 손님은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며 그 밖의 다른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였다. 비까지 오는 궂은 날씨에 외근 중에 일부러 짬을 내어 방문하신 청년 손님. 일종의 측은지심이거나 참견이 적극적은 행동으로 이어졌고, 나는 호의를 왜곡없이 받아들였다. 


세 분 손님의 조언들은 선을 넘은 행동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는 시점으로 삼았다. 물론 모든 말들이 내게 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약인지 독인지 구분하는 몫은 오직 나에게 달려 있다. 내 가게, 내 삶이라는 중심이 있어야 모든 참견은 비로소 '助言조언-도움을 주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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