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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Oct 24. 2021

1도 없는 사람이 1을 만드는 방법

변방의 필살기 2

어느 날 화성에 갑자기 떨어진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않다. 어떤 작은 순간이 지금 여기로 나를 데려온 것인지, 내가 스스로 이끌린 것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남 탓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남편은 그만해도 된다고 하였지만, 나는 그만할 수 없었다. 여기에 들인 돈들은 그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와 형님이 전해준 돈으로 투자한 설비들을 인터넷 쇼핑에 실패해서 던져놓는 택배 상자처럼 대할 수는 없었다. 

요식업을 해본 이력도 조리학원 조차도 다닌 스펙이 없는 나는 어떻게든 3개월을 버텨보기로 하였다. 그러자면 몇 가지 약속이 필요했다. 이번 계약 상대는 세상에서 제일 성사되기 어렵지만, 동시에 성사될 경우 가장 다이내믹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바로 나다. 나에게 지시하는 사람도 이 상황을 굳이 지속할 어떤 이유도 없지만, 이대로 그만두었을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나다. 괜한 일을 벌여 유산을 까먹었다는 죄책감과 남편에 대한 미안함으로 스스로에 대한 좌절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3일, 7일, 21일, 100일. 물질의 본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100일이라고 하니 어떻게든 3개월을 제대로 버텨볼 목적으로 나와의 약속을 정했다.  


1. 일단 매일 출근한다

2.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다

3. 무조건 하나는 판다

4. 너무 욕심내지 않는다


1. 일단 매일 '출근'한 뒤, '몰입 노동'을 한다

무언가를 만들어 값을 매겨 파는 행위가 참 어렵다. 만드는 사람의 애착과 대중의 기댓값이 적정선을 이루어야 하는 중간값을 결정하기가 초심자에게는 매우 낯설다. 처음이니 서툴고 필요 이상의 역량이 투입된다. 따라서 과도한 노동이 투입될 확률이 높다. 본인이 투입한 노동으로 값을 매기기만 하면 대중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 그렇다고 무조건 대중의 눈높이에만 맞추면 자신을 잃게 된다. 비슷한 스펙의 주변을 참고하여 값을 정한다. 이렇게 정해놓은 상품이 문을 열자마자 불티나게 팔리면 좋겠지만, 시장은 그리 녹록지 않다. 특히 우리 식당처럼 외진 골목길은 객관적 조건에 제약이 있고, 넘쳐나는 식당들 중 하나로써 손님에게는 존재의 이유도 약하다. 고용된 직원이라면 사장과 맺은 계약 때문에 손님의 유무와 상관없이 매일 출근하면 되지만, 자영업자는 특히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가게의 자영업자라면 매일 출근하는 당위보다는 출근하지 않아야 하는 합리적 이유가 셀 수도 없이 많다. 편의점 시급보다 못한 나의 인건비를 알게 될 경우 현타를 피하기 어렵다.

약속한 영업일에 무조건 출근하여 문을 열고 닫는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과제였다. 머릿속의 갖가지 상념과 판단들이 나를 괴롭히지만 일단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식당 운영을 할 수 있는 공간적 세팅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나를 식당으로 우선 데려다 놓는 것부터가 먼저다. 그리고 출근하면 근무 시간 동안은 식당일에 집중한다. 초반에는 손님이 없는 뜸한 시간에 책을 읽었다. 로버트 기요사키 말처럼 '게으름'이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생산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식당 매출을 개선하는 노력이 급선무임에도 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내게 익숙한 고상한 수단으로 게으름을 피운 것이다. 평균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이 시간에는 식당 운영에 관한 일만으로 채운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다음날 사용할 밑반찬을 만들거나 레시피를 공부하거나 창고 정리, 건물 주변 청소, sns 계정 관리를 한다. 이렇게 노동의 시장을 집중하고 그 시간에 몰입한 결과, 초반의 어수선한 식당 분위기가 상당 부분 개선되었고 다양한 메뉴들도 시도하고 적용할 수 있었다. 

   

2. 모르면 배운다

식당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음식을 낼 때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처럼 굉장히 긴장했다. 혹시 맛이 없지는 않은지, 음식을 드시고 탈이 나지는 않을지 등등 긴장감이 괜한 염려를 불러일으키기까지 하였다. 지금은 한결 여유가 있어져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손님의 식사를 지켜보고 대화를 건넨다. 초반에는 자신이 없어 눈치를 보듯 살폈다. 그래도 꼭 질문하였다. 식사가 어떠셨는지.

의례적인 대답을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숨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대답을 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시즌 2 오픈 첫 주의 영업 마지막 날 방문한 거래업체 사장님은 2-3개월 안에 가게를 정리하라는 조언도 하셨다. 그만큼 음식 맛을 형편없게 평가하셨다. 기분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사장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물론 그날은 도저히 자신이 없어 일찍 문을 닫고, 집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서러운 마음을 터트렸으나 그분 덕분에 오픈 첫 주만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보다 두려움과 긴장감에 압도되어 내 방식은 완전히 지워버리고 시판 소스로만 맛을 채우려 하였다. 거래업체 사장님의 평가는 날카로웠다 '손맛은 느껴지지 않고 소스 맛만 느껴진다'. 음식 맛을 넘어 내가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본심을 들킨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다. 

대중적인 음식을 만들기에는 아직이 부족한 실력임을 인정하고, 내게 결여된 부분을 배워나가기로 하였다. 그렇다고 조리학원을 등록한 것이 아니다. 과한 노력이 이른 포기를 만들 테니 지금 내게 주어진 24시간 안에 가능한 배움의 방법들을 적용하였다. 유튜브 채널, 레시피 서적으로 공부해 나가며 현장의 반응으로 검증된 메뉴들은 레시피북으로 체계화하여 기록하였다. 

얼마 전, 손님들이 단체로 오셨다. 식사를 하시는 손님들은 조그마한 가게에 일행이 모여 함께 식사하고 내가 가까이에서 음식을 직접 하여 내오는 과정이 꼭  원 테이블 레스토랑 같다며 매우 흡족해하셨다. 대화 말미에는 식당을 운영한 지 몇 년이 되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지난 8월 31일에 문을 열었다고 대답하였고 생각보다 너무 짧은 운영 경력에 적잖이 놀라신 듯했다. 다행히 2-3개월 안에 폐업 신고를 할 일은 없겠다.  

   

3. 무조건 하나는 판다

1인 자영업 식당은 우리 집 큰 주방으로 사용될 수 있다. 남으면 우리 먹지 뭐.

나는 실제 우리 가족의 저녁 식사 몫으로 항상 조금 더 준비한다. 집으로 돌아가 다시 음식을 하는 것이 노동의 연장선으로 느껴져 조금 더 준비해서 내가 하는 노동의 총량을 줄이고, 저녁 준비 시간을 아꼈다. 그 덕에 아주 한산한 거리여도 다시 새 밥을 지을 수 있는 이유는 남으면 우리 집에 가서 먹으면 되기 때문이라는 선순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식당을 나와 일을 하는 이유는 조리한 음식을 팔아서 이윤을 남기려는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하나라도 팔아야 그날의 과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기껏 준비한 음식이 폐기되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음식 준비하는 시간이 아까워지고, 식당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매출은 반드시 발생되어야 한다. 배달은 수수료가 이중삼중으로 든다. 어디서든 배달료만 지불하면 음식을 받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판매자 입장에서는 매출이 커질수록 순수익이 줄어드는 기이한 결과를 받게 된다. 우리 식당은 물량이 많지 않기도 하고 시스템을 정확하게 확립하지 않은 단계이므로 현재는 매장과 포장으로만 판매 중이다. 그러다 보니 한산한 요일에는 손님이 아예 없을 수 있다. 어느 날인가 영업이 끝나가는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매장에 손님이 오지 않았다. 나는 동네의 엄마들에게 '퇴근길 저녁 배송'이라는 광고 문자를 돌렸다. 내가 사는 곳은 작은 군의 면 지역이라 일하는 엄마들의 식사 준비를 대신해줄 선택지가 희박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직접 한 음식을 포장하여 손수 배달하는 것은 이용자에게도 판매자인 나에게도 서로 행복한 서비스다. 그렇게 시작된 '퇴근길 저녁 배송'이 한 주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 날도 있었다.   



4. 너무 욕심내지 않는다

아직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대대적인 홍보는 하지 않고 있다. 큰길에 현수막을 걸거나 이벤트를 벌여 손님을 반짝 끌어올 수는 있다. 하지만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운영으로 애써 찾아온 손님을 빈 손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면 너무 죄송한 일이다. 오픈 약 3주 차 즈음되었을 때, 식당 운영의 기준점을 삼을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함박스테이크가 메뉴였던 이날, 나는 평소의 매출량을 고려해 조금 넉넉한 수준으로 준비하였으나 뜻밖의 단체 손님 예약으로 준비수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뒤이어 전화로 남은 수량조차 예약이 완료된 상황이었다. 수량이 모두 매진된 상태에 sns 계정의 '휴업 알림 편지'글을 보고 타 지역에서 식당을 찾아주셨다. 일부러 찾아와 준 걸음이 너무 고마웠지만, 여분의 음식이 전혀 없어 냉장고 속 콜라만 손에 들려 보내야 했다. 15석의 소규모 식당에 첫 단체 손님이 12명이었다. 한꺼번에 다 팔고 일찍 마쳐야지 하는 얄팍한 욕심으로 숙련되지 못한 솜씨로 단체 손님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낼 수 조차 없었다. 속절없이 점심시간은 지나갔고 내 욕심으로 남의 귀한 시간을 망쳤다. 뒤이어 찾아온 단체손님에게는 얼른 정신을 차려 원래 구상하던 대로의 메뉴를 제공할 수 있었다. 폭풍 같은 영업시간이 지나고 난 뒤, 나는 첫 단체 손님들이 오신 사무실에 떡을 사서 찾아갔다. 음식값을 덜 받고, 음료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식당을 가자고 제안한 사람은 엉망이 된 식사로 체면이 구겨졌고, 일행들은 식사를 하지 못한 채 오후 업무를 봐야 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과를 전달해야 했다. 

그 뒤로 전체 좌석의 절반을 넘는 규모의 예약은 받지 않는다. 누구라도 헛걸음하지 않도록 여분의 자리는 비워두기로 했다. 그리고 당일 만든 것을 반드시 당일 모두 소진하지 않는다. 신선하지 않은 음식을 내겠다는 뜻이 아니다. 너무 빡빡하게 여유 없는 냉장고는 나의 만족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장 가능한 반찬과 음식들을 조금 여유 있게 준비해두려 한다. 혹시라도 먼 곳에서 불현듯 왔다가 밥이 없어 돌아가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말이다.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된 한꺼번에 많이 팔려고 욕심내지 않는다. 단체손님을 실력과 상관없이 무리하게 받지 않게 되었다. 허언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경영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불에 데고서야 배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기만족을 위한 노동에 욕심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자영업을 하다 보면, 일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 진다. 중요한 자질이기는 하지만, 손님이 원하는 것인지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성찰은 할 필요가 있다. <미래 식당으로 오세요>의 저자이자 미래 식당의 운영자인 고바야시 세카이는 이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음식을 먹는 당사자는 손님이다. 손님의 기준에 합당한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어야 할 것이다. 좋은 재료와 많은 손품이 들어간 음식은 당연히 좋다. 하지만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격과 그에 따른 합리적인 적정치를 제공하려는 성찰을 멈추면 자칫 자기 만족감을 높이는 행위로만 연결되다 외부 요인들로 현타를 경험하다 보면 번아웃 상태를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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