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자를 거꾸로 하면.

글쓰기.

by Da테


어느 날 도쿄에 사는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무료 온라인 상담을 해 준다는 광고와 마주했다. 나는 주저 없이 각종 서류와 서약서를 적었다. (대충 상담을 받고 자살이나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곧 얼굴이 동그랗고 두 눈이 결백해 보이는 상담사와 매칭이 되었다. 나는 줌 화면에 비치는 내 희여 멀건 한 얼굴을 심드렁하게 바라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PMS나 생리 때만 되면 너무 괴로운 것 같은데요. 약을 처방받아먹어야 할까요?"


상담사는 긍정했다. 길고 섬세한 대화를 거칠게 축약하자면, 대충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려주셨다.


"그때만 되면 미친 듯이 글을 쓰거든요."

"네에."

"그게 어떤 글이냐 설명하면 비위 상하실까 봐 말 안 드리겠는데."

"네에."

"아무튼 약을 먹어보든지 하려고요."


상담사는 따봉을 날렸다.


나는 화제를 바꾸어 이른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때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끌어와 구역질하고 싶었는데, 상담사가 문제가 아니라 아침에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고통스러워서였다.) 사회 정의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동시에 인류의 이른 멸망을 바란다는 마음을 스스로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저질스러운 것으로 느끼는지에 대해. 파트너가 나와 오래 대화를 나눈 뒤 몹시도 슬퍼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눈을 굴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상담사가 대단히 유익하고 상투적인 몇 마디를 하는 순간 상담이 끝날 것 같았다. 그런데 상담이 끝을 달려가고 있을 때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되게 기쁘신가 봐요."

"네?"

"얼굴이 환하세요. 지금 이 이야기를 하시는데. 테 님이랑 여태껏 상담하면서 본 얼굴 중에 가장 밝아 보여요."


그때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아, 그래요.라고 멋쩍어했을까. 민망함에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을까.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은 바람에 흥분한 두 손을 꽉 쥐었을까. 어쨌거나 상담은 끝났지만 삶은 끝나지 않고 이어져서... 2026년이 되고... 이게 몇 십 번째인지 모르겠는 생리 기간이 찾아왔다가 기후 변화로 인한 폭설이 내리며 하루가 끝이 났다.


지난 삼일 간 나는 본능이 외치는 대로 글을 썼다.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유별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논픽션의 경우, 인용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었기에 일단 수어개의 글을 읽은 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멋대로 조합했기에 지금의 AI가 토해내는 오합지졸 글들과 별 다를 바 없었을 거라 사료되지만.)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창작을 한다는 것에 스스로 이견은 없었다. 이번에 쓰인 글 역시 수 십 번이 넘는 생리와 함께 쓰인 수십 개의 글들 중 하나에 불과했으니 평소처럼 완성물을 쓰레기통에 쳐 박아버리면 그만이었다.


창작에 대한 나의 카텍시스는 철저히 수지 타산에 맞게 분배되는 편이었기에 글쓰기는 결코 사치스러운 취미 활동이라는 문턱을 넘어서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대원칙 중 하나가 '절대로 학업에 영향을 주지 말 것'이었다. 글쓰기로 꺼드럭거리는 이에게 꿀밤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적은 많아도 나 자신이 글쓰기에 대해 진지해질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오로지 나 자신의 성욕을 풀 요량으로 글쓰기란 문지방을 뺀질나게 넘나들었었는데... 그것조차 다른 활발한 창작자에 비교하면 자벌레가 지구를 한 바퀴 횡단하는 속도로 글을 써 왔는데...


나는 늘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애초에 창작욕이라는 게 왜 필요한데? 어차피 아무도 읽지 않을 거고, 나조차도 며칠 뒤에는 잊어버리는 글을? 거추장스럽군. 이건 그냥 할 거 한 뒤에 닦아 쓰고 버리는 휴지 같은 거야. 불행하고 괴상망측한 성정을 타고난 벌을 나만의 방식으로 갚고 있는 거라고. 친환경적으로!


아니, 정말로. 글쓰기에는 고통이 따랐다.

가슴속에서 해독할 수 없는 고통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느낌.

그건 발화 행위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처절해지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글쓰기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글을 쓰며 느끼는 쾌락에 거짓은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글의 쓰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몇 주 전 본 글에서 누군가가 대신 답을 제시해 준 것 같기도 했다. 우선 글을 써 두세요. 의미가 없어 보여도, 성과가 없어도 꾸준히 일정 분량의 글을 쓰세요. 그렇게 실력을 갈고닦고 있으면, 당신의 인생에 경험의 화수분이 찾아올 때 유의미한 기록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 말이 맞다면. 작금의 기다림은 대관절 무엇을 깨닫기 위한 것일까?

머릿속에 기대하는 미래가 없다면, 소환하고자 하는 상상이 없다면, 이 글쓰기가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다림으로 지속되고 있는 거라면, 이 기다림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나는 무엇을 깨닫고자 이 글자들을 붙잡고 있는 걸까....


정말로, 써야 한다고?

하루가 오늘의 씀을 위한 밑간이었다는 듯이?


그런데 이번의 글쓰기는 어딘가가 달랐다. 글쓰기가 수면을 방해하는 것도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이번 경우엔 지하철에서 갑작스러운 심장의 통증 때문에 숨이 넘어갈 정도로 잠이 부족했다. 다른 일에 집중력을 분산시켜 보려고 전혀 관련이 없는 글을 읽어도, 촘촘히 짜인 그물망에 특정 낱말들이 제멋대로 걸러지며 재정렬되곤 하는 것이었다. 나의 몸이 원래 쓰고 있던 글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를 써 줘. 글자들이 아우성쳤다. 네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정확히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던지 그들의 불온한 웅성거림이 끊기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나의 글을 재인용하자면, '그의 코가 내뿜는 숨이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수십 번 썰어내고, 잘게 부수어 흔적도 없이 녹여 버렸다고 생각했던 온갖 감정들이 되살아나려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환의가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부인할 수 없었다.


나의 정신 속에서 우러나오는 환의란 정말로 눈을 돌리기가 어려운 것이어서, 나는 여태껏 복무해 온 건전하게 먹고 잠자는 것을 하찮게 여기면서까지 글쓰기에 몰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벽에 적었던 원고들이 테이블 아래로 나뒹굴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종잇조각들과 함께 바닥에 어지럽게 나동그라질 때까지 글을 일단락 짓고 나면, 그때는 안심하고 잠을 잤다. 글이 얼마나 읽히고 어떤 평가를 받는지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게 나구나. 나는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것이 나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무언가구나....


드디어 혼자 보는 일기에 기쁜 마음으로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심하고 몰가치한 글들을 멈추지 않고 써 왔다는 것.


이러나저러나, 가을조차 없어진 지구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는 것 같다가도...

쓸 수 있는 이상 살 수는 있다, 삶.


나도 누군가의 삶 위로 웃으면서 밑줄을 긋지 않았던가?



P.S. 오늘은 2월의 도쿄에 폭설이 내린다. 세상에 망할 때가 다 됐다고,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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