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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ka Feb 06. 2024

그리스에서 뭘 먹지? (호르타)

[그리스 일상] 나의 그리스식 시골 밥상 4


그리스 시골에 와서 아무리 자연친화적인 삶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길바닥에 깔린 풀까지 뜯어다 먹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풀밭 한가운데 있다. 포대 자루를 들고 어머님을 따라 공터나 길바닥 지천에 깔린 정체 모를 야생 풀들을 캐내는데 열일하고 있었다. 열심히 풀과 잡초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그 안에서 뜀박질하고 있는 메뚜기를 피하고, 열심히 줄지어 행렬하는 개미떼들을 떨어내고, 혹은 풀 사이사이에서 파티를 벌이고 있는 무서운(!) 벌레들이 퍼드덕거릴 때마다 놀라 비명을 질렀다. 바로 다음 날 점심 밥상에 오를 χόρτα (Horta; 호르타)를 위해서였다. '호르타'는 그리스에서 흔히 접해 볼 수 있는 녹색 잎사귀의 야생 풀, 잡초 일체를 일컫는다. 




처음 '호르타' 요리를 맛본 건 나의 코르푸 첫 방문 중 다녀왔던 어느 그리스식 식당 (흔히 'Taverna' (타베르나 라고 한다) 에서였다. 호수 전경이 멋진 야외 테라스에 근사하게 세팅된 테이블 앉았다. 갓 잡힌 신선한 생선으로 구운 요리를 주문했는데, 사이드로 '호르타'를 추천받았다. 짝꿍은 잎채소 혹은 풀 같은 거라고 설명해 줬다. 서빙된 접시 위에 호르타는 녹색을 뿜어내는 푹 삶은 풀더미 여물 같은 비주얼이었다. 


'호르타'는 보통 삶아서 토마토, 감자 등과 곁들여 먹기도 하고,  생선이나 육류 요리에 곁들이는 사이드로도 안성맞춤이다. 기본적으로 올리브유와 레몬즙을 넉넉히 쳐서 낸다. 우리 어머님 스테셜티는, 미리 삶아둔 호르타에 토마토소스, 당근, 토마토, 양파, 마늘 등 다른 야채들을 넣고, 올리브유를 둘러 뭉근하게 졸인 요리이다. 토마토소스에 뭉근해진 호르타는 밥상의 주인공이 되어 감자, 페타 치즈 등을 사이드로 곁들여 먹는다. 소박한 모습의 길거리 풀때기(!) 요리라고 하기엔 맛이 너무 훌륭하다.


구운 생선과 호르타





물론 길거리에 자라는 모든 풀과 잡초가 '호르타' 요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먹을 수 있는 종은 따로 있으니 미리 배우고 관찰한 후 채집해야 한다. 혹시라도 섞여 있을지 모를 독성이 있는 식물은 뜯어먹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는 오며 가며 다양한 호르타에 대해 눈으로 배우기는 했지만, 막상 풀 밭에 던져지니 뭐가 뭔지 구분 못하는 까막눈이 되어버렸다. 결국 어머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뽑았다. 마치 이제 걸음마 떼기 시작한 유아기의 수렵채집인이 된 기분이었다. 


보통 식용이 가능한 '호르타' 종류로는 민들레잎과, 치커리 과, 아마란스 과, 엉겅퀴 과 등이라고 한다. 흔히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일 년 내내 척박한 환경에서도 억척같이 번식하는 호르타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다. 메마른 황무지는 물론 아스팔트 틈새도 비집고 자란다. 영양소도 풍부해서 신석기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중해 일대 사람들의 밥상에 꾸준히 올랐다. 특히, 전쟁이나 기근으로 굶주리고 가난에 찌든 시절에 많은 그리스인들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에 쓸모없는 게 없다더니, 잡초도 예외가 아니었다. 


잡초는 알아서 뿌리내리고 웬만한 환경에서도 척척 잘 자란다. 다만, 인간이 경작하는 작물들 사이에서는 뽑아서 없애버려야 할 존재로 전락한다. 지금처럼 먹거리가 넘쳐나는 시기에, 굳이 인간에 의해 경작되지 않고 오롯이 자연의 힘으로 자라는 잡초를 식재료로 하는 그리스식 '호르타 요리'는, '찐'웰니스 식으로 재조명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집 근처에서 직접 채집하여 먹으니 비용이 들지 않음은 물론, 흔히 유통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 배출도 없다. 뽑아도 뽑아도 무한대로 자란다. 농약이나 화학 비료 걱정도 없다. 더군다나, 모든 잎채소가 지니는 영양소가 농축되어 있다. 비타민K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비타민, 미네랄, 아미노산 및 엽록소 함량이 높은, 요즘말로 영양소 폭탄이다. 나이가 들면서는 먹고 나서 부대끼지 않고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데, 호르타 요리는 단연 나의 일 순위이다. 





'호르타'를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스 나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자의 환경과 지역 혹은 문화권에 따라 이어 온 섭생법은 다른 듯하면서도, 큰 맥락으로 보면 거의 비슷하게 통한다. 한국 나물은 살짝 데쳐서 들기름, 참기름 등으로 무쳐준다. 그리스의 호르타는 억세기 때문에 팔팔 끓여서 익힌 후 올리브 오일로 무친다. 한국 나물은 장 맛으로 감칠맛을 가미해 주고, 그리스 호르타는 신선한 레몬을 쭉 짜서 맛에 생기를 부여한다. 


사계절의 특성이 강하고,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한국에서는 나물을 흔히 말려서 저장해 놨다 요리한다. 반면, 겨우내 한파로 풀이 얼어 죽을 염려가 없는 그리스 지역에서는, 말려 저장하지 않고 갓 따온 신선한 상태로 요리한다. 한국의 나물은 정갈하고 섬세함이 살아 있는 반면, 그리스의 호르타는 뭔가 더 야생적이고 날 것의 느낌이 강하다. 비슷한 듯 다른 듯, 한국 나물과 그리스 호르타는 기후만큼이나 다르고 이질적인 양국의 음식문화 중 그나마 대응되는 짝꿍 음식이지 않을까 싶다. 



2023.09 , Cor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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