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쓰기

카프카 <변신> 발췌 텍스트를 대본으로~~

by 채기늘

<변신> 발췌, 프란츠 카프카, 문학동네


이렇듯 뼈 빠지게 일하고 피곤에 찌든 식구들 중에 누가 꼭 필요한 일 이상으로 그레고르를 돌봐줄 수가 있었겠는가? 살림은 점점 더 곤궁해져 이젠 하녀마저 내보내야 했다. 대신 백발이 흩날리는, 뼈대가 굵은 거구의 파출부가 아침저녁으로 와서 가장 힘든 일만 해주었다. 나머지는 모두 어머니가 그 많은 바느질을 해나가며 틈틈이 해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즐거운 모임이나 명절날 같은 때 너무도 행복해하며 하고 다녔던 집안 대대로 내려온 여러 가지 패물이나 장신구들을 팔아버리는 일까지도 있었다. (p93)


<변신> 시놉시스


‘깊이를 알 수 없는 늪’


갑충으로 변한 그레고르를 돌봐주던 식구들은 끝이 나지 않는 상황으로 점점 더 지쳐간다. 가난과 고통의 늪에 빠지게 되는 식구들은 일과 피곤에 찌들어 그레고르를 세세히 돌봐 주지 못한다. 하녀마저 내보내고 백발 노파인 파출부가 가장 힘든 일만 해주고 있으며 그 외의 살림과 일은 어머니가 바느질 틈틈이 하고 있다. 집안에서 내려오는 패물과 장신구들도 어머니와 여동생을 뽐내주는데 필요한 고유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곤궁한 집안 살림을 위해 팔아치워야 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늪’ 시나리오


#25. 거실, 저녁 6시-8시 사이


갑충으로 변한 그레고르는 먹을 것을 찾아 힘들게 어기적 어기적 거실로 나오고 있고, 어머니는 식탁 의자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다. 아버지와 여동생은 각자의 방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다.


그레고르: (식탁 위를 힘겹게 쳐다보며) 먹을 게 아무것도 없네...

어머니: (무심히 바느질만 하고 있다)

그레고르: (여러 개의 발로 거실 바닥을 긁으며) 어머니! 배가 고파요.

먹을 것 좀 주세요.

어머니: 그레고르! 방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려고 거실로 나오는 거니?

그레텔: (방에서 혼잣말로) 그레고르는 없어. 저건 징그러운 벌레야!

어머니: 그레고르! 방으로 들어가라니까!

그레고르: (방을 향해 몸을 돌리며) 내 배고픔 따위는 안중에도 없군요.

아버지: (침대 위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켜 정리되지 않은 방을 둘러보며)

집이 엉망이군.

아버지: (거실로 나오며) 저녁식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어머니: 네~그래야죠. 이것만 마무리하고요.

오늘도 아침식사와 마찬가지로 파출부가 해놓고 간 빵과 채소 수프가 식사의 전부예요.

아버지: 하녀가 없으니 집안 꼴이 점점 엉망이 되어 가는군. 식사도 형편없고...

어머니: 온 식구가 일을 해도 계속 이 모양이니 어쩔 수가 없네요.

그나마 아침저녁으로 오는 백발 노파 파출부마저 없으면 더 이상은 저도 힘들어서

집안 살림을 할 수가 없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지...

아버지: 그레텔! 나와서 상 차리는 것 좀 도와주렴.

그레텔: (거실로 나오며) 아버지 엄마. 저 정말 힘들어요.

힘들게 일하고 와서 형편없는 식사에 집안일까지 하는 건 정말 견디기 어려워요.

아버지: 그럼 어쩌겠니? 모두가 힘들게 견디고 있는데 서로 도와가며 해야 하지 않겠니?

어머니: (끝내지 못한 바느질거리를 들고 그레고르 방을 쳐다보며)

그레고르는 뭐 좀 먹었나?

그레텔: 여기에 그레고르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저건 그냥 벌레일 뿐이라고요.

아버지: 그레텔! 오빠한테 그게 무슨 말이니?

그레텔: 오빠는 무슨 오빠예요? 저 방에 있는 건 흉측한 벌레일 뿐이라고요.

어머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레텔! 지금은 흉측한 벌레로 보이지만 얼마 전까지는

우리를 위해 밤낮없이 일만 하던 너의 오빠 그레고르인 걸 잊으면 안 돼.

그레텔: 엄마! 엄마도 힘들잖아요. 엄마도 집안 살림에 바느질까지 하느라 힘들어서

엄마가 그레고르라고 믿고 있는 저 흉측한 벌레가 무엇을 먹는지조차 신경 쓰지 못하고 있잖아요.

우리 모두 점점 저 벌레를 신경 쓰는 걸 피곤해하고 있다고요.

아버지: 그레텔 네 말이 틀리진 않구나. 우리 모두 그레고르를 점점 더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있어.

그레고르가 일을 할 때는 고마움조차 몰랐는데, 변해버린 지금에는 그저 우리를 힘들게 하는 한 마리 벌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구나.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겠니?

어머니: 매일 일해도 살림은 나아지지 않고, 사람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하며 그레고르를 돌보는 것이

이젠 점점 힘에 부쳐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레고르가 거실로 나오면 이제는 징그러워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들어요.

우리에게 왜 이련 시련이 닥친 걸까요?

그레텔: 벌레로 변하기 전에 오빠가 우리들을 위해 밤낮없이 일한 건 알지만, 현실을 모른 척할 수는 없어요. 우리도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해요.

어머니: 그래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요즘은 내가 사는 모양이 정말 형편없고, 부끄럽기까지 해.

처음엔 이 시련이 금방 끝날 줄 알았어.

아버지: 그래 우리 모두 이 시련이 금방 끝날 줄 알았지.

어머니: 난 모든 게 예전처럼 될 줄 알았어요. 그레고르도 우리도 다시 예전처럼...

그레텔: 저도 예전이 그리워요.

어머니: 아름답게 꾸미고 파티나 친척 모임에 가던 때가 그리워요. 이젠 파티에 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몸에 걸칠 장신구도 남아 있지 않아요.

그레텔에게 물려주려 했던 장신구까지 돈이 없어 내다 팔게 될 줄 몰랐어요.

아버지: (부인을 쳐다보며) 패물까지 팔게 해서 미안하오.

어머니: 지금의 상황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레고르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은

시간 낭비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곤 해요.

그레텔: 맞아요. 금방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는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지고 있어요.

어서 이 늪에서 나와야 해요.

어머니: 늪이라고?

(절망한 표정으로) 아~정말 우리 모두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걸까?

아버지: 방법이 있을 거야. 늪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

그레텔: 우리 모두가 늪에서 나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봐야죠. 설사 그 방법이 누구 하나의 희생을 동반한다 하더라도

우린 그걸 해야 해요.


아버지, 어머니, 그레텔 모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레고르의 방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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