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잡는 법을 알려줄게

by 채기늘

참새 잡는 법을 알려줄게


<작품 의도>

문득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날 때 어릴 적 추억을 더듬어 보게 됩니다.

조각의 장면들로 기억되기도 하고, 한 시퀀스로 기억되기도 하는 추억들을 모아 짧은 대본 쓰기를 해 보았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기억들이지만 나에게는 따뜻하고 편안했던 기억들로, 힘들 때마다 꺼내 보며 위로받았던 추억들. 내 아이들에게 아버지를 보여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대본으로 써, 그 기억들이 장면 장면으로 펼쳐진다면 조금은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 올려보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주요 등장인물 소개>


아버지: 35세. 겉은 무뚝뚝하지만 속은 다정함.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주장을 잘하지 않음.

가끔 아재 개그를 툭툭 던진다.

주희: 어린 주희 10세. 어른 주희 43세.

호기심 많았던 어린 시절과 현재는 수다스럽지만 사색을 즐기는 아줌마.

아이들에게는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엄마: 33세.

직장일과 집안일로 바빠 시간도 감정도 빠듯하여 하루를 살아내느라 바쁨.

느슨한 아버지와는 반대되는 성격.

주헌: 7세. 주희의 남동생.

그 밖의 등장인물: 주희의 남편(44세)과 큰딸(14세), 작은딸(11세), 막내아들(5세)


#1 가을 낮, 아버지 산소


산소에 절을 하고 있는 주희와 주희 남편, 주희의 큰딸, 작은딸, 아들


주희: (속으로) 아버지! 봤어?

내가 애를 셋이나 낳았어. 우리 애들한테 아버지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다 보이지?

남편: 절 다 했으니 잠깐 쉬었다 가자.

아들: (산소 주변을 뛰어다니며) 엄마! 엄마도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주희: 당연하지! 엄마 아빠니까 당연히 보고 싶지.

너희 할아버지가 아이들 진짜 좋아했는데...

아들: (엄마 옆으로 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엄마! 엄마는 오래 살아. 내가 이다음 엄마랑 살 거니까 오래오래 살아야 돼.

주희: 걱정 마. 너 장가가서 아기 낳을 때까지 살 거니까.

남편: 다 쉬었으면 가자.

(놀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얘들아! 이제 가자. 내려가서 차에 타.


(과거 회상 신)

#2. 봄날 낮, 3층 건물 옥상 평상 위


옥상 장독대 옆에 무리 지어 바닥을 쪼고 있는 참새 무리들과

평상 위에 봄볕을 쬐며 숙제를 하고 있는 주희와 그 옆에서 물끄러미 참새 무리를

바라보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가 참새 많이 잡는 법 알려줄까?

주희: (숙제하다 말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버지를 보며) 응! 그게 뭔데?

아버지: 일단 쌀을 막걸리에 담그고, 수수깡을 작게 똑똑 자르는 거야.

그리고 막걸리에 담갔던 쌀을 바닥에 뿌리고 그 옆에 자른 수수깡을

나란히 늘어놔.

주희: 그리고?

아버지: 그러면 참새들이 그 쌀을 먹고 술에 취해서 비틀비틀하거든?

비틀비틀하다 픽 쓰러져서 수수깡을 베고 잠이 들 거야.

주희: 진짜?

아버지: 그럼! 그때에 참새를 줍기만 하면 되는 거야.

주희: 우와! 진짜 재밌겠다.


#3 저녁 방 안


방바닥에 엎드려 책을 보고 있는 주희와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주헌

그 옆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아버지와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고 있는 엄마


주희: 아버지! 영어 할 줄 알아?

아버지: 그럼

주희: 책이 영어로 뭐야?

아버지: 북

주희: 그럼 연필은?

아버지: 펜슬

주희: (집안 물건을 둘러보다 옷장을 보며) 캐비넷은?

아버지: 캐비네~~엣!

주헌: 우와! 아버지 영어 잘한다.

엄마: (밥상을 들고 들어 오며) 으이구~저 양반이!

(아이들을 향해) 캐비넷이 영어야.

아버지: (모른 체 신문을 들여다본다)

엄마: 얼른 밥 먹자.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는 식구들.

엄마가 앞에 놓인 콩나물을 입으로 가져가 씹으려는 순간 콩나물 한 가닥이

다시 접시로 떨어진다.


아버지: 떨어진 콩나물 골라내야지.

엄마: (젓가락으로 콩나물을 섞으며) 뭘 골라 그냥 먹어.

아버지: 아~나 참!

주희: 엄마! 우리 선생님이 ‘가족’ 이야기 글짓기 써 오라는데 뭐 쓰지?

엄마: 이 얘기 써. 엄마가 콩나물 먹다 떨어트려서 아버지가 골라내라 그랬는데

그 냥 다 섞어버린 얘기...

주희: 진짜 이거 쓸까?

아버지: 선생님이 더럽다고 하시겠다.

주희: 그럼 쓰지 말까?

엄마: 뭐 어때? 우리 가족 얘기 웃기고 재밌는데.

잘 쓰면 상 탈 걸?


이불 위에 엎드린 주희가 원고지에 글짓기를 하는 모습에서

원고지 위에 ‘콩나물을 떨어뜨’ 글자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이동


#4 며칠 후 저녁 방 안


방에서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식구들과

벽 한쪽에는 ‘가족 글짓기 우수상’ 상장이 붙어 있다.


#5 20여 년 후 가을 오후, 산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과 인부들이 산소의 잔디를 다지고 있다.


엄마: 거의 끝났으니 이제 절하고 내려가자.

주희: 이렇게 그냥 가는 거야?

엄마: 그럼 그냥 가야지. 뭘 또 하게?

주희: 아니, 아버지는 산에다 이렇게 놔두고 우리만 가려니까 마음이 안 좋아서.

엄마:...

주헌: (산소에 절을 하며)

아버지! 엄마랑 누나는 내가 잘 챙길 테니까 걱정 말고 잘 쉬세요.

엄마: (산을 내려오며 나무를 쳐다보다가) 나무는 좋겠다.

주희: 나무? 왜?

엄마: 누가 베어 가지 않으면 계속 그 자리에 있잖아.

주희:...


#6. 며칠 후 저녁 집 거실


티브이에 ‘슈퍼맨’ 영화가 틀어져 있고 소파에 앉아 무심히 티브이를 보고 있는

주희와 엄마


주희: 내가 슈퍼맨이었으면 좋겠다.

엄마: 웬 슈퍼맨?

주희: 슈퍼맨이 여자 친구를 구하지 못하니까

대기권 밖으로 나가서 지구를 돌리거든.

엄마: 지구를 돌려서 뭐하게?

주희: 지구를 돌려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여자 친구를 구하더라고.

나도 슈퍼맨처럼 지구를 돌려서 아버지가 안 아프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엄마: 에휴..

아버지는 엄마 할 일 만 잔뜩 남겨놓고 돌아가셨어.

주희: 무슨 할 일?

엄마: 너희 결혼시켜야 하잖니? 큰일을 엄마한테만 떠넘기고...


# 7 몇 년 후 봄. 결혼식장


혼주석에 혼자 앉은 엄마와 주례석 앞에 서 있는 주희와 주희 남편의 뒷모습이 보인다.


(다시 현재)

#8 해 질 녘 차 안


운전하고 있는 남편과 조수석에 앉은 주희.

뒷자리에 앉아 있는 세 아이들.


주희: 엄마가 참새 잡는 법 알려줄까?

아들: 참새? 나 참새 좋아하는데...

큰 딸: 참새를 잡아도 돼?

작은 딸: 참새를 어떻게 잡는데?

주희: 일단, 쌀을 막걸리에 담가.

세 아이들: (조용히 엄마의 말을 듣고 있다.)

주희: 그리고 수수깡을 작게 자르는 거야.

남편: (운전하며 피식 웃는다.)


이포대교 위 가족이 탄 차가 노을 지는 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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