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지였던
"엄마! 우리 집 전자레인지가 나보다 나이 많다며?"
학원 갔다 들어오며 뜬금없이 막내 아이가 묻는다.
"응! 니 큰누나보다 나이 많아.
엄마 결혼할 때 친구가 선물로 사 준거야."
"헐! 대박. 전자레인지 좀 바꾸자.
우리 집은 뭐든 다 오래된 거야. 큰누나 보다 나이
많으면 20년도 넘었잖아."
"그게 뭐 어때서? 고장 안 나면 쓰는 거지. 뭘 바꾸니?"
라고 대답은 했지만,
1~2년 전부터 전자레인지 버튼이 잘 눌리지가 않아
살살 달래며 만져주면 어느 지점에선가
버튼이 눌려 작동이 되곤 했었다.
전자레인지가 비싸다거나, 사기 어렵다거나 해서
안 바꿨던 게 아니라,
버튼을 살살 만져주면 성능에는 이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결혼하며 장만했거나 선물 받았던 것 중
유일하게 남아 있던 것이라 더 바꾸지 않았던 듯하다.
전자레인지를 선물해 준 그 친구랑 그렇게 애틋한 사이도 아니면서 쉽사리 바꾸지 않았었다.
아이들 셋 키우며 가장 많이 사용한 가전제품이
전자레인지였던 거 같다.
우유 데우느라, 밥 데우느라, 음식만이 아니라
찜질팩도 데우고, 어떨 때는 행주도 삶고...
마치 가족 같아서 쉽게 바꾸지 못하고 살살 달래 가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드디어 얼마 전,
'위~~이~~'
'위~~잉'소리 내며 돌아가야 할 텐데
'위~~ 이~'소리까지만 내고 빛도, 움직임도 멈췄다.
버튼을 요리조리 만지며 눌러봐도
이내 돌다 멈추다를 반복한다.
'에휴~너도 이제 나이 들었구나.'
휴대폰을 집어 들고
쿠*사이트에서 로*배송 전자레인지를 검색하고
그중 쓸만해 보이는 것으로 골라 결제버튼을 눌렀다.
바로 다음날 배송된단다.
정말 24시간도 되지 않아 새로운 전자레인지가 문 앞에
도착했다.
고장 난 전자레인지를 꺼내고 새로운 전자레인지를 들여놨다.
원래 제자리였던듯 이질 감 없이 들어앉은 새 전자레인지를 보며 자리를 잃고 바닥에 내려앉은 구 전자레인지가 왠지 불쌍하게 느껴졌다.
순간, 고쳐서 한쪽에 처박아 놓을까 하고 궁상스런 생각이 들었지만,
밖에 내다 놓으면 누군가 가져가서 또 다른 소임을 하겠지 싶어 남편더러 밖에 꺼내놓아 달라 말하였다.
남편이 들고나가려 하는데 그래도 사진이라도 찍어 놓자 하고 카메라를 켜니,
"당근 하게?" 한다.
'당근은 무슨! 아쉬워서 그렇지'
큰딸이 새 전자레인지를 보고는
"엄마 이렇게 빨리 오니까 당황스럽네.
나보다 나이 많은 애는 버리고~~"한다.
사실, 그 즉시 로*배송으로 바꾼 것은
시간을 더 지체하다가는
전자레인지가 더 이상 불이 켜지지 않거나 아예 돌지 않거나 하는 지경까지 될까 봐서였다.
결혼과 함께 같이 시작한 끈끈한 동지애(?)가 느껴지는 애(?)가 생명이 다 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뭐 그런 마음?
그냥 전자레인지가 아니라 친구 같은 가족 같은...
그래서 조금이라도 제 기능(생명)이 남아 있을 때 일을 중단시켜 주고 싶었다.
이제 쉬어도 된다는 토닥임과 함께.
밖에 내다 놓은 전자레인지는 금방 누군가가 집어갔다.
그렇게 내 동지였던 노란 전자레인지는 맡은 바 임무를 넘치도록 하고 새로운 쓰임(?)으로 거듭나기 위해
어디론가 보내졌다.
살살 달래지 않아도 한 번 터치로 쌩쌩하게 돌아가는
전자레인지를 보며
'너도 길게 나랑 잘 지내보자' 하며 말을 건네다,
낯선 곳에 가서 당황하고 있을 노란 전자레인지가 생각났다.
25년 동안 나를 따뜻하게 해 줬던 "엘* 노란 전자레인지"의
고마움을 생각하며 이 글을 적어 본다.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