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원 기억_까마중

by 채기늘

“바위절 가면 까마중 많아”

“그래? 우리 바위절 가자”

동네 꼬마 대여섯 명이 까마중 따러 한강 둑방길을 따라 바위절로 향한다.

둑방 가에 보이는 패랭이꽃을 보며,

“야! 저 패랭이꽃이 왜 패랭이꽃인지 알아?” 하며 아는 척도 해본다.

밤이면 필 달맞이꽃이 둑방 가에 잔뜩 무리 지어 있다.

달맞이꽃 아래에는 파란 꽃잎을 매달고 있는 풀(닭의장풀)과 메꽃, 이름 모를 풀들이 지천이다.

둑방 가에 풀을 발로 스~윽 훑으면 쉬고 있던 메뚜기, 여치 등 이름 모를 벌레들이 사방으로 툭툭 튀어 오른다. 걷다가 심심하면 들판에 있는 강아지풀 몇 가닥을 뜯고 엮어서 우산 모양 장난감을 만들어 놀며 걷는다. 양지마을쯤 보이는 비닐하우스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여 몰래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가, 여름철 뜨겁고 습한 기운에 숨이 턱 막혀 “으악!” 소리를 내며 얼른 밖으로 나온다.

포장이 되지 않은 들판 같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까마중을 발견하면 신이 나서 그 까만 알을 한 알 한 알 따서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 씹으며 걷는다.

가까운 거리를 놀며 걸으니 멀리 온 것처럼 출발한 지 한참만에 바위절에 도착한다.

산(동산) 아래 들판을 허리를 숙여 샅샅이 뒤지며 까마중을 찾는다.

정말, 말처럼 까마중이 지천이다.

운이 좋은 날엔 까만 까마중이 아니라 노랗고 투명한 까마중을 발견하는 적도 있다. 노란 까마중을 그 자리에서 따서 포도송이처럼 들고 바로 입으로 직행한다. 입에서 ‘톡’ 터지는 까마중이 달콤 시큼한 맛을 낸다.

따면 바로 먹어 없앨 수 있을 양만 보다가 지천으로 깔린 까마중을 담아 갈 것이 없이 난처해한다. 윗옷 앞을 말아 쥐고 까마중을 정신없이 따다가 이젠 더 이상 담을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야! 이젠 가자” 누군가가 외치면 지천에 깔린 까마중을 뒤로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해가 길어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른 체 한참을 들판을 쏘다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풀독이 오른 종아리와 팔이 간지러워 벅벅 긁으면서, 늦게 들어왔다는 야단 들을 생각에 슬그머니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불룩하게 말아 쥔 윗옷이 뿌듯하여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는다. 재촉하는 걸음마다 까마중을 한 움큼씩 입에 넣고 입과 발걸음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볼록하게 감싸 쥐었던 윗옷이 홀쭉해진다.

집에 다 왔을 때쯤엔 까마중은 윗옷에 얼룩덜룩 자국만을 남겨 놓았다.

다행히 부엌에 있는 엄마는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잽싸게 방으로 들어가 아까 들어온 척하고 있다 보면 배가 살살 아파 온다.

까마중을 너무 많이 먹었다.

저녁밥상을 들고 들어온 엄마가 나의 몰골을 보고는 대번에 들판을 쏘다니다 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늦게 들어왔다고, 옷 꼬락서니가 그게 뭐냐고, 도대체 뭘 먹었길래 배가 아프냐는 잔소리를 들으며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그날은 밥을 굶었다.






지금은 한강 둑방길도, 바위절도, 양지마을도 기억으로, 이름으로만 남아있다.

그 많던 달맞이꽃, 패랭이꽃, 메꽃, 닭의장풀도 보기가 쉽지 않다.

가끔 찻길가 은행나무 밑에 옹기종기 모여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강아지풀을 만나면 어릴 적 추억을 만난 것 같아 반갑다.


텃밭에 갔다가 까마중을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까만 알이 나를 유혹하지만 왠지 지금은 먹을 것이 아닌 것 같아 먹어 보길 망설인다. 그래도 그 맛이 궁금하여, 까마중을 먹는 나를 누가 볼까 얼른 한 알을 입에 넣고 터뜨리면 옛날 그 맛은 나지 않고 시큼한 풋내가 나서 “에이! 덜 익었네” 하고 인상을 찡그린다.

지금 생각하니 어릴 적엔 내 주변 모두가 정원이었다. 가꾸지 않은 들판이었을 텐데, 내가 기억하는 들판은 정원이었다. 꽃, 풀, 벌레, 열매들이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 다른 모습과 냄새와 촉감을 주었었다. 들판을 쏘다니던 기억을 떠올리면 행복하고, 따뜻하고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자연과 함께 한 기억들이 따뜻하여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들판으로 많이 데리고 다녔더니, “우리는 캐리비안베이 같은 데 안 가?”라고 말하며, “또 산으로 들로 가면 안 갈 거야”라고 했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벚꽃 피면 꽃구경 가자 하고, 단풍이 들어도, 눈이 와도 구경 가자 한다. 우리 아이들도 나처럼 자연이 따뜻했나 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어릴 적 들판 정원을 쏘다녔다면, 우리 애들은 우리 동네 앞마당인 올림픽공원 정원으로 간다. 정원이 옆에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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