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심다 헐레벌떡!

by 채기늘


도시텃밭을 10년째 하고 있다.

텃밭을 하려면 신경 써야 할 게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수시로 돌봐줘야 한다.

겨우 4평짜리 도시 텃밭인데도

계절 따라 맞는 작물을 심고 작물이 잘 자라도록 살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씨나 모종을 심고, 수시로 물을 주고, 솎아 주고,

곁가지를 정리해 주고,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고, 흙을 북돋워 주고, 열매를 제때 수확하고...


도시텃밭을 보통 '주말농장'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주말에만 작물을 심고 가꾸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 낭패를 본다.

아이가 어른을 기다리지 않듯이 식물도 주말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식물이 주말을 알게 뭐람?

너무 춥거나 덥지 않는 이상

물 있고, 바람 있고, 햇빛 있으면 마구마구 자란다.

잠시 소홀했다 오랜만에 가면,

정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마구마구 아무렇게나 가지와 줄기를 뻗어

마치 소홀한 것에 반항하는 티를 내듯 자라 있다.


한여름 땡볕에 밭을 정리하다 보면

"아이유 이놈의 밭! 내년에는 하지 말던가 해야지, 당최 신경 쓰여 못살겠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맨날 괜한 소리로 막상 내년이 되면,

도시텃밭 신청 일자를 핸드폰에 저장해 놓고 그날을 놓치지 않으려 바짝 신경 쓰게 된다.

어쩌다 보니 우리 부부의 취미가 농사가 되어버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농사를 짓기 위하여 2주 만에 밭에 가 보았다.

여름 농사 마무리 시기 이기도 하고, 7~8월 주말마다 수업이 있고, 비도 많이 오고 해서 밭에 무신경했더니

고추는 죽어 있고, 가지는 주렁주렁, 호박 넝쿨은 남의 밭까지 뻗어 있었다.


어지럽게 자라 있는 호박과 가지


지지대를 뽑아 정리하고 작물을 걷어 내는데 날은 덥고, 얼굴 탈까 쓴 모자는 시야를 가리고, 멋대로 자란 작물은 잡아당겨도 뽑히지도 않고, 풀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아유 힘들어. 그냥 나중에 할까'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오늘 아니면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억지로 참고 밭을 다 정리하였다. (겨우 4평짜리 밭이지만 정말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농부님들에게 정말 감사해야 한다.)


배추를 심고 무씨를 뿌리고 있는 남편


하늘은 높고 바람도 솔솔 불고 가을향기가 살살 풍겨오는데,

우리는 밭에서 이렇게 배추를 심고, 무 씨앗을 심고 있었다.


그때 남편의 전화가 울렸다.

남편의 손에 흙이 묻어 대신 받은 전화기에 '*빈'이 뜬다. 큰딸이다.

"여보세요! "

"엄마! 아빠는?"

"옆에 있는데, 지금 무 씨 뿌리고 있어"

"아빠 바꿔줘 봐"

"*빈이가 자기 바꿔달래"

"여보세요! 아빠야, 왜?"


"아빠! 차가 멈췄어!"


"차가 왜 멈춰? 알았어. 보험사 긴급출동 부를 테니 기다리고 있어"

보험사를 부르고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큰딸에게 전화하니,

"기사님 오셔서 보고 계시는데, 견인 불러야 할지도 모른대"

"엥? 너 거기 어딘데?"

"*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

"알겠어. 엄마랑 아빠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멀찍이서 무씨를 뿌리고 있던 남편에게 *빈에게 가봐야 하니 대충 뿌리라 하고 재촉을 하였다.

우리가 가봐야 뭐하냐고 하던 남편에게, 견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니

허겁지겁 마무리를 하고 일어 난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이라 급히 차를 몰아 도착하니

이번엔 지하 주차장을 들어가는 것이 문제였다.

호출 버튼을 눌러 대충 103동 아무 호수나 얘기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전혀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고, 다행히 아는 사람이 103동에 살고 있었다.)


배추심다 헐레벌떡 달려온 지하주차장엔 어찌할 줄 몰라 가만 서있는 큰딸과 운전강사님과

긴급출동 기사님이 애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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