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심다 헐레벌떡!

그 뒷이야기

by 채기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나를 보자마자 큰딸이

"엄마 나 비싼 차 사줘"라고 철없는 얘기를 한다.

(지도 당황하니 어리광이 나왔으리라)


누가 들으면 자식에게 떡하니 차도 사주는 그런 능력 있는(?) 부모로 보일 수 있겠으나,

실상은 2년 전에 중고로 260만 원 주고 산 모닝을 버리기 아깝기도 하고,

카니발이 언제 생을 다할지 몰라

(지금 타고 있는 카니발도 동생이 10년 이상 타다 아깝다고 우리에게 준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서 남의 집 주차장 한쪽에 처박아 둔 것이었다.

오래 세워뒀던 지라 여기저기 고장이 났을게다.




주차장 한가운데서 차에 배터리 충전을 하고 계시는 기사님에게

충전만 하면 되겠냐고 물으니,

아무래도 '제네레다'가 나간 것 같다고 한다.

그럼 어째야 하냐니까 오늘은 일요일이라 인근 카센터가 모두 닫았으니

일단 한쪽에 주차를 해 놓고 월요일에 견인을 불러 카센터에 가서 수리를 하라고 한다.

이런 낭패가 있나!

우리 집도 아닌데 남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는 것도 문제고,

더 심각한 문제는 겨우겨우 배터리를 충전하여 시동이 걸려있던 차가

움직이려고 하자 또 시동이 꺼졌다. 정말 대략 난감이다.

배터리 점프선을 가지고 돌아가려고 하던 기사님을 급히 다시 불러

또 충전을 하였으나 시동은 연신 꺼지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였다.


사람이 궁지에 몰렸을 때 갑자기 해결책이 떠오르곤 한다.

아들놈 친구 아빠의 친구가 인근에서 카센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번뜩 떠 올랐다.

그 카센터가 주말에는 주차장이 비어 있던 모습도 떠 올랐다.

남편에게 말할새 없이 보험회사 긴급출동으로 견인기사님을 부르는 사이

남편과 기사님이 차를 살살 밀어 주차장 한쪽에 차를 대고 있었다.

(경차라 좁은 곳에서도 잘 밀어졌다.)


내가 견인을 불렀다 하니,

남편은 어디다 끌어다 놓으려고 견인을 불렀냐고 의아해한다.

남편에게 아들놈 친구 아빠에게 전화를 하여,

친구 카센터에 차를 견인해다 놓을 테니

카센터 사장님에게 상황을 전달하여 달라고 부탁하라고 하였다.

남편은 "아! 그러면 되겠구나" 하더니 냉큼 전화를 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KakaoTalk_20220905_185945706.jpg 견인되고 있는 빈붕!


견인기사님이 오시고 내 생애 두 번째 견인차를 타게 되었다.

약 10 여전에도 내 생일날 단양을 다녀오다

경기 하남 입구에서 차가 도로 한가운데서 퍼져 견인차를 탄 적이 있다.

(너~~무 긍정적인 남편 덕분으로 이 외에도 차에 대한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한편에 서 있던 큰딸이 무심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운전연수 강사님이

"아버님! 차키 좀 주세요. 시간 아까우니 큰 차도 운전해 보죠" 한다.

그렇게 큰딸은 졸지에 경차에서 12인승 승합 카니발을 운전해 보게 되었다.


이쯤에서 눈치챘겠지만,

큰딸이 운전할 때가 되어 처박혀 있던 모닝을

내가 보험료를 내주고 기름값과 주차비는 딸이 내기로 하고

운전연습 중에 이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모닝과 자신의 이름을 합쳐 '빈붕'이라고 이름까지 지었는데 '빈붕'이로 운전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날 뻔했다.



KakaoTalk_20220905_190005349.jpg 딸이 운전하고 있는 차


큰 차를 운전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여 뒤에서 지켜보는데,

난 차가 서 있는 줄 알았다.

가는 거였다. 10킬로쯤으로...

회전을 하는데도 엄청 천천히 천천히...

아마 내가 운전해도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딸이 운전하여 집까지 차를 가져다 놓기로 하고 나는 견인차에 타고 카센터로 가기로 하였다.

딸이 먼저 출발하고 우리는 뒤에서 딸이 탄 차를 호위(?)하며 갔다.



KakaoTalk_20220905_190024521.jpg


초보라 어려운 차선 변경도 살살해가며 잘 가고 있었다.


카센터에 도착하여 차를 주차하여야 하는데 시동도 안 걸리는 차를 어떻게 주차하려나 궁금하였다.

번쩍 들어서 가져다 놓으려나?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하던 순간,

견인기사님은 꽁무니에 '빈붕'이를 메단 채 그대로 후진하여 정확히 주차하였다.

"와~대박!" 하고 놀라니 기사님이

"뭘 이 정도를~~"하는 얼굴로 웃는다.




그렇게 긴 하루가 지나고,

그날 오후 딸에게 운전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니,

"어머나 내가 이렇게 천천히 갔어?" 한다.

"응. 난 서 있는 줄 알았다." 하니,

"내가 느낀 속도감은 훨씬 빨랐는데?" 한다.

"한 40킬로쯤으로 가는 것 같던데..." 하니,

"헐!!"...


'그랬겠지. 정신없어서 속도를 느낄 수나 있었겠니?'라고 생각하는데,

"근데 아무도 빵빵대지 않던데?" 한다.

"바보! 엄마가 뒤에 견인차로 바짝 붙어 따라가는데 누가 빵빵대니?" 하니,

"엄마가 뒤에 오고 있었어? 난 그것도 몰랐네. 어쩐지 아무도 빵빵대지 않아서

난 내가 운전 잘하고 있는 줄 알았지." 한다.

아이고야~ 열심히 앞만 보고 갔구먼!


이렇게 해서 가을 농사 시작으로 배추를 심다가,

큰딸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헐레벌떡 달려가,

정신없이 상황을 수습하고,

'빈붕'이를 살리기 위하여 거금이 들어간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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