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탁월하게 잘하진 않았기에 시기를 받았다.

by 빛별

나를 시기했다는 고백을 받곤 했다.


"빛별아, 너를 멀리서 보고 시기했었어." 그 말을 듣는 나는 언제나 영문을 몰랐다.

왜 나를 시기했다는걸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나에게 왜 구지 말하는걸까. 어떻게 오해가 풀리고 나에대한 감정이 좋아진걸까.


사람들은 내가 가진게 많다고 했다. 언제나 시기에 대한 고백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나를 많이 사랑해주시는 부모님을 가졌다. 이것 하나만으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가진것은 분명하지만 그게 또래의 시기를 받을 이유가 될까. 그렇지는 않을것이다.


뒤를 돌아본다. 나의 시기받은 역사는 아주 어릴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날카로운 눈초리를 삼켰던 순간에는 친구엄마들이 있었다. 그 엄마들은 나의 엄마가 안계실때 그런 눈초리를 은연중에 나에게 보냈고, 나는 영문도 모른채 그것을 받았다. 그때는 모른척 못들은척 했지만, 그 장면들이 생생히 기억나는것을 보면 어린마음에 꽤나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손꼽히게 무엇을 잘하는 아이는 아니였다. 손꼽히게 소위 전교권으로 공부하는 애들은 따로 있었다. 나는 그런데 왜 그런 눈초리를 받아야 했을까. 나는 정말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아이였을 뿐인데 말이다.


이제와 생각하니 아마도 그런 전교권으로 공부를 잘하거나 정말 0.1%인재는 아닌 반에서 공부좀 꽤나 한다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런 눈초리를 오히려 받았나 보다. 눈초리에 영문도 모른채. 어쩌면 나는 그런 눈초리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그 대상들에게 항변한번 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삼켰는지 모른다.


만약 내가 탁월했다면, 탁월해서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로 주변을 도와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린시절 나도 그렇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혼자 좀 잘한다는 수준에 머물렀고 그런 여유는 생겨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조바심이 났고 그런 조바심은 주변의 시기를 일으키기 충분했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떨까. 아마도 나는 그 모습 그대로 또다른 환경에서 살고있는지 모른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나는 탁월해지고 싶다. 아주 탁월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런데 어릴땐 탁월하고 싶지 않아서 못했나. 그건 아니다. 그럼 이렇게 해보는것은 어떨까. 먼저 도움을 주는것이다. 도움을 주며 나를 발전시켜 나가보는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탁월해 질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