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스파이스-고백
0. Prologue
난 영화 라라랜드를 참 좋아한다. 뮤지컬 영화라서 인 것도 있지만 인물들의 서사와 함께 나오는 춤과 노래가 내게 너무 설득력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번 에피소드의 이름이 라라랜드인 것은 그 당시 이 영화를 보며 영화의 마지막 곡인 Epilogue에서 두 주인공이 헤어지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만약 둘이 헤어지지 않고 계속 만났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지 그려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번 에피소드가 라라랜드인 이유는 그 친구를 보며 '나도 만약에...'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이번 에피소드의 그 아이는 주인공 엠마 스톤(미아 돌런 역)을 닮은 느낌이 있었다. 잠시였지만 나도 그 친구를 만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던 게 아니었을까, 우리가 만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기 때문이다. 나의 에피소드 마지막 Epilgoue 또한 라라랜드에서 가져오게 됐다.
김형중 - '그랬나봐' 중
그랬나봐 나 널 좋아하나봐
하루하루 니 생각만 나는걸
널 보고 싶다고 잘할 수 있다고
용기내 전활걸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돼 바보처럼
1. 야구 연습장
그 친구를 처음 만나게 된 곳은 실내 야구 연습장이었다. 대기업에서 대학생들을 지원해 취미활동, 취업활동을 돕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중 야구가 있었다. 학기를 마치고 겨울이 된 시기. 그 친구는 야구를 배워보기 위해 기차까지 타고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연습장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야구라는 프로그램이 남학생들만의 취미에 가까웠기에 여학생이 합류한 상황에 당황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코치님들조차도 이 상황이 낯선 기색이었다.
당시 기업 담당자로 그 친구를 합격시켰던 과장님은 클래스를 여러 차례 경험한 나를 주장으로 정하고, 옆에서 그 친구를 잘 챙겨주라는 특명을 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이 친구가 야구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했지만 운동을 시작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기초 훈련을 위한 러닝과 인터벌, 푸시업에서 쓰러져가는 남자애들을 뒤로한 채 평온한 표정으로 내게 와 "주장님 이제 추가 훈련은 뭐해요?"라고 물었다.
직업군인으로 전역했던 내가 가쁜 숨을 억지로 삼키며 함께 평온한 척 "오늘은 시간이 다 돼서 추가 연습은 없을 것 같고,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훈련할 거예요."라고 답했다. 야구라는 운동을 여학생과 함께 훈련받게 될 것이라는 것에 그 당시의 반의 분위기는 평소보다 살갑고 열심히 참여하려는 학생들로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 역시 그런 학생 중 하나였다.
2. 대학생들의 연애
첫날의 걱정이 해소된 지 얼마 안 되어 그 친구는 함께 훈련하던 친구들과도 빠르게 친해졌다. 특히 나를 비롯한 우리 동아리 아이들과 빠르게 친해졌는데 그중 우리 동아리에서 차가 있던 친구가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기도 하고 종종 기차역에서 태워오기도 하면서 둘은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만 해도 둘 다 각자의 여자친구와 남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타지에서 오는 친구에게 베푸는 친절이라 생각했었다.
대학생들의 연애란 그런 걸까 어느 날 훈련이 끝난 뒤 그 친구는 우리 앞에서 남자친구와 헤어졌음을 이야기했는데 이때부터 많은 친구들이 앞다투어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그 친구가 곤란해했었다. 그 상황을 한발 뒤에서 바라보던 내게 어쩔 줄 모르겠다며 털어놓듯 이야기했었고, 난 인기인의 고충은 이런 거구나 하며 웃어넘겼다. 내가 한발 뒤에 있었던 이유는 나 역시 그 시기 연애와 가까워진 다른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얼마 지나지 않아 연애를 시작했다. 나의 야구 연습을 보고 싶어 했던 당시 여자친구를 데리고 연습장에 갔을 때 그 친구에게 나이가 같다며 소개를 시켰다. 그 친구의 고장 났던 반응이 기억난다. 아마 내가 연애를 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연습장에 다 들리는 큰 목소리로 "아.. 안녕!! 나랑 친구라고!?" 라며 어색하게 인사하는 모습에 나와 여자친구는 크게 웃어버렸다.
얼마 뒤 그 친구를 차로 데려다주던 친구가 자신의 연애가 종료되었음을 이야기했다.
3. 전망대에서의 고백
세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친구는 우리 동아리원들과도 친해져 있었다. 대학생들의 방학기간은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기간이었다. 어느 날 우리 커플과도 친하게 지냈던 둘은 드라이브를 함께 가자고 제안했고 도시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에 함께 올라갔다.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그곳에서 '멋지다'라는 감정에 부풀었을 때 둘은 "우리 이제 만나보려고 해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커플은 "응 언제 만날지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답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직 알리고 싶지 않았다던 둘은 조심스럽게 연애를 시작했고 자연스레 우리 넷은 함께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우리 넷이 함께 지낸 지 2년 정도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함께 먼 곳에 여행을 다니거나 야구장에 초대석을 받아 다녀오기도 하고 공연을 함께 보러 가기도 하며 많은 시간을 넷이 함께 다녔다.
어느 날 우리를 너무나 예뻐해 주셨던 야구 코치님이 우리 넷을 한 가게로 불렀다. 코치님은 콕 집어 나와 그 친구에게 일반인이 야구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열심히 배우는 건 오랜 코치생활을 해왔지만 처음이었다며 우리에게 꼭 맛있는 걸 사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그날 코치님의 선배가 한다던 참치 가게에서 우리는 비싼 참치와 함께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가게에서 나오며 코치님은 나만 들을 수 있는 한마디를 하셨다. "난 사실 너랑 그 친구가 같이 야구하는 거 보고 너네 둘이 잘되길 바랐어"
4. LALA-Land
나의 대학 생활이 마칠 즈음 나의 사회생활은 더 빛날 줄 알았다. 대학 생활을 열심히 해왔다고 자부했고 회사에 들어가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커플은 졸업 후 각자 취업했던 회사에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와 다시 구직을 하고 있었다. 둘 다 구직 생활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연애를 이어가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커플보다 졸업도 취업도 빠르게 했던 친구네 커플은 결혼 이야기에서 멈춰있었다. 둘은 결혼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자주 싸우게 됐다고 했다.
이 시점에 넷이 함께 보게 되었던 영화가 라라랜드였다. 꿈을 위해 도전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추억을 회상하는 이야기. 난 영화가 끝날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극장에서 나오며 그 친구도 나와 같이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라라랜드를 보고 나서 얼마 뒤 친구커플은 먼저 헤어지게 되었음을 알렸고 몇 달 뒤 우리 커플도 결국 헤어졌다.
영화의 마지막 Epilogue 장면을 떠올리며 난 그 친구와의 첫 만남으로부터 어쩌면 코치님의 말대로 우리 둘이 만날 수도 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레슨장에서 말했던 자신의 이상형이 '오빠처럼 체력이 좋고, 나보다 운동을 잘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 친구가 내 여자친구에게 '오빠는 이래서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다던 순간들도 잠시 스쳐갔다.
모두 내 착각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주 잠시 '만약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5. Epilogue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우리 커플은 헤어진 뒤 한 동안 친구처럼 지냈고 둘은 헤어지고 몇 년의 시간이 더 지난 뒤 각각 다른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얼마 전 그 친구가 여자 야구를 시작하고 싶은데 어디서 배워야 할지 모르겠다며 알아봐 줄 수 있냐는 연락이 왔다. 난 이제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어 알아봐 주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답을 해주었다. 그 뒤 그 친구는 야구가 아닌 악기를 배우는 취미를 시작했다.
그 친구와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지금의 남편과 재밌게 사는 모습을 보며 20대의 우리의 모습이 잠시 생각났다. 지금보다 어렸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재밌었고 어디를 가도 즐겁게 놀았던 그때의 나의 모습도 그 친구의 모습도 우리 넷의 모습도 잠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노래 가사와 만화 장면이 떠오르게 되었던 것 같다. 야구 만화 H2의 내용으로 노래 가사를 쓴 델리스파이스의 고백.
델리스파이스 - '고백' 중
정말 미안한 일을 한 걸까
나쁘진 않았었지만
친구인 채였다면 오히려
즐거웠을 것만 같아
하지만 미안해 네 넓은 가슴에 묻혀
다른 누구를 생각했었어
미안해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떠올랐었어 그 사람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