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룻밤의 인연(1)

CHEEZE - Madelein Love

by 설탕우유

0. Prologue


이번 에피소드는 내가 브런치 작가로 데뷔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짝사랑 이야기다. 오랜 시간 좋아했고 아파했던 이야기. 맘속 한편에 묻어두었던 털어내고 싶었던 이야기.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접어야 했던 이야기. 나의 못나고 찌질했고 이루어질 수도 시작할 수도 없었던 나 혼자 끝을 내야 했던 그 시절의 사랑이야기.


단 하룻밤의 인연으로 10년의 시간을 알고 지냈던 그때의 사랑이야기. 나의 짝사랑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그때의 사랑 이야기. 이제는 행복을 바라며 연락할 수 없는 그 사람에게 보내는 나의 작은 안부.

선명하게 아팠던 그때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본다.





CHEEZE - 'Madelein Love' 중


이따가 널 보면 무슨 말을 할까

날씨가 좋다고 공원이라도 좀 걷자 할까

짓궂은 장난이라도 용감하게

오늘은 널 웃음 짓게 만들 거야





1. 내일로(Rail-ro)는 인연을 싣고


나의 군 생활은 다른 사람들보다 시작이 조금 늦었고 조금 더 길었다. 두 번의 재수경험이 실패로 끝난 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선택한 군 입대였다. 다행히도 군 입대는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고, 군 생활에서 얻은 최고의 재산은 몸과 정신이 모두 건강해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역을 앞두고 사회로 돌아가는 것에 부담감을 느껴 전문하사라는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이렇게 나의 첫 직장 생활은 군대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출퇴근이 있는 삶. 나쁘지 않은 일상과 내 씀씀이에 충분히 넉넉했던 월급. 단 하나 아쉬움은 외로움을 달랠 방법이 없었다는 것.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군 선배들의 모습은 부러운 모습이었지만, 그만큼 안 좋은 모습도 보여주었는데 회식 후 이어지는 일탈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나를 함께 끌어들이려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 일탈의 삶으로 빠지지 않으려면 사회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 생활 동안 모인 휴가들을 올려놓고 보니 거의 한 달을 사회에 있을 수 있었다. 난 못 가본 곳들을 최대한 많이 둘러보겠다는 생각으로 코레일 내일로를 나의 첫 여행 계획으로 잡았다. 장소를 정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곳에 아무 때나 내리려고 생각했었지만, 쉽게 숙소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기차 안에서 급히 내일로 정보 카페를 찾아 내일로와 연계된 혜택이 있는 보성의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2. 게스트하우스에서 시작한 10년의 인연


기차에서 급히 게스트하우스에 예약전화를 한 뒤 보성역에 도착했다. 우리가 내린 기차가 보성으로 오는 마지막 열차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택시 기사님들이 막차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보성역에서 같은 게스트 하우스를 향하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택시를 타고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게스트 하우스는 사장님이 직접 녹차밭을 가꾸시며 나온 흙으로 토굴과 토담집을 만드신 독특한 곳이었는데 저녁에 고기를 구워주고 특별히 담금주를 내주시며 편안히 이야기를 나누고 응원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셨다. 마침 그날 모인 사람들이 나이대가 비슷했기에 금방 친해졌고, 우리는 다음날 함께 보성녹차밭(대한다원)을 가기로 했다. 그렇게 보성역에서 또 각자의 방향이 달라 헤어지며 다음 모임 약속을 서울로 잡았다.


일주일 뒤 내일로 여행이 끝나는 마지막 날. 부대로 복귀하는 전 날 서울을 들러 모인 자리에서 생각보다 서로가 잘 맞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우리 모임은 정기 모임으로 바뀌었다. 각자의 지역이 달랐고 각자의 사정으로 바쁜 삶을 살았기에 1년의 한 번 정도 만나는 것이 서로에게 약속이 되었다. 이렇게 10년의 시간이 함께 흘렀다.



3. 우연에서 인연이 되기를 바랐다


모임은 10년 가까이 이어졌지만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친구가 개인 사정이 있어 다음 기회에 꼭 보자는 약속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그 친구는 매번 나가지 못해 너무 아쉽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꼭 다음 기회에는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미뤄왔다.


"나 오빠 동네에 취업했어!"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 친구의 연락을 받았던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주말 친구들을 차에 태우고 다른 지역의 카페에 놀러 가서 커피를 마시던 중이었다. 친구의 연락을 받고 반가움과 함께 궁금증이 생겼다. 마침 다음날 출근을 위해 우리 지역에 내려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녁 즈음에 잠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조용한 카페에서는 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CHEEZE - '어떻게 생각해' 중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넌
난 늘 생각해 난 늘 생각해야 해
이제 그만 지겨워





4. 소나기


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함께 만났던 날이 기억났다. 당시 우리나라의 수입맥주가 막 들어오던 시기였다. 이태원에 유명한 생맥주 가게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가게에서 모인 날이었다. 봄날씨에 비예보는 없었던 날. 가게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가게로 이동하려는데 갑자기 밖에 마른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 친구가 혹시 몰라 챙겨 왔다는 우산을 옆에 있던 나와 함께 썼다. 아주 잠시 어색해진 분위기에서 내가 손을 뻗었다. "내가 우산 들게" 그 친구는 "응 언제 들어주나 보고 있었어"라고 답했다. 조금은 예상하지 못했던 이 대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친구의 이런 톡톡 튀는 시원한 성격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 조금은 독특했던 그 친구의 목소리까지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친구를 오랜만에 카페에서 만났을 때 만나러 가던 반가움과 궁금증이라는 감정보다는 전혀 다른 감정이 떠오르고 말았다. 그래서는 안 됐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카페에서 친구를 마주친 순간 '어? 이 친구가 이렇게 예쁜 친구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남자친구와의 장거리 연애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했기에 혹시나 옆에서 기다리면 내게 기회가 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버렸다.


X8ZZ7R4b-FZWsjxu_ZKJjEPjDkk.jpg 우산을 함께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까워지는 걸까 사진출처 : 픽사베이


5. 오늘의 운세


카페에서 만난 뒤 그 친구를 다시 보게 된 건 몇 주 뒤였다. 마침 그 친구가 본가에 올라가지 않는 날이었고, 난 오후까지 일정이 있고 밤에는 약속이 없었다. 저녁에 맛집이나 놀만한 곳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재밌게도 한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오늘의 운세에 '운수대통, 원하는 일이 다 이루어질 거예요.'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친구와 만나 그동안 못 만났던 3~4년 정도의 일들을 막 풀어놓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도 3~4년 정도의 시간을 연애를 하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우리의 이별 경험을 듣더니 내 잘못을 탓하며 "뭐야, 내가 쓰레기랑 밥을 먹었어!"라고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나를 탓했다. 물론 내 해명을 듣고 조금은 "아 그래 그럼 그건 정상참작" 하며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술과 함께 했던 저녁 자리였기에 잠시 술을 깰 겸 밖을 걸어 다니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난 나름대로 내가 알고 있던 맛집들과 다닐만한 곳들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큰 달 모형이 있는 포토존을 지나가고 있을 때 '찍어줄까?'라고 묻자 그 친구는 잠시 고민했고 찍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오늘의 운세에 적혀있던 대로 내게는 최고의 날로 남았지만 우리의 만남은 그날 까지였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요일 단 하룻밤의 인연(2)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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