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좋아해서 미안해(2)

휘성 - ..안 되나요...(화양연화)

by 설탕우유

6. 나만 몰랐던 이야기


할 말이 있다던 그 애와 난 자주 가던 동네 공원으로 갔다. 도무지 할 이야기가 뭐가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졸졸 따라가 공원 벤치에 앉은 그 애는 울음이 터졌다. 막을 수 없어 터져 나왔다는 표현이 잘 어울렸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들에 그저 놀라고 어쩔 줄 모르고 속으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었다.

위로를 하고 싶지만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도 모른 채


한참을 울고 나서 그 아이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내게 이야기했다. "나 한 달 정도 잠깐 친구랑 사귀다가 헤어졌어" 그제야 화장을 하고 왔던 학원에서의 그날이 내게 하소연했던 그 말들이 무슨 의미였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항상 우리는 넷이 뭉쳐 다녔기에 비밀 연애를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모든 생각이 거기서 멈춰버렸다.


'왜 이 이야기를 나한테 한 걸까', '왜 나 모르게 둘이 만나다가 헤어졌던 걸까'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이어서 말했다. '미안해, 너한테는 말하지 말자고 그랬어' 이 말은 내 친구가 내 속에 이 아이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를 알아서였던 것 같다. 그 말에 멍했던 정신에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이 행동에 그 아이도 왜 갑자기 침을 뱉냐고 물었고 난 너무 입이 답답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화를 풀 방법이 그 방법 밖에 생각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휘성 - '미인' 중


왜 울고만 있나요

내 앞에 너무도 아름다운

그대여 제발 고개를 들어요

내 사랑이 아직은 그대 곁에 있는데





7. 서툴고 못난 고백


언젠가 너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게 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 본 감정조차 처음인 나였기에 그 아이에게 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될지도 전혀 그려보지 못했다. 냉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 마음을 전해야 한다는(전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말이 나왔던 것 같다. "나 너 좋아해"


그 애는 잠시 놀란 듯했지만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친구도 너한테는 말하지 말자고 했던 것 같았고"라고 말을 이어갔다. 마치 둘의 사이에서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과 그것이 나를 위한 배려였다는 사실이 더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 애는 내게 둘이 어떻게 만나고 왜 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나는 너를 왜 좋아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우리 둘의 이야기가 시작할 즈음 아직 해가 남아있었지만 이야기가 끝날 즈음엔 어느새 완전한 밤이었다. 그 친구의 집 앞에서 한 번 더 고집스러운 고백을 던지고 그 아이를 집으로 들여보냈다. "나 올해 너랑 같은 지역으로 대학을 못 가면 한번 더 해서 따라갈 거야. 그리고 너랑 결혼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살 거야" 스무 살의 서투르고 어리고 바보 같았던 내 고백에 그 아이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답을 했을 뿐.



8. 마지막 인사


수능이 끝난 뒤에도 우리의 관계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그 애는 우리가 예전처럼 넷이 만나 놀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틱틱 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던 나에게 부탁한다는 표현까지 썼기에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에 약속을 잡고 거의 한 달 정도만에 넷이 모일 수 있었다. 함께 점심 즈음 만나서 그동안 서로 못다 한 이야기들을 정신없이 털어놓았던 것 같다.


저녁을 먹으려고 길거리를 걸어가던 중 야구공을 던져 인형 뽑기를 하는 곳이 있었다. 야구를 좋아하던 내게 친구들은 인형을 뽑아달라고 했는데 그 아이가 내게 인형을 뽑아서 옆에 다른 친구에게 선물해 달라며 나를 졸랐다. 난 싫다고 거절했다. 네가 아닌 다른 친구에게 인형을 따 주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였지만 너무 어린 생각이었다. 그날 그 애는 내게 함께 온 다른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아마 자신이 아닌 우리 둘이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것 같았다. 지금도 그때의 거절이 둘에게 미안하고 후회된다.


우리는 다음 모임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음에 보자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그 뒤 나는 그 아이에게 안부인사인 듯 많은 문자를 보냈지만 거의 대부분의 문자에 답변은 오지 않았다. 물론 답장이 온 문자들도 아주 짧은 단답형 텍스트에 불과했다. 그러다 새해 초에 바쁜 일이 끝났다며 내게 시간을 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먼저 보자는 이야기에 오히려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너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흔쾌히 나갔다.


3pPr-1iMJzWnVTNnJ5Cc3SdyzYw.jpg 사진처럼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9. LIKE A Movie


내 걱정과 달리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하며 점심을 먹고 카페로 넘어갔다. 카페에서 그 아이는 달라진 분위기로 먼저 말을 꺼냈다. "나 이제 네가 나한테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 난 이제 너무 힘들어 그만 연락했으면 좋겠어" 내게 차분하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감정을 꾹꾹 누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 애는 바쁘다며 일어섰다. 급하게 따라 나오는 나를 뒤로하고 그 애는 신호가 있는 횡단보도를 빠른 걸음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급히 따라가 그 애 손을 잡았을 때 그 애는 펑펑 울고 있었다. "나 좀 놔줘!"


횡단보도 한가운데에서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주변에 길을 건너던 사람들이 아주 느리게 보였다. 난 그 아이의 손을 놓고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반대편으로 빠르게 걸었다. 도망치듯 걷다가 뒤를 돌아봤을 때 그 아이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그 순간의 그 울고 있던 그 아이의 모습과 사람들 사이에 시간이 멈춘 듯 잠시 서 있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얼마 뒤 나의 재수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고등학교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스무 살 자신의 대학 생활이 너무나 힘들었다며 나와 술 한잔 하며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힘든 생활들을 토로하다 술에 잔뜩 취해 가게에서 잠이 들었다. 자고 있는 친구를 보며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데 가게에서 들리는 노랫말이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휘성 - '..안 되나요...(화양연화)' 중


안 되나요 나를 사랑하면

조금 내 마음을 알아주면 안되요

아니면 나를 그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되요 그대만 내게 있으면

그대만 있어 준다면




10. Epilogue


며칠 뒤 우연히 과거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에서 휘성의 With Me가 나오는 것을 본 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얼마나 많은 휘성의 노래들을 듣게 되었는지 당시 내 미니홈피에 노래들은 가수 휘성의 노래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별 노래와 짝사랑 노래들이 하나하나 다 내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의 공부를 더 하게 되었을 때도 참 많이 들었다.


나의 20대를 함께 해왔던 가수. 그 아이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던 노래 가사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즈음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의 아련한 추억들을 함께 아파할 수 있었던 나의 가수. 나의 첫사랑의 추억을 보듬어 주었던 그의 노래. 나의 뮤즈였던 가수 휘성.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평안하길 빌어요.


그리고 얼마 전 보게 된 그 친구의 결혼사진. 정말 그때의 걱정은 잊을 만큼 살이 빠진 모습의 웨딩드레스 사진을 보게 되었다.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나의 첫사랑, 좋아해서 아프게 해서 미안했어.






다음주 화요일에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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