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동생 같은 너(2)

권진아 - 끝

by 설탕우유

6. 소풍의 여운


직장인이 되어 공연팀을 들어오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공부를 하다가 지친 그 아이가 내게 먼저 연락을 해왔다. 집에만 있기가 너무 심심한데 연습하는 곳에 폐가 되지 않는다면 구경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어느덧 2~3주에 한번 정도 꾸준히 놀러 오다 보니 공연팀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내가 팀에 들어온 지 3~4달 정도가 되던 시점이었다. 한 친구가 공휴일에 같이 소풍을 가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대부분의 팀원들은 답을 하지 않았고, 나와 세 명의 인원만이 소풍에 참여하기로 했다. 소풍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나도 마침 그 아이를 데려와도 되는지 물어보고 데려가게 되었다.


소풍 직전에 인원이 추가되어 차량을 두대로 나누어 이동하게 되었는데 "오빠 저 다른 분 차 타는 게 너무 부담스러운데 저 좀 태워가주시면 안 돼요?"라고 말했기에 별 의심 없이 내가 태워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유명한 공원길을 산책하고 자전거를 탄 뒤 저녁을 먹으러 가려던 중이었다. 차량의 인원을 다시 섞어서 타려고 하는 도중에 소풍을 제안했던 친구가 내게 말했다.


"오빠 나 촉 되게 좋거든? 걔가 오빠 좋아하는 거 같다."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웃어넘겼지만 그 말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을 느꼈다.



7. 실수와 실망


소풍의 마무리는 술자리로 이어졌다. 마침 알고 있던 형이 가게를 하고 있었기에 단체로 미리 예약을 해둔 뒤 가게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우리의 인원들을 보고 형도 조심스럽게 합류했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술을 마시고 비워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기억을 놔버린 상태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 채 계속 마시고 또 마셨다. 소풍의 마무리가 너무 좋지 못했다.


"오빠 저랑 얘기 좀 해요. 지금 통화 가능해요?"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던 다음 날 아침. 첫마디와 함께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내게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것. 그 친구는 그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내게 짚어주며 술자리에 형이 끼면서 나와 형의 언성이 높아지고 욕설과 고성이 자연스럽게 섞이기 시작했으며, 자리가 너무 격해지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오빠라는 사람의 그런 상스러운 말투와 행동이 너무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내가 술에 취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고백하자 그 친구는 내 사과를 받아주었다. 하지만 단순히 사과로 끝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다음날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모두 사과를 하고 공연 전까지는 술을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마 이 날 그 친구 기준에 넘어서면 안 되는 선을 넘었던 것 같다.



8. 너의 매력


그날의 일이 끝난 뒤 그 친구는 내가 술에 취한 상태라 '실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오빠도 술자리에서 늘 조심해야 할 것 같다.'라는 말로 그날의 일을 정리하고 예전의 사이로 돌아왔다. 그렇게 이후에도 우리 연습실에 자주 놀러 와서 나와 친구들과 가볍게 저녁을 먹고 내가 집에 데려다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조심스럽게 그 친구가 내게 꺼낸 이야기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극단 내에 그 아이와 띠동갑 나이 차이가 나는 분이 있었는데 소풍 때도 이 아이가 온다는 이야기를 보고 뒤늦게 합류를 했고, 이후로도 계속 그 아이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있었다고 했다. 불편하다는 티를 몇 번 냈고 소풍 때도 일부러 그분이 태워준다는데 한사코 거절하고 나와 다녔지만 연락은 끊기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 이후 난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 아이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감정이 나에게도 모호한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이때 우리 둘이 붙어 다니는 모습이 극단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오해를 만들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때쯤 이런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어차피 이렇게 사람들에게 오해받는데 둘이 마음만 맞으면 만나봐도 되는 건 아닐까?'


이미 이런 고민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내 마음이 그 친구에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 같다.


microphone-2130806_1280.jpg 아마 나에게 스위치가 켜진 순간은 이때였나 보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9. 고백의 트리거


우리 극단의 정기 공연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모임처럼 극단의 단장의 집에서 모인 날이었다. 당시 올림픽 기간이라 다 같이 술을 마시며 올림픽을 보고 있다가 단장의 집 안에 노래를 녹음할 수 있는 방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졌는데 그 아이가 마침 구경해보고 싶다고 하자 단장이 함께 가자며 데리고 갔다.


함께 있던 자리에서 둘이 빠진 자리. 단장이 은근하게 여자 단원들에게 아슬아슬한 스킨십과 터치가 잦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둘만 올라간 자리에서 불안함과 거슬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그 애가 녹음하던 방에서 내려와 내게 조심스럽게 "와 오빠 저 불편해 죽는 줄 알았어요. 노래 알려준다면서 은근히 자꾸 저한테 터치해요."라는 말을 듣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난 그 아이를 데려다주며 지금의 극단에서 나와야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혹시 나와 만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생각으로 "혹시 나랑 만나고 네가 자리 잡았다고 생각되면 결혼까지 생각해 볼래?"라고 말을 꺼냈다. 한참을 고민을 했던 그 애는 '그건 안될 것 같다'라고 답했다.



10. 똥파리


그 친구를 늘 데려다주며 그 친구의 결혼관이나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물론 내가 이 친구의 배우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 나의 자의식 과잉과 이 친구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뒤죽박죽 섞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내게 "오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나쁜 삶일 것 같지는 않은데, 저는 친구로서 오빠를 잃고 싶지 않아서 친구로 남아있으면 좋겠어요." 왜 난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왜 내가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을까 아마 그때의 난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마음에 네게 실수했던 것 같다.


언젠가 나와 친한 친구의 여자친구가 내 이야기를 듣고 극단에서 그 친구에게 추근덕 거렸던 사람들과 나를 묶어 '똥파리가 꼬이고 거기에 네가 같이 꼬였네.' 라며 비웃었다. 어쩌면 내가 그 친구에게 가졌던 그 마음이 사실 그 친구에게 내가 똥파리 같은 존재가 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빠르게 정리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던 건 이때쯤이었다. 내가 똥파리가 되어서도 안 됐고, 그 친구가 더더욱 똥파리가 꼬이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됐다.


우리는 약속을 했다. 나의 마음을 서서히 정리해 가기로 그리고 서로의 소식을 바로 전해주고 서로를 축하해 줄 수 있기로 했다. 그렇게 계속 친구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11. Prologue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친구도 나도 서로 각자의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약속대로 그 친구는 만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내게 이야기했고 나 역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해줬을 때 너는 달려와 나의 여자친구를 안아주며 '오빠랑 만나줘서 너무나 고마워요' 라며 이야기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고 넌 내게 결혼 소식을 알렸다. 물론 결혼식에 쓰일 MR을 좀 편집해 달라는 부탁으로 연락했지만


결혼을 4일 남겨놓고 MR을 부탁한다는 너를 보며 나도 잔소리 몇 마디와 함께 축하의 인사와 행복해하는 너의 모습을 기대하며 MR을 보내줬다. 그리고 며칠 전 내게 너의 임신 소식을 전하며 오빠는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의 인사에 '음 아쉽지만 우리는 결혼까지는 못하게 됐어. 헤어졌어'라는 소식을 전해야 했지만


언젠가 네가 '제가 오빠보다는 빨리 결혼할 거예요!'라고 당당하게 외치던 너의 모습이 기억난다. '내가 그럼 누가 먼저 결혼할지 내기할래?'라는 말에 장난스럽게 냉장고라도 걸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장난치던 모습도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헤어진 뒤 네가 불러줬던 이 노래가 참 자주 생각났었다.



권진아 - '끝' 중


차라리 화를 내지

싫어졌다고 말을 하지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니


내가 갈게

애써 미안한 표정 하지 마

싫어진 거잖아

그래 널 떠나 줄게

비겁해지는 널 보는 게 아파

내가 갈게 널 보내줄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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