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스토커
0. Prologue
우연을 인연으로 착각했고 어쩌면 짝사랑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우연은 필연이 될 수는 없었고 그저 넓지 못했던 나의 시야가 아쉬웠던 시절
난 참 바보 같은 사람이었고 사랑을 잘 몰랐던 사람이었다.
그때의 바보에게 보내는 이번 글.
1. 복학생 같았던 신입생
두 번의 재수 실패 후 군에서 전역을 고민하던 시점이 24살의 나이였다. 당시 대학교를 가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는 생각을 해서 직업군인으로 넘어가려는 고민을 하던 중이었는데, 마침 전문하사라는 제도가 있었기에 복무를 연장했고, 연장 기간이 끝날 무렵 군인의 삶과 사회인으로의 삶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직업군인 생활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늦은 나이는 없다.'라는 것이었다. 병사 때나 직업군인 때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입대한 선임들을 봐오면서 느낀 점이었다. 그렇게 전역을 선택한 후 친구들보다는 늦은 26살에 신입생으로 대학 생활을 선택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졸업을 준비하거나 혹은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늦은 나이에 입학한 점이 부끄럽게 느껴졌기에 대학생활을 조용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내 오랜 친구가 그 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던 중이라 함께 동아리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2. 우연이 인연을 불러오기를
야구 동아리의 특성상 대학생들의 일처리가 사회인들처럼 빠르지 않다 보니 유니폼을 주문하고 바로 경기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가 늦어졌는데 이미 사회인 야구를 통해 야구를 해왔던 나를 바로 경기에서 쓰기 위해 동아리방에 남아 있던 유니폼 하나를 빌려 입게 되었다.
남아있던 유니폼은 마침 선수유니폼이 아니라 동아리 생활을 하러 들어왔던 매니저라고 했다. 지금은 잠시 활동을 쉬고 있다고 했지만 마침 나와 같은 학과의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신청했던 교양과목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 수업에서 처음으로 인사를 건네면서 '혹시'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후 유니폼을 돌려주고 내가 지역의 동아리야구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총괄하게 되면서 그 친구에게 같이 활동해 볼 생각이 있는지를 제안하게 되었다. 그 친구도 시간이 된다면 활동을 하겠다는 답을 주고 나서 이후에 그 친구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3. 우연이라는 이름의 착각
그 친구와 이후로 수업뿐 아니라 대외활동에서도 겹치는 일이 많아졌다. 우리 지역 동아리 야구 리그가 기업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었다. 그 기업에서 각 대학교마다 봉사동아리 지부를 두고 있었는데, 기업의 담당자셨던 과장님이 우리 학교의 동아리장으로 내게 제안을 주셨다. 하지만 당장 야구 쪽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어서 생각났던 게 그 친구였다.
마침 그 친구는 기업의 대외 활동의 동아리회장 자리를 제법 매력 있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나를 대신해 기업에 추천해 준 뒤 그 친구의 활동 영역은 봉사동아리와 기업 활동 쪽으로 더 가까워졌다. 다만 확실히 이후로 그 친구와 개인적인 연락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단지 바빠져서 연락이 줄어들어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는데 그 친구와 나의 연락 빈도뿐 아니라 답이 오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에게서 나와의 연락을 더 자주 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통해 내가 생각한 우연들은 그저 나의 착각이었음을 느껴가고 있었다.
10cm - 스토커
나도 알아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난 못났고 별 볼일 없지
그 애가 나를 부끄러워한다는 게
슬프지만 내가 뭐라고
빛나는 누군갈 좋아하는 일에
기준이 있는 거라면
이해할 수 없지만 할 말 없는 걸
난 안경 쓴 샌님이니까
4. 짝사랑이 인생에 주는 도움
그 친구를 처음 만나게 되었던 교양 수업은 내 대학 시절을 통틀어 최고의 수업이었다. 당시 교수님은 이후로 유명해지셔서 방송에서 강의를 하는 분이 되셨는데, 그 친구와 같은 수업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강의 시간에 더 집중했고 더 잘하고 싶었다. 시험 없이 한 학기의 총 4번의 리포트로 성적을 결정하셨는데, 두 번째 리포트 발표 때 교수님이 "내가 칭찬을 잘 안 하는데 넌 정말 잘했다."라는 칭찬을 해주셨다.
늘 강의가 끝나고 그 친구와 대화를 하며 나섰던 강의실이었지만, 그날 그 친구는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빠르게 강의실 밖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자신이 생각했던 나라는 사람을 학점을 경쟁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보고 있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마음도 잘해주고 싶었던 마음도 일방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친구와 겹쳤던 다른 활동들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내 욕심이 행운을 불러왔는지 그 해에 하는 일마다 잘 풀렸고 덕분에 좋은 성적과 나의 경력이 이 시기에 참 많이 따라왔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내가 더 열심히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배웠으니 됐는지도 모르겠다.
5. 그 후에
그 친구와의 연락은 점점 간격이 늘어지다 조용히 끊어졌다. 내게 오는 연락들도 내 도움이 필요할 때나 일적으로 필요한 일 외에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즈음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 그 친구가 먼저 연애를 시작하게 된 사실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나 역시 다른 사람과의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마주쳤을 때 흠칫 놀라며 나를 훑어보던 시선이 기억에 남는다. 잘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그리고 친한 동생들과 술 마시며 그 자리에서만 터놓을 수 있었던 나 혼자 마음 아파했던 그때의 아주 짧았던 시간. 그 시간에 아픔과 함께 얻어간 것이 아주 많았던 시간이었음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소개해 준 동아리를 통해 그 친구는 기업의 인턴십 프로그램 기회를 얻고 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 추천해 주셨던 담당자님이 내게도 내년에 도전해 보라고 제안해 주셨는데, 기업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의 효과가 좋지 못했다며 나는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
언젠가 그 친구에게서 몇 년 전쯤 새해 첫날 "새해 복 많이 받아 오빠, 잘 지내고 있지?"라는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나를 통한 기회가 됐다는 것을 기억해주고 있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식적인 "응 잘 지내고 있지 너도 잘 지내고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답변을 끝으로 우리는 연락하지 않았다.
6. Epilogue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때의 나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라는 사람은 참 섬세하지 못했고 서투르며, 자존감이 높지 않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그 친구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나도 그 친구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누군가를 좋아하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내게 남았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