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의미의 회피
얼마 전 친한 동생에게 '자고 일어나서 연락하자'라고 보낸 뒤 3주가 지나있었다. 내게 있었던 자잘한 사건들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고, 자존감이 떨어져 있던 상태라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연락을 줄이게 되었다. 간혹 나간 모임에서도 익숙한 듯 웃고 떠들며 잘 놀다 집에 왔지만, 집으로 돌아왔을 때 소위 '현타'가 몰려왔던 탓에 일주일이 넘도록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 그 친한 동생이 "오빠 동굴 들어간 거 아니지?"라고 보내주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동굴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도(혹은 들어갔는지도) 몰랐을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저 연락이 온 시점부터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번 글은 그와는 별개로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 알고 싶지 않았던 브런치의 차단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며칠 전 이야기다. 외부 활동에서 에너지가 넘치고 사람들을 이끌고 웃고 떠들며 활동하는 일들을 많이 해왔지만, 돌아서는 순간 장난처럼 들었던 말들에 스크래치가 남아 나의 행동과 말이 실수였는지 혼자 앓아야 할 때가 있다.
며칠 전 익숙한 이름의 라이킷과 구독 알림을 보고 나의 브런치 활동을 알리지 않았는데, 내 브런치를 어떻게 알고 들어왔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 사람의 브런치를 들어가서 글 하나를 읽어봤는데, 대충 내용은 내가 배려가 없고 안목이 없는 리더였다는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브런치 차단 기능을 찾게 되었다.
그 글을 내가 읽게 하기 위해서 브런치까지 찾아와서 작가가 되고, 내 브런치에 라이킷과 구독을 넣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무서웠다. 그 당시 그 친구가 아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가 그 한 사람을 위해 뒤에서 배려하고 신경 쓰고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받는 사람이 모른다면 우리의 배려도 헛수가가 되어버렸음을 느껴버렸다.
사람은 참 위선적인 동물이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과 자기 합리화가 따른다는 것은 언제나 오롯이 '자신'을 면죄부를 쥐어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배려는 자신에게 배려가 없었으므로 받아들이고, 실수를 모른 척해주던 모습은 무관심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돌아서 우리의 배려가 부족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배신당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 역시 위선적으로 그 친구에게 배려하지 못한 사람이고, 부족한 리더로 남았을지라도 내가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이 사람을 내 기억에서 지우기로 노력해보려고 한다. 인생의 기회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배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한 것임을 생각해 봤다.
내가 살아오면서 내 손으로 사람들을 '차단'해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이 사람들을 차단해야 했던 이유는 내가 그 사람들을 보는 것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내 마음을 너무나 흔들고 아프게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내가 뒤로 돌아서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