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도전이라는 불을 지펴준 인연들
1. 우연히 인연이 따라오듯
첫 공연을 올렸던 직장인 극단에서의 끝이 너무 좋지 않았기에 공연은 더 이상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당시 이직 준비만 생각하고 지내던 중이었다. 더 이상의 공연을 올리는 것에 대한 설렘보다 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 더 먼저였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우리 지역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던 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남자 인원이 부족해서 도와주실 수 있겠냐는 연락이었다.
예전에 내가 공연을 올릴 때 무대 소품을 빌린 경험이 있어 시작된 인연이었다. 주변에 소품을 구하려던 중 연락을 받고 흔쾌히 빌려줬던 고마운 기억이 있었기에 당연히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선택이 내게 최고의 순간이었으며 동시에 나쁜 기억을 남기는 선택이 되기도 했다.
뮤지컬을 처음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반 같은 교육 커리큘럼이 있었는데 연기를 배우는 시간과 안무를 배우는 시간, 노래를 배우는 시간이 각각 나뉘어있었고 작품을 갈라 형식으로 회차와 배역을 나누어 준비하는 방식으로 신선하게 짜여있었다. 실제로 수업의 내용들도 좋았지만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2. 행운의 행복이 따라오고
일주일의 두 번씩 공식적인 연습시간을 제외하고 퇴근 후 사람들은 연습하고 싶다며 자주 모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연습실에서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저녁자리나 뒤풀이로 이어지는 시간도 즐거웠지만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친해지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의 우리는 한번 더 만나기 위해 연습실에 모였던 것 같았다.
공연 경험이 있던 내가 팀의 반장이 되어 자연스럽게 나를 중심으로 연습이나 소품 준비를 함께 이끌어가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다른 일정들과 연습이 겹치면 다른 일정들을 조율해서 연습실에 다 모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내게 공연을 위한 질문도 많아졌다. 나 역시 학원의 선생님들이 알려주지 않는 공연장에서 느끼거나 실수하거나 재밌었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 행복은 조금 더 이어지지 못했다. 학원장이 당시 어린 안무 감독과 비공개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학원의 단원들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연애 같은 느낌이었다.) 둘이 다툼이 있을 때 술을 마시고 우리 기수에 있던 친구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상황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에 단장과 그 친구 사이에서 둘의 사이를 떨어뜨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3. 리허설과 공연날의 노쇼
불편한 분위기를 감지한 단장(학원장)은 우리에게 문제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고, 그 메시지는 그 친구에게도 똑같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불편함을 겪은 이야기들을 모아 다시 단장에게 보냈을 때 단장은 본인의 '멘털이 산산조각' 나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수업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간담회 같이 우리를 모아 어떤 이야기인지를 듣고 싶다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단장은 이미 반장이었던 나를 중심으로 우리 기수가 학원이랑은 돌아서겠다고 내가 역모를 꾸민 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계속 나와 그 친구가 뒤에서 몰래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추궁을 했는데 단장 생각에는 내가 몰래 만나고 있어서 지켜주려고 편을 가르고 우리 기수 사람들을 선동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단장이 이미 그렇게 생각한 이후부터 정상적인 수업진행이 안되었을 뿐 아니라 공연을 앞두고 본인이 스태프를 하겠다고 했으나 리허설 날 펑크를 내고 현장에 나오지 않았으며 공연날 당일에도 오전 내내 공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그 사이에 함께 공연을 했던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조명과 마이크 세팅, 함께 한 친구들과 무대세팅을 진행해서 공연 준비를 마쳤다.
그때 나와 함께했던 기수 사람들은 공연 후 내게 "어차피 반장이 이 공연은 올려줄 거라 믿고 있었다고" 그 말이 이 답답함과 화가 날 만한 상황들을 모두 씻은 듯 지워내고 있었다.
4. 프로 준비하시는 게 어때요?
공연 이후 지나칠 정도로 서로에게 애정이 깊었던 우리는 공연 뒤풀이 엠티를 마지막으로 각자 톡방에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마지막 인사를 길게 남긴 뒤 톡방을 나갔다. 아직도 사실 그 마음이 다 이해 가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만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 깊어지는 이 관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깊어지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얼마나 서로가 서로를 신경 쓰고 믿어주며 즐겁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게 영향을 끼쳤던 친구들의 말이 있었는데 '프로 준비하시다가 오신 거죠?'라는 질문을 받아서였는데, 함께 하는 친구들 뿐 아니라 학원의 선생님들도 '준비하신 적이 있으신 거죠?'라는 질문을 듣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중 유명 예술대학교를 다시 준비하던 친구와(지금은 다니고 있다.) 가수를 준비하던 친구가 내게 진지하게 배우 준비를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이 말이 내게 기폭제가 되어서 대학로 쪽에서 프로 데뷔 공연(상업뮤지컬 데뷔)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데뷔 공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공연을 마친 뒤에도 내가 살던 곳으로 내려가지 않고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여 평일에도 뮤지컬을 보러 다니며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지금도 내가 여유가 있었다면 혹은 나이가 조금 더 어렸다면 나는 이 길을 계속 선택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조금 더 오래 도전해 보았을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지금보다 더 멀리 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지금의 내 삶과 현실에 계속해서 만족하고 있다. 완전히 손에서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꿈꾸고 느껴본 사람으로서 즐기는 사람이었노라고 그리고 그때의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했고 고마웠다고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 '그런가 봐' 중
그런가 봐 너를 좋아해서 그런가 봐
괜히 짓궂은 장난마저도
너에게 말을 걸 핑계를 찾는 건가 봐
그런가 봐 너를 좋아해서 그런가 봐
니가 했던 말이 생각나고
잠에 들기 전에 너를 떠올리는 나
그런가 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