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체불과 반복

기대보다 컸던 실망

by 설탕우유

4. 독소조항의 계약서


우리 협회와 회사의 계약서에는 '아직 테스트하지 못했던' 사항이 들어가 있었는데 대표는 아직 회사의 프로그램의 현 상황을 정확하게 캐치하지 못한 상태로 호언장담 하며 계약서 상위 조항에 넣어놓았다. 내용은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1시간 내로 하이라이트 영상을 함께 업로드해 주겠다는 조항이었는데 아직 프로그램의 테스트가 덜 끝난 상태라 하이라이트 제작 작업은 테스트 시작조차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문제는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 대표였기에 직원들은 이 상황을 모르고 있는 상태로 전달받았다.


결국 계약 이행 첫날부터 사고가 터졌다. 첫 방송일로 예정해 놓았던 하루 전 날도 아침 8시부터 현장에 카메라 설치를 하러 가서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는데 피곤한 상태로 집에 와 1시간 정도 짧게 눈만 붙이고 다시 부랴부랴 현장으로 나가야 했다. 더 문제는 현장에서의 방송상태가 우리가 테스트할 때 보다 좋지 못했다는 점으로 첫날 방송 상태에 대한 클레임이 많았다는 것과 방송상태로 인해 마이크를 잡고 있던 우리의 손발도 거의 맞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경기가 끝난 뒤에도 문제였는데 대표가 한 시간 내로 만들어달라던 하이라이트는 현장의 방송상태 조율을 하느라 손도 대보지 못한 상태로 두 번째 게임 중계를 들어가야 했고 밤이 다 되어서 사무실에 복귀한 우리는 그때부터 하이라이트 제작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첫 번째 게임이 끝나고 나서 거의 12시간이 다 되어서야 첫 하이라이트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대표는 처음에 왜 우리에게 작업이 늦냐며 지적했으나 부대표님과 개발 이사님이 현장의 상황을 보고 계약서를 잘 썼어야 했다고 지적하여 일단 넘어갔다.


현장으로 나가야 했던 우리는 앞으로도 이 일이 반복될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개선해야 할지가 급선무였는데 당시 지인 중 해설로 합류했던 친구가 이런 시스템에서 일을 하는 것은 더 의미가 없을 것 같다며 빠지게 되었고 마침 현장에서 경력자로 일을 진행했었던 캐스터가 우리 회사 연락해 와 중계팀에 합류하고 싶다고 연락해 왔는데 이 합류가 큰 힘이 되기 시작했다.



5. 함께할 수 없었던 아나운서


부대표님이 나를 섭외할 때 내게 보여줬던 프로필 사진의 주인공. 아이돌 가수를 준비했었고 데뷔까지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진 그룹의 리더였던 친구였다. 당시에 카페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고 방송으로 다시 복귀를 하려던 중 우리 회사에서 방송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넣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회사까지 내려와 직접 만나볼 수 있었는데 현장의 팀장으로서 나와의 첫 만남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뭔가 이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중계를 위해 당시 월, 수, 금을 경기장으로 출근해야 했는데 아나운서가 제안받은 요일은 토, 일 주말 이틀이라고 했다. 내가 우리도 주말은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월, 수, 금에 출근해 주실 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알고 보니 우리 대표가 출근일을 주말이라고 이야기하고 데려온 것이었는데 그로 인해 이 친구를 아나운서로 데려올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급하게 아나운서를 구해야 하는 것은 내 몫이 되었고 다행히 내 주변에 방송, 연예 쪽을 준비하며 쉬던 동생이 있어서 운 좋게 섭외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다른 쪽에서 합류한 캐스터와 내가 데려온 아나운서 동생, 내가 회사로 데려온 편집자 동생으로 4명의 한 조가 만들어진 뒤 한 달 정도가 지나는 시점에 우리는 탄력을 받은 듯이 중계의 질이 좋아졌고 시즌 초반 우리에게 불만과 문제를 이야기하고 항의하던 팀들과 시청자들도 호의적으로 바뀌어 작은 선물을 나누어주거나 챙겨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좋은 분위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 임금체불이 시작됐다.


사진 : 제미나이 제작



6. 밀리기 시작한 월급


처음에 밀릴 때는 별 일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었다. 대금 입금이 늦어져서 며칠 늦어진다는 말로 시작되었던 체불은 점점 미뤄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점은 캐스터와 아나운서의 입금은 늦지 않았는데 둘은 인건비 지원사업을 통해서 돈이 나오는 곳이 있었기에 방송을 이어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곧 이 조차 얼마가지 못하고 끊기게 되었는데 지원 사업이 회사에서 먼저 지출을 한 뒤 신청하는 방식이었는데 먼저 지급해 줄 돈조차 떨어지게 된 탓이었다.


시간을 갖고 지켜보고 있던 아나운서와 캐스터는 돈이 나오지 않는 곳에 출근할 수는 없다고 나와 이야기가 되어 출근을 하지 않았고 나 혼자 방송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회사의 자금 사정은 풀릴 줄 몰랐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대표가 화상 투자설명회로 투자자들 앞에서 설명회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 회사 프로그램으로 투자설명회 진행을 돕기 위해 편한 트레이닝옷 복장으로 옆에 서 있다가 대표가 갑자기 나를 호출하더니 카메라 앞에 세우더니 현장 팀장이 대신 설명해 줄 거라며 내게 마이크를 넘겼다.


복장은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나 중계하고 있던 현장의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자 혹시 회사의 비전이나 이야기도 대표가 아닌 팀장이 더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며 내게 질문을 이어갔고 잠시 동안 대신 진행을 하다 마지막에 대표에게 마이크를 다시 넘기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투자설명회는 잘 끝마쳐지고 우리는 밀렸던 두세 달 치의 월급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얼마 가지 못한 상태로 우리 회사는 다시 임금체불의 늪에 빠졌다. 직원들은 순서만 달랐을 뿐 하나 둘 퇴사를 선택해야 했고 나 역시 두 번째 퇴사를 선택했다. 다만 이번에는 대표에게 조목조목 당신의 잘못에 대해서 할 말을 다 하고 걸어 나왔다.


벌써 5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난 아직도 당시에 회사에서 내가 쓰고 지출해 달라고 올렸던 지출경비의 비용을 처리받지 못했으며 마지막 달 월급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없던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재작년 즈음 뜬금없이 대표가 내게 건강하게 전화가 걸려와서 웃으며 잘 지내냐고 물었다. "저한테 웃으면서 전화하실 사이는 아닐 거 같은데"라고 했더니 굉장히 미안한 기색으로 "건강하게 잘 지내나 궁금하고 미안해서 전화했다"라며 통화를 마쳤다. 통화를 마치자 대표가 한편으로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보다 더 한 일을 겪은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잠시 이때만큼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 하던 시간에서 최악의 끝을 보여줬던 '좋소회사와의 만남과 이별'은 그랬다.





-퇴사로 공장으로 들어가게 된 사연

-사람이 빠르게 우울해지는 이유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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