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부터 공장까지
1. 퇴사부터 공장입사까지
임금 체불의 회사와의 작별 후 부대표님은 당장의 일이 끊어지는 것보다는 어떤 일이라도 하고 있는 것이 낫다며 나를 공장에 영업관리직을 제안하셨는데 나 역시 다시 취업을 준비하기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어 제안을 수락하고 일주일 정도의 휴식을 가진 뒤 공장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다만 이 선택은 내 인생 최악의 선택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아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장은 동종 업계와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높았고 연매출도 높은 회사였기에 겉으로 봤을 때 이 선택이 나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작 입사를 하고 내가 해야 할 일과 실제의 회사 구조를 알게 되자 이곳으로 온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출근 첫날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상태에서 앉을 시간이 없이 계속 라벨을 붙이고 랩핑을 감고 물건들을 분류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또 일을 배워야 한다며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야근에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퇴사할 때까지도 보지 못했던 내 계약서는 포괄임금이었고 새벽에 퇴근을 해도 아침 일찍 출근해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회사일을 배워나갔다. 집에서 내비게이션 상 40km가 찍히는 거리. 기름값도 톨비도 근무시간도 모든 것이 부담스러웠다. 9월 1일에 입사를 했는데 입사할 당시 월급이 15일이라고 하여 15일 치를 받고 넘어가는 걸까 했는데 10월에 들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이 조차도 공장 사정으로 모든 직원의 월급일이 26일로 밀리게 되어 나는 두 달 만에 첫 월급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적었다.
2. 결국 해보지도 못한 영업 관리
당시 회사에는 건드는 일마다 사고를 치고 거래처와도 관계가 껄끄럽게 만드는 직원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매우 투박했고 정상인들과의 대화가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아이도 둘 있었기에 회사에서는 어르고 달래며 몇 년 동안 이 직원이 나아지기를 바랐으나 함께 일하는 직원들조차 불만이 쌓이자 나를 그 자리에 대체시키려는 계획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공장에 돌자마자 그 직원분은 회사의 전무님께 일대일 면담을 요청하고 본인이 그 자리를 회사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할 테니 그 자리를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전무님은 조금 더 기회를 줘보자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나는 공장의 현장에서 지게차를 배우고 출하장에서 라벨포장과 랩핑을 하면서 영업관리와는 점점 멀어지는 길을 가고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도록 사무실에서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계속 난 현장으로 출퇴근할 뿐이었다.
1년이 지난 시점 나는 회사에서 더 높은 곳으로 가서 욕심을 갖고 일을 하려던 의욕이나 생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며 내 퇴근 후의 시간과 주말에 나를 출근시키지 않기를 바라며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 들었던 연봉도 간단한 영업관리직을 맡길 거라서 수긍했던 연봉이었지만 이미 나는 현장직으로 일을 하며 돈을 받는 직원 그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나의 카레는 굉장히 애매해져 있는 상태였다.
3. 불만과 우울함이 쌓여가다
불만의 폭발은 팬데믹 시기였다. 당시 코로나에 걸리면 지원금을 받고 2주 격리를 하던 시기였는데 문제는 우리 공장의 사정상 공장은 하루라도 쉴 수가 없었다. 인원도 타이트 한 상황이었기에 정말 아픈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몰래 다들 공장에 출근을 했다. 공장의 대부분의 인원들은 이미 코로나에 걸렸기 때문에 서로 감염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는 것 자체가 불만으로 쌓이던 시점에서 이 일은 불만이 폭발되는 시점이 되었다.
심지어 코로나 확진자가 공장에서 나왔기 때문에 공장 식당은 문을 닫았고 도시락을 시켜 회사에서 먹는 생활을 해야 했는데 공장의 위치가 워낙 도심의 외곽이었던지라 배달을 할 수 있는 식당들도 한정적이었는데 하루는 시킨 도시락을 열고 부실한 반찬상태를 보고 화가 나서 배달을 담당하셨던 인사차장님께 이건 정말 아닌 거 같다고 화를 냈다. 인사 차장님은 전 회사에서 개발총괄이사를 하시며 개발총괄의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며 못 받던 임금체불을 없던 일로 하고 나와 함께 공장으로 넘어오셨다.
나도 차장님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차장님에게 더 큰 실망을 느껴서 화를 냈지만 알고 보니 차장님도 검색했을 때 나온 도시락 사진과 너무 다른 반찬으로 포장되어 온 것을 보고 당황하신 건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나중에 차장님과의 오해를 풀고 사과를 드렸지만 공장을 다니며 먹고 싶지 않았던 공장밥. 당연하다는 듯 야근과 주말 당직근무에 나와야 했던 점들 하나하나 이제는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 단 하나만 남았다. 그리고 이 시점 나는 술이 많이 늘었다.
-술이 늘어가고 우울증 위험이 나왔던 일
-퇴사 시도와 몇 차례의 실패
-그리고 지금의 삶이 되기까지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