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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플라 Dec 30. 2023

'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

김초엽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SF 소설을 주로 쓰는데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님이다. 


'지구 끝의 온실'을 쓴 김초엽 작가는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화학을 전공하였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사이보 그가 되다'(공저) 등을 출간한 분이다.


책의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수년간 더스트가 증식하며 기후도 엉망이 되었다. 

바람도 구름도 예측 불가능했다. 

몇 달 사이 더스트 농도가 짙어지면서 

말레이반도 남부에 가뭄이 이어졌다.  

바싹 마른 흙으로 보아 원래 열대우림이었던 

이 숲도 지금은 건조해진 것 같았다."


멸망한 지구에서 사냥꾼들을 피해 도망치고 숨기를 반복하면서 지칠 대로 지친  

아마라와 나오미는 소문 속의 숲을 찾아간다. 


소문에 들었던 숲은 멸망 전의 지구처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보호복을 입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이다. 

더스트의 내성이 없는 언니 아마라는 더 이상 더스트의 위협을 

이겨낼 수 있는 건강 상태가 아니다. 


1장, 보스바나


2129년 더스트생태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식물생태학자 아영이 주인공이다. 

어느 날 폐허 도시 해월에서 덩굴식물 모스바나가 빠르게 증식하여 주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모스바나를 제거하려는 산림청을 돕게 된 아영은 모스바나가 있는 곳에서 

알 수 없는 푸른빛까지 목격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어릴 적 이웃에 살던 노인 이희수의 정원에서 덩굴식물에서 

푸른빛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폐허 도시 해월에서 모스바나가 이상 증식하기 시작한 까닭은 뭘까?


아영은 모스바나를 채집하여 분석하는 한편 

모스바나라는 식물과 푸른빛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수소문한 결과 더스트 시대에 

모스바나를 약초로 사용했던 아마라, 나오미 자매를 찾게 된다. 


2장, 프림 빌리지


"약간 흐린 하늘 아래로 집들이 줄지어 선 언덕길이 보였다. 

통나무집들은 기둥으로 받쳐져 땅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빗물이 콸콸 흘러갔다. 


키 큰 야자나무들이 길쭉한 잎을 삼각형의 지붕 위로 드리우고 있었다. 

한 걸음을 내딛자 발밑에서 나무가 끼익 소리를 냈다. 

몇 걸음 더 가서 나무 난간을 붙잡았다. 

서늘하고 시원한 숲의 공기가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갑자기 딴 세계로 들어온 것 같았다. "

-145쪽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데도 그 모든 것이 죽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더스트는 이 마을을 파괴하지 않았다. 이곳은... 더

스트에 완벽하게 적응한 세계처럼 보였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풍경 속 모든 것들이."

-146쪽


드디어 프림 빌리지를 찾아 이곳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된다. 

아마라와 나오미는 도망치고 떠도는 생활을 끝내고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프림 빌리지는 이지수와 레이첼이 계약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지구에 남은 온실이 있는 곳이다. 


3장, 지구 끝의 온실


아영은 멸망의 시대 한복판을 지나온 나오미의 증언을 통해 

이제껏 머릿속에 따로 존재해 왔던 수많은 퍼즐 조각들이 하나의 온전한 그림으로 맞춰진다.  


어릴 적 만났던 이희수가 프림 빌리지의 이지수라는 게 밝혀지고 

그녀의 숨겨진 기억과 식물에 진심이었던 

사이보그 과학자 레이첼의 지수를 향한 마음을 알게 된다. 




"식물은 뭐든지 될 수 있다"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처음에는 공기를 정화시켜 주는 식물을 

실내에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식물들과 매우 가까워져서 그럴 수도 있다. 


하여튼 지구 곳곳에 신기한 식물도 많고 

식물은 아낌없이 다 내어주면서도 

생명력이 강하니까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잡초들의 생명력은 농부들은 물론, 아무것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아닌가?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에 홀로 살면서 

황무지에 도토리 열매를 매일 꾸준히 심는 양치기가 나온다. 


양치기 한 명이 묵묵히 황폐한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결국은 황무지를 숲으로 바꾸어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 환경이 이 소설 속 미래사회처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지구 환경을 어떻게 보전할지 

모두 마음과 힘을 모을지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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