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출발했을 때는 빗줄기가 가늘었는데 팔당대교를 건너면서 굵어졌다. 옆 차선에서 달리던 트럭이 도로에 고인 물을 내 차 앞 유리에 튀기고 쏜살같이 앞서서 달려갔다. 내가 운전하는 차 앞 유리에 물을 뒤집어썼을 때 잠깐이지만 물이 유리를 가려 도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도로에 군데군데 생긴 물웅덩이가 있어서 조심조심 거북이 운전을 하여 능내책방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3분이었다. 다행히 독서모임을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부랴부랴 책을 꺼내어 자리를 잡는데 능내책방 사장님이 따뜻한 커피를 주셨다.
오늘 독서모임 책은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인데 지난번에 내가 독서모임 책 추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독서모임 책 추천한 이유는 이 소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여운이 오래 남으며 등장인물들에 대해 계속 사유하게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필경사 바틀비'는 숨겨진 고전 중의 고전으로 대표적인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의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언어의 유희를 자유롭게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재미와 더불어 감동까지 모두 선사한다.
발제문에 있는 질문에 관해 참여한 분들이 의견을 나누는데 각자의 살아온 경험과 지금 고민하는 문제들을 연결하여 말씀해 주셨다. 다양한 의견과 경험이 묻어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배울 것이 많았다.
소설의 주인공 바틀비는 이유를 밝히거나 요구사항을 말하지 않고 그냥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겠습니다'라며 고용주에게 소극적인 저항을 한다. 이로 인해 고용주인 변호사와의 갈등이 생기지만 변호사는 화를 참고 원만하게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바틀비는 변호사의 모든 제안과 음식까지도 거절한다.
능내책방 월요일 독서모임에 오신 한 분이 주인공 바틀비와 화자인 변호사의 입장이 모두 공감되었다고 말했다. 나 역시도 상식을 따르지 않고 소극적인 저항으로라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는 바틀비가 안타까웠다.
한편으로 맡은 일에 책임을 져야 하며, 그러한 상식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변호사 마음도 이해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흘렀고 너무 뜻깊은 시간이었다. 발제문의 마지막 질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고 결국 식사도 거부한 채 숨을 거둔 바틀비의 인생이 쓸쓸합니다. 기억에 남는 문장이나 장면이 있으면 공유해 주세요."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배달할 수 없는 죽은 편지들!
죽은 사람들이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선천적으로 혹은 불운 때문에 무력한 절망에 빠지기 쉬운 인간을 상상해 보자.
안색이 창백한 그 직원은 가끔 접힌 편지들 사이에서 반지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자선을 목적으로 특급으로 부쳐진 지폐도 나온다.
그것을 받아야 할 사람은 이제 먹지도 않고 배고플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절망하여 죽은 자들에게는 용서의 편지를, 희망을 잃고 죽어 간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편지를, 구제받을 수 없는 재난에 질식하여 죽어 간 자들에게는 희소식을 전하는 편지들도 들어 있다. 생명의, 심부름을 하는 이런 편지들은 죽음으로 치닫고 있다.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 "
-93쪽
이 문장을 읽고 '죽음을 생각하라!'라는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죽음을 생각하라'라는 말은 우리 삶은 결국 죽음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허먼 멜빌과 니체가 공통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문장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살아야겠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깨우쳤다.
능내책방 월요일 독서모임에서 읽은 '필경사 바틀비'에 관한 생각을 나누며 오직 지금에 집중하며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었다. '필경사 바틀비'는 독서모임 책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