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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플라 Apr 29. 2024

인생 2막을 새롭게 시작하기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그런 우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것을...



앤드류 포터의 소설을 읽은 계기는 도서관 신간 코너 책 중에서  '사라진 것들'이라는 제목이 끌렸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라진 것들'이라는 제목에서 추리 소설일 수 있겠다는 추측을 했지만 아니었다. 그래도 옛 날을 회상하며 사라진 꿈, 사라진 친구, 사라진 사랑, 사라진 대화를 추적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는 한다. 


초단편 여섯 편과 단편 열다섯 편을 모아놓은 이 소설집은 전부 사십 대 남성 화자의 일인칭 서술로 전개된다. 단편 소설집이지만 장편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았다. 각기 다른 테마의 단편들이지만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여 이야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 소설은 "일인칭 사십 대 남성 화자는 주로 아내와 연인과의 고뇌와 번민을 느끼며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추적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 없어 공허하고 불안하다."


"이들은 삶에 깃든 불안과 두려움을 배경으로 잃어버린 꿈과 자유와 낙관주의를 포함해 저물가는 젊음과 함께 사라진 것들을 하나씩 불러내 애도한다. "


작가가 시간과 함께 사라진 것들을 다시 소망하는 화자(40대 남성) 심리를 세심하고 구체적인 문장으로 잘 표현한 것이 좋았다. 이를 통해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우치도록 이끌어 준 소설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마음이 허허 해지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이나 우리나 비슷한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중년에 접어들면서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라는 생각에 내가 나 같지 않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신체는 늙었고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이 큰 반면에 마음은 여전히 10대 같아 현실과의 궤리 감이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이만큼 삶의 무게가 늘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지금이 가장 젊다는 생각으로 일상의 무게를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누구나 역할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고, 지금이 가장 젊을 때이기 때문이다. 





'오스틴'


"나는 그들에게 호응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들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나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하는 시각을 잃어버렸으니 살인과 죽음 같은 문제라면 그저 다 슬플 뿐이다. 정당화가 되느냐 아니냐를 따질 일이 아니다. 두 인간과 그들 각각의 가족에게 일어난 아주 슬픈 사건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 말고는 그다지 할 얘기가 없다."

'오스틴' 중에서 14쪽



"그들 대부분을 이십 년 가까이 알고 지냈는데도 그 순간엔 거의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술을 한 잔 따라 마신 뒤 누구에게도 인사를 하지 않은 채 복도를 지나 현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오스틴' 중에서 15쪽


예전에는 친구가 마냥 좋고 함께한다는 것이 즐거웠던 친구들과 한순간 멀어지기도 한다. 오래 알았던 친구라서 함께 한 긴 시간만큼 생각이 더 잘 통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의 주관이 더 확고해지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더 강해지기도 하는데 나도 그런 게 아닐까? 영원한 우정도 영원한 친구가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여튼 우정을 이어가려면 내 말을 줄이고 친구의 말을 더 많이 들어야 한다는 걸 깨우쳤다.    



'넝쿨식물'


"이게 나라니 믿어지니?  내가 얼마나 평범해졌는지 봐. 그 옛날에는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넝쿨식물 중에서 63쪽


  유명한 화가를 꿈꾸며 그림을 그리고 매력이 넘쳤던 옛 애인이 주인공 화자에게 한 말이다. 미래에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모습이 현재의 모습이라면? 우리는 대부분 나는 나중에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던 그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첼로'


"내 몸이 더는 내 것이 아닐 때 진정한 자아는 어떻게 되느냐고. 내가 옷을 입을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 머리를 스스로 빗을 수 없게 되면?"

첼로 중에서 89쪽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첼로 중에서 92쪽


내 삶은 내가 건사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면 너무 불안할 것이다. 살아는 있으되 생활의 모든 것을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조마조마하고 걱정된다. 작가는 이런 마음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잘 표현한 것 같다. 한 번쯤은 걱정하며 조마조마했을 불안을 이야기로 접하니 남의 일 같지가 않고 저절로 공감되었다. 


'라인벡'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는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라인벡 중에서 127쪽


우리의 인생이 예상치 못했던 낯선 곳에 당도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에는 정말 꿈을 꾼 것 같을 거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했다고 거부할 수도 없다. 시간도 변화하는 세상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천천히 적응하도록 기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며


제주 탑동 '빈투지 카페'에서 엄마와 함께 바다를 보며 커피와 생강차를 맛있게 마셨다.  바다와 방파제, 벽화와 자동차를 배경으로 쪼글쪼글 주름진 두 손 사진을 재미있게 찍었다. 이 소설을 읽고 엄마와 자주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진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아서 나중까지 좋은 추억이 되어줄 가능성은 모르겠다. 하지만 맛있게 엄마와 차를 마셨고 사진을 즐겁게 찍었던 느낌은 잊지 않고 오래 간직할 거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들이 영원하면 좋겠다. 내 맘대로 영원하다고 믿어 보기로... 꿈꾸는 것은 자유니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깨달음, 그리고 그 이후를 생각해 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베스트셀러 소설추천을 받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 이 순간의 기억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이미 사라졌으며, 또 사라져갈 그 모든 것들이 눈부시기 때문에 지금의 것들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젊은 날을 회상하고 추억을 되살리는 표현이 매우 아름답고 섬세해서 소설을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인물들의 세심한 심리묘사와 생생하게 느껴지는 대화가 마치 그 현장에 함께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있을 때 잘하자!! 어떤 것이 사라진 후에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면 조금 늦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있을 때 소중히 여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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