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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Aug 01. 2023

나의 마흔한살 단식기 - epilogue

에필로그

에필로그 


몸무게 68.1kg, 체지방율 16.0% 

(몸무게 6.1kg, 체지방 4.5% 감소)


단식이 끝났다. 


새벽 6시에 깨어서 제공된 선식으로 보호식을 만들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물 500미리 정도에 가루 선식 1인분을 풀어넣고 약한 불에 살살 저으면서 끓인다. 그러면 그 가루에 점성이 생기면서 미음과 같이 변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끓기 직전 몽글몽글 방울이 들썩이는 순간이 온다. 그때 바로 불을 끄고 저으면서 식히면 완성이다. 더 끓이면 꾸덕해지고 냄새도 나기 때문에 지금이 딱 좋다.

 

이 순간을 15일 내내 상상했었다. 

그런데 16일 만에 처음 탄수화물이 입에 들어오는 느낌은 상상했던 것만큼 대단하진 않았다. 마치 초콜릿 케이크를 한입 떠먹었을 때 눈이 번쩍 떠지듯 황홀감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과 포만감이 든든하게 다가왔다. 사실 절반만 먹었을 뿐인데 금방 배부름이 느껴져서 더 먹지 못했다. 


처음 3일은 보식만 먹었다. 

그 4일 차부터는 동치미 국물을 같이 먹었는데 그때서야 가장 큰 변화를 체감했다. 20여 일 전에 먹었던 것과 같은 국물이었지만, 오늘은 너무너무 짜게 느껴졌다. 탄수화물은 물론 나트륨도 완전 끊었기 때문에, 짠맛에 대한 내 반응이 한참이나 무뎌져있던 것이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짠맛이 느껴졌고 그래서 보식 한 숟갈을 입에 넣고 동치미 국물을 조금씩만 떠먹을 수밖에 없었다.


5일 차부터는 아침저녁으로 선식을 끓여 먹고, 점심 때는 회사 근처 죽 전문점에 가서 흰 죽이나 야채죽을 사 먹었다. 죽을 먹으면서 스무 번 이상 꼭꼭 씹고 삼켰는데,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어색하고 힘들었다.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오리주둥이같이 입을 내밀고 오물오물 씹어먹었는데, 내가 딱 그 모양이었다. 물 같은 죽을 계속 씹고 있으려니 죽이 더더욱 물과 같이 되어버려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내리기도 했다. 5일 차 저녁에는 몸무게가 최저점에서 1kg가량 회복되었다. 그리고 단식 이후로 처음으로 똥다운 똥을 싸게 되었다. 


7일이 지나서는 좀 더 되고 재료가 많이 들어간 죽을 찾아 먹었다. 

며칠간 죽을 오래 씹어 먹다 보니 탄수화물의 단맛이 느껴졌는데, 흡사 그간 몰랐던 맛의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음식을 오래오래 씹어먹는 게 소화뿐만 아니라 미각적인 면에서도 여러모로 좋구나 깨닫게 되었다.  위장이 좋아져도 계속 이렇게 꼭꼭 씹어 먹어야겠다 싶었다. 


10일이 지나고 몸무게는 1.5kg 가까이 회복되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6kg 가까이 줄어든 몸무게를 유지 중이라 여전히 몸이 가벼웠다. 이제 좀 더 단단한 음식을 먹게 되었다. 고기류는 피하고 된장국과 나물 위주의 밥을 먹었다. 맵고 짠 음식은 줘도 못 먹었다. 

신생아처럼 순하고 여린 음식만 먹고 있는 나 자신이 웃겼다.  


피부가 희고 맑았으며 20대 초반 몸무게가 유지되다 보니 가족들은 리즈 시절로 돌아갔냐며 놀려댔다. 

평상시에 퇴근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거울 속 배 나온 아저씨 모습에 한숨만 나왔었는데, 

이제는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걸쳐 입으니 20대 후반 청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식도와 위의 염증은 거의 사라진 듯 아프지 않았다. 

잠을 잘 때 역류하는 증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훨씬 덜 했다. 

그리고 뱃살이 완전히 빠지다 보니 복압이 사라졌고, 그래서 역류하는 증상이 훨씬 감소한 듯했다. 


보식을 하는 동안 하체 운동에 더욱 신경 썼다. 

허벅지가 가늘어지면서 바지 핏과 하체 발란스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집안에 당뇨 병력이 있어서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 개발에 신경을 썼던 터라 더욱 위기감이 느껴졌다. 

상체운동은 복부와 코어 위주로 잠깐씩 하고 나머지는 모두 하체운동에 몰빵 했다. 


12일 차 밤에는 그냥 밥을 안 먹고 저녁을 보냈다. 

그냥 시간도 없고 와이프도 없고, 내가 차리기도 귀찮아서 안 먹었는데, 단식을 하면서 이골이 난 건지 배고픔을 못 느끼고 그냥 넘어갔다. 


13일이 되었고 이제 육고기를 제외한 모든 음식을 다 먹었다. 

계란과 생선 종류도 조금씩 꼭꼭 씹어먹었다. 


드디어 약속의 15일이 지났다. 

돼지고기가 먹고 싶긴 한데, 그래도 구운 것은 안될 것 같아서 수육을 선택했다. 

누린내 없는 맛집이고 자주 가던 집인데,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고기의 향과 맛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확실히 불쾌한 맛이 아니었다. 그저 양념을 적게 먹고 고기 위주로만 먹다 보니 고기 본연의 풍미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확실히 내 후각과 미각이 민감해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고기를 오래오래 꼭꼭 씹어먹으면서 그 풍미를 즐겼다.  


단식 종료 후 20일째 되던 날, 출장이 있어서 일본에 가게 되었다.

16일 차부터는 원하는 음식을 먹고 싶은 대로 먹었다. 그러나 술은 되도록 마시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출장은 중요한 계약이 있었기 때문에 과음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평소처럼 마시면 금방 취할 것 같아서 조금씩 마셨는데, 체중이 줄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량도 줄어든 것 같았다. 


그렇게 과음한 것도 아닌데 너무나 취해버렸고, 한적한 일본 지방도시 길거리에서 필름까지 끊겨버렸다.

그래도 구글맵을 보면서 겨우겨우 호텔을 찾아온 것 같았다. 

이제 술은 조심해야겠다. 


보식까지 끝나고 나니 한 달 동안 밀렸던 숙제를 하듯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놀라고, 나는 단식의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는 루틴이 계속 이어졌다. 

점점 시간이 지나다 보니 설명하는 스킬이 늘어났고 스토리 구성도 알찼다. 

위장병과 단식의 전문가가 되었고, 반쯤 약장수 느낌까지 났다. 


사람들의 반응은 몇 가지 분류로 나뉘었다. 


나도 빼고 싶다며 소개해달라는 적극적인 유형

극단적인 단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며 부정적인 유형

15일간 어떻게 아무것도 안 먹고 단식을 할 수 있는지 메커니즘이 궁금한 탐구적인 유형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고, 사실 살 빠진 것도 못 느끼고 있었던 무관심한 유형


특히 여성분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무엇보다 일을 하면서도 15일 만에 8kg을 감량한 내 모습과, 부쩍 좋아진 피부는 물론 홀쭉해진 허리라인 때문에 더 놀라워했다. 웨딩촬영을 앞둔 한 여성분은, 이미 단식 10일 차 내 모습을 봤을 때부터 벌써 부리나케 전화번호를 얻어서 신청을 했다. 그녀의 벌크업 된 어깨와 토실한 팔뚝으로는, 그녀가 주인공인 그날에 오픈숄더 드레스를 입기에는 매우 부적절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후에 그녀를 만났는데, 그녀의 비포 에프터는 나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확실히 결혼식을 앞둔 여성의 의지는 강력하다. 


뱃살이 나온 40대 부장님들도 관심이 어마어마했다. 

좀처럼 빠지지 않는 뱃살 때문에 고민인데, 한방에 리셋이 가능한 방법이 있으니 반가울 수밖에.

특히 남자들은 단기간 집중하고 끝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매체에서는 슬로 다이어트를 말하지만, 꾸준히 조금씩 해야만 하는 다이어트는 중년남자의 성격상, 그리고 상황상 어렵다. 왜냐하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장기간 식사와 술자리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주 정도는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했다 치고 회사에 익스큐즈를 구하는 것 정도는 크게 어렵지 않다. 


단식과 보식을 모두 마치고 뒤돌아보니, 참 잘했다 싶다.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 들었고, 뱃속 장기들에게 40년 만의 휴가를 주었다.

회복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몸이 좋아하고 있음을 알았다.  

장기들은 재부팅되었고, 한동안 에러는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 속을 비워내며, 그 비워냄을 통해 절제를 체화했다. 

특히 식탐에 대한 절제가 생기게 되었다. 굶는 것에는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비워내니 머리가 맑아졌다. 맑은 정신은 더 깊이 집중할 수 있게 도왔다. 

책을 읽어도 깊이 있게 다가왔다. 


외모가 어려지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몸이 가벼우니 체력도 여유 있게 썼다.  

귀찮음을 넘어서서 실행력이 강해졌다. 

머리에만 맴돌지 않고 몸이 앞서 반응하기 때문이다. 


먼저 걸어온 사람으로서, 독자들에게도 단식을 추천하고 싶다. 


나는 단식 15일 간 연차를 하루도 사용하지 않고도 할 수 있었다.   

의지력이 그리 강하지 않은 나로서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나도 했다. 


그러니 당신들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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