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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Jun 14. 2023

나의 마흔한살 단식기 #14

14일 차 - 대통령과 로또

14일 차 대통령과 로또


몸무게 66.8kg, 체지방율 15.7% 

(몸무게 7.4kg, 체지방 4.8% 감소)


목요일이다. 

이제 하루만 더 출근하면 된다. 


오늘도 일찍 잠을 깼다. 

몸이 가벼우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도 훨씬 수월하게 느껴진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좀 걷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얼른 씻고 집을 나섰다. 


평소에는 마을버스를 타지만 오늘은 실개천 주변 산책로를 따라 걸어서 큰길로 나갔다.

걸음걸음이 솜털이 날아가듯 가볍고 경쾌했다.   

내친김에 평소와 다른 버스를 타보았다. 

독립문까지는 같은 루트이지만 이 버스는 독립문에서 좌회전해서 영천시장 쪽으로 빠진다. 

버스는 서대문역 정거장에서 많은 직장인들을 토해냈다. 

광화문까지 걸어가려면 평소보다 두 배 이상 걸어야 하지만 적당히 경사가 있어서 운동삼아 걷기 좋은 길이다.  


서대문역 정거장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농협은행 본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대한민국 모든 서민들의 꿈과 환상, 마음의 고향, 술자리 대화의 최종 종착역.


바로 로또 1등 당첨금 수령처이다.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생각한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일주일이면 열명 내외, 일 년이면 500-600여 명의 사람들이 이 건물을 방문할 텐데, 그 사람들 얼굴 좀 보게 죽치고 앉아있어 볼까? 십중팔구 월요일 오전에 방문할 것이고, 그중에서 잔뜩 설레고 흥분한 사람을 찾으면 될 테니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경비원에게 로또 당첨금 수령지를 물을 테니 정장 입고 직원인 척 로비에 서있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면 나한테 말을 걸 테고, 나는 가볍게 축하라도 건네면서 악수를 청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축하받는 사람이 으쓱하며 지어 보이는 표정이 너무너무 궁금하다. 


간혹 로또 1등 수령 후기를 공유하는 게시글을 보면, 농협 담당 직원이 로또 구매 전에 무슨 꿈을 꾸셨냐 질문한다고 한다. 설문 결과를 보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와서 번호를 알려줬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있고, 돼지 같은 복스러운 동물이 나왔거나 탐스러운 열매를 따먹었다는 꿈도 있다. 또 연예인이나 유명한 정치인이 꿈이 나와서 복권을 샀다는 썰도 있다. 

 

나도 몇 년 전 대통령 꿈을 꿨었다. 그것도 당시 재임 중이던 대통령이 꿈에 나왔다.

지금은 양산에서 책방을 운영하시는 그 대통령님이셨다. 

꿈에서 나는 산 위에 있는 거대한 놀이동산에 놀러 갔었는데, 상황을 미뤄봤을 때 개장식 당일이었던 것 같다.

테이프를 끊는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을 했고 곧이어 단체 사진 촬영을 했다.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대통령 바로 옆에 서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대통령이 폰을 꺼내서 나와 대통령 얼굴이 가득 나오게 셀카도 찍었다. 


이 꿈은 누가 봐도 대박 로또 꿈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로또를 샀다. 

꿈이 꿈인 만큼 그 일주일 내내 내가 만든 공상의 나라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는 사무실도, 책상도, 그 위에 놓은 지긋지긋한 듀얼 모니터도 없었다. 

그곳에는 치앙마이 한 달 살기가 있었고, 노르웨이 피요르드의 시골마을이 있었으며, 미국 자동차 일주여행이 있었다. 한가한 오전의 브런치와 나른한 평일 오후의 골프가 있었고, 바닷가 석양의 드라이브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결핍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윽고 토요일 밤이 되었고 설레는 마음에 로또용지를 스캔하여 당첨번호를 맞춰보았다. 


"5등 5,000원 당첨 축하드립니다. "


대통령님이 나와도 고작 5,000원인데 1등이 나오려면 제X랄 누가 내 꿈에 나와야 하는 거야? 




2022년 6월쯤이었나, 로또 1등 당첨자가 50명이 나왔었다. 

아마도 1명이 1등 번호 여러 장을 동시에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등 당첨금은 고작 4억 4천 정도, 사실 서울은 커녕 수도권 소도시의 신축아파트 한 채도 구입할 수 없는 금액이다. 전생과 현생, 그리고 다음생의 운을 모두 끌어모아서 겨우 로또 1등 당첨이 되었는데 수중에 세금 떼고 겨우 3억 남짓 돈이 들어온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그래.. 그때 1등 당첨 안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 줄 몰라..


라고 스스로를 위안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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