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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Jun 01. 2023

나의 마흔한살 단식기 #13

13일차 -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13일차 -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몸무게 67.3 kg, 체지방율 15.8% 

(몸무게 6.9kg, 체지방 4.7% 감소) 


아침에 일어나면 어지럽다. 

갑자기 일어나면 쓰러질듯 휘청거린다. 


13일차. 이제 48시간 정도만 지나면 약속의 그날이 온다. 

다왔다. 그런데 도저히 힘을 못내겠다. 


바지가 너무 커졌다. 허리와 바지 사이에 주먹하나는 충분히 들어간다. 

배를 내밀려고 아무리 힘을 줘도 배가 나오지 않는다. 내장지방이 다 타버렸나 보다. 

허벅지도 가늘어진 바람에 바지가 볼품없이 헐렁거린다.

요새 '무X사 스타일'이라며 통크고 헐렁거리는 바지가 유행이라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총각때 샀다가 결혼 후 살이 쪄서 못입고 버린 정장 바지가 많았다. 

사실 대부분은 커진 몸때문에 가랑이가 찢어져서 버렸다고 해야 옳다.   

그런데 웬걸, 오늘 옷장을 뒤지다보니 새것처럼 멀쩡한 정장바지 하나가 걸려있었다. 

얇은 여름바지인데, 아마도 신혼초 여름에 샀다가 겨울에 갑자기 살이찌는 바람에 이듬해 여름부터 처박아 놓은 바지였을 것이다. 


태그를 보니 허리치수가 29다. 

입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딱 맞다. 

기장이 넉넉한 것이 2010년도 초반 유행하던 스타일이다. 

30대초 이후로 이런 스타일의 바지는 입어본 적이 없는데, 말마따나 유행은 돌고 도는것 같다. 


와이프가 바지를 입은 내 모습을 유심히 보더니 부쩍 어려보인다고 말했다. 

얼굴에 주름이 늘었지만 총각시절 내 얼굴이 보인다나 머라나. 

와이프는 금방 사진첩을 뒤져서 내가 총각때 양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정말 비슷했다. 와이프는 그 시절 얼굴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었나보다. 


와이프한테 조금 미안해졌다. 

아내는 살이 찐 내 모습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가끔 인상 좋아 보인다는 말은 했지만 애써 위로하는 말이었다.  

갸름했던 얼굴이 네모내지고 뱃살이 처지기 시작했을때 와이프는 싫은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어쩔수 없다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스스로 가꾸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망가져가는 남편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사실 와이프는 결혼전보다 지금 몸매가 훨씬 더 탄력있고 이쁘다. 

신혼초 와이프는 위장이 약하고 뼈밖에 없던 체질이었는데, 스스로의 노력과 절제, 규칙적인 운동 덕분에 체질을 개선하고 근육량을 많이 늘렸다. 

특히 엉덩이와 허벅지 운동에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밸런스가 여느 헬스유투버 못지 않다. 

리즈시절이라는 말이 있지만 와이프는 해가 갈수록 리즈시절을 갱신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신혼초와 비교해서 먹는량이 크게 늘지않았다. 

아내는 결혼생활 내내 노력했다. 


내 몸무게가 정점을 찍었던 2021년경, 와이프와 같이 외출이라도 나가면 나는 그냥 여대생 옆에 선 중년아저씨였다.  

옷차림을 떠나서 불뚝한 몸과 어정쩡한 자세가 중년아저씨의 그것과 다를바 없었다. 

와이프는 거북목에 빠진 골반을 사정없이 지적하며 부끄러워서 같이 못다니겠고 너스레를 떨었다.  

웃고 넘겼지만 내가 봐도 좀 그랬다. 몸이 엉망이었다. 

나는 노력하지 않았다. 


오늘 다시 거울앞에 서보니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면 30대 초반정도로는 보이는 것 같다. 

와이프도 그렇게 인정했다. 

턱선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와이프가 좋아했다. 

감량때문에 걱정을 해도 제 눈에 보기 좋은 것은 어쩔수 없다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부부 관계는 소비재와 같다. 

내구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시간이 갈수록 소모되고 결국 사라지게 된다.  

꾸준히 보강하고 시간을 역행하고자 하는 노력없이는 절대로 영원할 수 없다.

친밀도와 애정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성적인 영역에서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량적인 영역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절제하는 식습관

건강을 추구하는 의지

탄력있는 몸을 위한 투자

올곧은 자세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


아내가 어느날 TV를 보면서 말했다. 

60대 중년 남성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멋스러운 수트를 입고 있었고 특히나 은발의 포마드 스타일이 눈에 띄었다. 세계에서 가장 옷을 잘입는 할아버지라는 닉켈슨 우스터 느낌이었다. 

얼굴에 주름은 많았지만 피부가 투명하고 깨끗했으며, 가는 허리에 허벅지가 두꺼운것이 밸런스가 좋았다. 

무엇보다도 꼰대스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저 아저씨 참 멋지게 늙었다. 오빠도 꼭 저렇게 늙어줘."


오늘부터 내 장래희망은 저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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