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나 고라 수도원>, 폴란드 최대의 가톨릭 수도원
쳉스토호바에 관한 글들을 계속 쓰다 보니 어느덧 8번째 글.
지금까지 투리의 글을 읽어온 분들이라면, 많은 분들이 본인이 '야스나 고라'를 언제쯤 소개할지 궁금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 차례가 다가왔다. 여러분도 기대하고 투리도 기대한 쳉스토호바의 진정한 하이라이트! 폴란드 가톨릭교도라면 모를 수 없는 폴란드 최대의 성지! 사실상 쳉스토호바 방문객들의 유일한 방문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이곳, '야스나 고라 수도원'의 후기를 이 자리에서 꺼내본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보는 대부분의 독자 분들은 '야스나 고라'가 어떤 장소인지 모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요하다. 그것도 아주. 이유는 방금 볼드체를 넣어가면서까지 설명했다. 다만 그 구체적인 소회를 밝히기에는 위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구체적인 감상을 여기 이 글에 꽉꽉 담아 여러분께 공유하고자 한다. 재미있게도 투리가 그곳을 방문한 날에는 흥미로운 행사가 관광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었는데, 그 생생함까지 곁들여가며 '야스나 고라'의 후기. 바로 시작하겠다!
4월 27일, 일요일.
개신교와 가톨릭교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일주일 중 가장 특별한 날, 주일(일요일).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교회랑 성당은 주일에 방문할 때가 가장 특별하게 다가온다! 분위기도 그 기분을 대변해 주듯 날씨도 최상, 방문객 숫자도 최상이다. 관광지에 따라 손님 수가 적은 경우가 나을 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야스나 고라만큼은 사람이 많을 때 방문하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폴란드 최대의 가톨릭 성지인데, 이런 핫플레이스(?)를 너무 고용하고 엄숙하게 다녀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쳉스토호바의 3일 차, 가장 사람이 북적거리는 일요일에 투리는 이 수도원을 찾아온 것이었다. ‘빛나는 산’, 또는 ‘밝은 산'이라는 의미를 지닌 야스나 고라(Jasna Góra)는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지이자, 폴란드의 주요 순례지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폴란드의 공식 국가 역사 기념물(Pomnik historii)들 중 하나로 지정된 상당한 장소이기도 한데, 그 규모는 투리가 방문했던 폴란드의 그 어떤 교회나 성당들과도 궤를 달리한다. 위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확실히 크다는 게 느껴질 것이다.
음, 그런데 주변을 보는데 뭔가 위화감이 있다. 사람이 많은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아직 정문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많이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눈치채셨나? 그렇다, 오토바이들이 많다. 그것도 성지 주변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말이다. 뭐지? 왜 이렇게 오토바이들이 많은 걸까? 투리가 교회나 성지를 자주 방문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자가용이 아니라 오토바이들만 교회 주변에 가득한 모습은 살면서 처음 본다. 그것도 단체끼리 말이다. 성지순례를 하는 오토바이 동호회라도 있는 건가?
확인해 본 결과, 폴란드에는 오토바이 순례(Motorcycle Pilgrimage)라는 전통적인 행사가 있다고 한다. 조금 생소하게 들리는 행사인데, 폴란드에서는 봄철 오토바이 시즌을 여는 의미에서 매년 많은 라이더들이 순례 미사(기도회)와 함께 한 해의 안전 주행을 기원하는 전통이 있다. 특히 야스나 고라는 세계적인 성모 성지인 만큼 수천, 수만 명의 라이더가 모이는 대규모 순례가 자주 진행되는 장소들 중 하나이다.
이때 오토바이 시즌은 일반적으로 날씨가 좋아지고 도로도 안정되는 봄 초입에 시작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이렇다 보니 폴란드인뿐만 아니라 중부 유럽과 동유럽의 다른 국가 사람들도 단체로 라이딩해서 야스나 고라를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다만 미사가 폴란드어로 진행되는 특성상 해당 날짜에 다른 국가의 오토바이 단체객들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조금 있다가 사진으로 보여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행사에 애국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져서 폴란드인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수도원이 폴란드인들에게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한 예로 2011년에는 전 세계 80개국에서 약 320만 명의 순례자가 이 성지를 찾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 정도로 야스나 고라는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유명한 수도원이다. 그러면 이 수도원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올 정도로 유명해졌을까? 폴란드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명성도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이 안에 있는 한 장의 그림, '검은 성모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 대부분이 야스나 고라를 찾는 이유도 아마 그 성모상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투리 역시 그 성모상을 보는 것이 야스나 고라에 온 목적이기도 하다. 빠른 이해를 위해 먼저 그 성모상을 보여주도록 할까?
짜잔, 위 사진 속의 성모상이 바로 그렇게 유명하다는 '검은 성모상'이다! 쳉스토호바에 가면 위 성모상과 유사한 모습의 검은 성모상들을 여러 곳들에서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제일 근본은 이 검은 성모상이라는 사실! 해당 성모상이 그려진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만들어진 지 6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화상의 기원에 따르면 작가는 누가로, 신약성경 속의 누가복음을 쓴 그 누가 맞다. 가톨릭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누가가 예수님의 가정에서 예수가 직접 만든 키프로스제 탁자 위에다 그린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가 해당 성모상이다. 그때 누가는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었으며, 나중에 그 내용을 토대로 누가복음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성모상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는 성모가 검은색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성모의 한쪽 뺨에 두 줄의 상처가 있다는 점이다. 성모가 검은색인 이유는 누가가 성모를 검은색으로 그렸기 때문이 아니다. 전설에 따르면 성모상을 보관하고 있던 성당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당시의 성모상 덕분에 성당은 화재로부터 완전히 소멸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대신 성모의 얼굴과 손 색깔이 불길에 그을려 거무스름하게 변하고 말았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무려 누가와 관련된 명성을 가진 성모상이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노릇이다. 그런데 성모상의 전설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폴란드인들은 이 성모상의 기적 덕분에 외세의 침공을 두 차례씩이나 극복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가장 첫 번째 침공은 1430년에 발발한 후스파의 침공. 후스파는 종교 개혁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체코 출신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Jan Hus, 1369-1415)의 가르침을 따르던 기독교 교파이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얀 후스를 이단으로 지정했는데, 이 후스파가 당시 수도원을 습격하여 수도원 안에 있던 성물들을 약탈했다. 물론 그중에는 검은 성모상도 있었다.
후스파는 훔친 성모상을 수레에 싣고 떠나려고 하였지만, 말들이 도통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모의 초상화를 땅에다 내던져 버리기도 하고 칼로 두 줄의 상처를 입히기도 했으나, 도리어 세 번째로 칼을 내리치려는 강도가 고통스러워하며 죽어버렸다. 후에 수많은 화가들이 이 흉터를 없애려고 여러 번 복원을 시도했으나, 상처들은 매번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두 번째 침공은 '대홍수'라고도 불리는 스웨덴의 침공이다. 1655년에 일어난 이 침공으로 인해 스웨덴은 폴란드를 거의 점령하고, 이로 인해 폴란드는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나 이때 수도원 요새였던 야스나 고라에서 폴란드인들의 격렬한 저항이 성공한 덕분에 폴란드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적과도 같은 이 사건은 단순한 군사 승리가 아니라 성모가 폴란드를 지켜냈다는 상징적인 역사로 평가받는다.
그 뒤 1656년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바사(Jan II Kazimierz Waza, 재위 1648–1668)가 국가를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고 성모를 "폴란드의 여왕"으로 선포함으로써 검은 성모상은 종교적 중심과 민족 저항의 상징이 된다.
어쨌든 안을 조금 돌아본 뒤 밖으로 나오니, 수많은 오토바이들과 사람들의 행렬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수도원 앞 광장에 모인 이 진귀한 장면을 보게 되다니.
시간을 두고 조금 기다려 보니,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대 한쪽 구석에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어떤 행사가 진행되려는 건가?
곧이어 행사가 시작하더니, 국가 비슷한 음악이 흐르고 의장대가 오와 열을 맞추어 전열 하기 시작했다. 그 뒤 한 남자가 연사에 나와서 긴 연설을 시작했다. 진행하는 행사가 미사인지, 단순한 애국 모임인지는 모르겠으나, 모인 사람들의 규모와 무대 위 사람들의 복장으로 보아 무게감 있는 일정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바깥 구경은 됐고, 이제 한 번 검은 성모상을 찾아보러 갈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야스나 고라의 최대 상징을 못 본 체하고 지나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들어가 보니, 인파가 많아서 검은 성모상 근처로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힘겹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여기도 미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뒤 어딘가 신분이 높아 보이는 분들과 신부들이 맨 앞에 나와 의식을 거행하기 시작했고, 뒤에 있는 사람들은 신부의 지시에 맞추어 봉독을 했다.
중간에 성체성사도 진행되었는지, 신부가 하얀 동그란 떡들을 지체들에게 한 개씩 나누어주기도 했다. 성체성사(Eucharist)는 말씀과 성찬 전례 이후 신부가 빵을 나누어주는 의식인데, 가톨릭 교리에서는 축성 이후에 받은 그 빵은 단순한 빵이 아니라 나중에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고 믿는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화체설(化體說)'이라고 한다. 비록 투리 본인은 화체설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혼자서 성찬식을 기념할 겸 배도 고파서 떡은 받아두었다. 투리의 체감상 그 자리에서 2시간 정도는 그렇게 서 있었던 것 같다.
계속 서 있다가 슬슬 의식이 끝나갈 때쯤, 드디어 검은 성모상 근처에 다가갈 타이밍이 왔나 싶었지만 아뿔싸. 사람들이 검은 성모상을 가려버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검은 성모상은 평일과 주말/공휴일에 따라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시간대가 따로 있다고. 이렇게 되면 투리의 하염없는 기다림은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했던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됐건 본인은 야스나 고라 수도원에서 미사도 경험할 수 있었고, 오토바이 순례객들도 구경했으니까. 결국 검은 성모상은 다음 날 개방 시간에 맞추어 다시 한번 찾아가서 찍게 되었다. 이제 남은 공간들도 한 번 살펴보자.
이렇게 투리가 방문했던 야스나 고라 수도원의 모습을 하나하나 여러분 앞에 공개해 보았다! 물론 사진들이 조금 더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이 직접 두 눈으로 보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안 그래도 이 수도원은 규모가 크기로 유명하니까, 여러분들이 그 공간을 하나하나 구경하면 좋지 않겠는가?
이상으로 야스나 고라에 대한 투리 개인적 감상이 담긴 기행글을 여기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쳉스토호바에 왔을 때 제일 기대가 되었으면서 가장 많은 의미가 담긴 곳, 야스나 고라 수도원. 한때 하나의 독립 지역으로 따로 불릴 정도로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이 수도원은, 아마 앞으로도 그 종교적 기능만큼은 계속 담당하지 않을까 싶다. 투리의 눈으로 바라본 쳉스토호바의 수도원. 만일 다음에 이곳을 다시 간다면 그때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며, 이만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