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쳉스토호바 미술 갤러리>, 아주 잠깐의 현대 미술 회화 산책로
그 유명한 쳉스토호바의 '야스나 고라' 수도원 주변을 돌아다닌 직후.
비에간스키 광장 대로(Aleja Najświętszej Maryi Panny)를 돌아다니면 의외로 깨알 볼거리들이 몇몇 존재한다. 예를 들면 투리가 앞서 언급한 '쳉스토호바 시청사 박물관'이나 '쳉스토호바 시립미술관(현대 미술 작품들 위주로 전시)'도 그 대로 중간에 위치한 곳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전통적인 회화 미술. 투리가 아무리 많은 유럽 도시들을 여행했지만, 이제는 회화 미술관 하나 못 보고 가면 서운할 지경이다. 딱 그럴 생각이 들던 찰나, 드디어 그 욕구를 충족할 기회가 왔다. 바로 투리가 이날 들르기로 한 마지막 목적지, '쳉스토호바 미술 갤러리(Galeria Dobrej Sztuki)'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혹시 여러분 중에 'Dobrej'가 무슨 말인지 아시는 분 계신가? 대충 '좋다'라는 의미의 여성형 형용사에 가까운 말이다. 흔히들 폴란드어로 인사할 때 'Dzień dobry'라고 하지 않는가? 그때 나오는 'Dobry'의 여성형 말이다. 즉, 미술관의 이름을 직역하면 '좋은 예술 갤러리'. 대체 얼마나 좋다고 시작부터 '좋다'라는 표현을 쓰는 건지. 뭐 아무튼, 여태껏 역사에 관한 박물관들만 많이 나와서 피곤할 참이었다. 작품 수가 많지는 않겠지만, 잠깐의 분위기 환기를 위해 들를 가치는 충분하겠지.
좋아. 그럼 한 번 안에 들어가 보자! 순례 도시로 유명한 쳉스토호바에는 없을 것 같은 회화 미술이 이런 대로 한가운데에 존재할 줄이야. 과연 어떤 작품들이 이 안에 숨겨져 있는 걸까?
입구를 통해 통로로 들어가면서 배경을 확인해 보니, 이 갤러리는 19세기와 20세기의 폴란드 작품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었다. 회화, 판화, 일부 조각 작품들을 포함한 여러 미술 작품들을 통해 이 전시관은 사람들에게 폴란드 근대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전시된 회화 작품들에는 주로 젊은 폴란드 시기 예술과 20세기 모더니즘, 전후 시기의 현대적 회화 경향이 뚜렷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해당 경향들이 모두 19세기와 20세기 회화 미술 양식에 속하는 것들이다. 작품의 수는 120점 정도로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수도원을 방문하다가 질렸을 때 들르기에는 적당해 보였다.
그럼 천천히 회화 작품들을 구경하러 가볼까? 조금은 가톨릭풍과 산업 현장의 분위기에서 벗어나서, 회화 미술의 향연을 누려보도록 하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작품들 소개를 해보자!
전체적인 작품들의 분위기를 소개하면, 여기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폴란드 국내에서 만들어진 작품들 위주로 전시되어 있고, 심지어 일부 회화들은 쳉스토호바 출신 작가들이 그린 것들이다. 위의 작품처럼 폴란드에는 여러 풍경화들이 만들어졌는데, 풍경화에 대한 발전은 19세기 중반 이후로 활발해졌다.
1895년 크라쿠프 예술학교에서 얀 스타니스와프스키(Jan Stanisławski)가 풍경화 수업을 주도한 것을 계기로 폴란드의 풍경화는 하나의 큰 이정표를 지나게 되는데, 폴란드 예술가들은 빛의 효과나 자연적인 현상을 연구하면서 그들만의 독자적인 양식을 갖추어 나간다.
그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인 위의 작품을 볼까. 이 그림은 밤에 두껍게 눈이 덮인 평평한 지형을 보여준다. 오른쪽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있고, 그 근처에는 빛나는 눈의 늑대 한 마리가 서 있다. 이 작품의 작가는 늑대를 그린 화가로 유명한데, 늑대에 대한 그의 관심은 충격적인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수발키 지역에서 무려 늑대 무리의 공격을 가까이에서 겪으며 살아남았다고 하니, 여간한 경험은 아닌 셈이다. 어쨌든 그는 나중에 커서 직접 자신의 영지에 늑대들을 사들이며 그들을 자신의 그림을 위한 모델로 사용했다고 한다.
투리의 눈으로는 분별할 길이 없지만, 이런 풍경화 작품들이 폴란드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들인 것 같다. 연도도 확인해 보니 다들 20세기 초반의 작품들이다. 계속 돌아보자.
위 작품의 화가 야체크 말체프스키(Jacek Malczewski)는 폴란드 회화에서 상징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로 여겨진다. 그는 작품들 속에서 다양한 기호와 상징들을 사용했는데, 이러한 상징들은 신화나 성경, 그리고 여러 편의 시(詩)에서 비롯된 것들이라고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민족 낭만주의 문학에서 다루어진 중요한 주제들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위 작품 같은 경우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우물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 이 우물은 운명과 비밀의 상징이며 동시에 생명을 주고 마음을 달래는 물의 근원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배경의 형상 장면에는 고대적 모티프와 페가수스의 모습이 건축물들과 함께 나타나 있다.
1898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화가의 가족 소유지였던 빌뉴스 근처 보흐다누프(Bohdanow)에서 제작되었다. 작품은 시골에서 밤에 열린 쿠팔라의 밤 축제를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축제 장면은 모닥불의 강렬한 빛에 의해 밝게 비치고 있고, 시야 뒤편에는 짙은 연기의 큰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여기서 사람들이 행했던 쿠팔라의 밤 의식은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막으며, 사랑과 결혼에서 행운을 가져오도록 돕는다고 믿어졌다. 불은 이러한 의식에서 연인들을 이어 주고 악령으로부터 보호한다고 여겨졌다.
Landscape with Cows. Marcin Kitz, 1929
In front of the Roadside Shrine. Teodor Axentowicz.
아까 폴란드에 존재했던 미술 양식들 중에 젊은 폴란드 예술 시기(Young Poland) 언급을 했었는데, 이 시기에는 농촌을 주제로 한 소재들이 대두되었다. 그들은 민속의 색채, 독특한 농가와 농장 풍경, 들판, 과수원 등의 풍경에 매료되었고, 생동감 있는 색채와 형태, 그리고 점묘 표현 등에 매력을 느꼈다. 또한 이들은 농촌 생활과 관련된 주제들, 특히 농사일 장면을 주로 묘사했다. 마치 저 위의 작품처럼 말이다.
위의 작품과 같은 어린이 초상화는 당시 20세기 초에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형식의 초상화였으며, 젊음이라는 개념에 신선하고 자연스러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어린이'라는 주제가 예술의 핵심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고 믿었던 화가들은 종종 그러한 초상화들에 철학적인 의미를 담았다고도 한다. 어린이의 이미지가 찾아오는 노년을 대비시키는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말이다.
위 사진의 작품 역시 젊은 폴란드 시기에 해당하는 예술가들 중 한 명이 그린 작품. 1948년에 체스토호바 박물관 컬렉션에 구입된 이 작품은 바벨 언덕에 있는 왕궁(Royal Castle)의 중간 시기 복원 공사와 관련하여 제작되었다. 작품의 제목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장면은 아래쪽 부분으로, 삽을 든 소년들과 소녀들이 흰색과 붉은색 리본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나무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해당 장면을 담은 이 작품은 폴란드의 독립이라는 이념을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작품이라고 한다.
위 작품의 작가는 얀 치비스라는 화가로, 20세기 폴란드 미술에서 색채 중심 회화를 대표하는 주요 화가들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즐겨 다루었던 주제는 정물화와 풍경화였는데, 위의 작품 같은 경우는 그의 예술 활동 후기 단계에 제작된 것들에 속한다. 그의 초기 작품들과 전체적인 양상을 비교해 보면 사실주의적 성향은 점차 약해지고 보다 추상적인 회화 경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까 설명한 얀 치비스가 그린 또 하나의 작품. 마찬가지로 추상성을 다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외에도 어떤 다른 작품들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흠, 이 정도면 나름 많은 작품들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타 미술관들과 대비하면 보여준 작품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땠는가? 생각보다는 상당한 작가의 작품들이 많다고 느껴지지 않았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무래도 몇몇 작가들은 폴란드 국내에서는 유명한 분들이셨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상으로 '쳉스토호바 미술 갤러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모두 둘러보았다! 야스나 고라 수도원을 다 들른 후 약간의 여가 시간 동안 들른 회화 작품 갤러리. 여행의 디저트 느낌으로 마무리하기 딱 좋은 미술관이었다고 생각한다! 역시 내로라하는 유럽 도시에 왔다면 투리는 회화, 또 회화이다. 이번 글도 여러분에게 좋은 감성과 교양을 가져다주는 좋은 글이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