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폴란드 학교, <바르샤바생명과학대학교>를 소개합니다
작년 자료였나, 듣기로는 한국이 아시아 국가 중에서 영어 실력이 1위란다. 입시랑 취업에 영어의 비중이 하도 크니 강제적으로 떠밀린 감이 있어 웃프기도 하지만, 결과는 결과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기본적인 회화는, 아니 회화까지는 안 되더라도 듣기와 읽기는 어느 정도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의외라고 해야 하나. 한국인들 중에서 본인이 유럽인보다 영어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유럽인들 앞에서 말하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있나 보다. 아니, 영국이나 아일랜드라면 모를까, 다른 국가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 유럽인들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한다고?
아무튼 그런 환상(?)을 가지는 분들이 있는데, 과연 유럽인들은 영어를 그렇게 잘할까? 이 글에서는 폴란드 한 달 차 투리가 느낀 폴란드의 일상적인 특징들, 이를테면 위와 같은 영어 궁금증과 같은 사소한 것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본인의 학교를 소개하면서 말이다! 아마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유럽 교환학생을 준비하거나 여행을 갈 때 꽤나 도움이 돼라 의심치 않는다. 폴란드 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잠깐. 왜 유럽인이 영어를 잘하냐는 질문에 먼저 대답을 안 하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자기소개(?)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어느 나라의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공개해야 본인의 말에 신뢰도가 확보된다. 게다가 유럽 국가는 40여 개나 될 정도로 많다. 함부로 모든 나라들이 다 내 주변과 같다고 일반화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폴란드나 독일 부근에서 주로 이런 경향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아주면 고맙겠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투리가 다니는 학교는 <바르샤바생명과학대학교(폴란드명 Szkoła Główna Gospodarstwa Wiejskiego, 영어명 Warsaw University of Life Scieces)>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바르샤바대학교>에 다닌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다. 이 참에 이 부분도 확실히 설명을 해주겠다. 폴란드의 수도는 바르샤바이다. 그리고 바르샤바 안에는 여러 대학들이 있다. 이 대학들 중에는 '바르샤바'로 시작되는 대학들이 몇몇 개가 있는데, 우리 학교도 그중 하나이다.
이게 확실히 헷갈리기 쉬운 게, 투리도 처음에는 이 학교가 바르샤바대학의 일부인 줄 알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학교는 전혀 다른 학교이다. 바르샤바는 총 18 구로 나뉘는데, 바르샤바대학교는 그중 시루드미에시체(Śródmieście)구에 위치해 있다. 시루드미에시체는 바르샤바의 대표 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는 구이다. 우리 학교는 우르시누프(Ursynów)구에 위치해 있다. 우르시누프는 바르샤바의 외곽 남쪽 지대로 숲 등의 녹지가 많은 한산한 지역이다. 주로 농업이나 식물 생산 관련 학과가 주력인 만큼, 위치가 참으로 걸맞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두 학교는 전혀 다른 학교이다. 서울과기대가(여기도 괜찮은 학교다만) 서울대는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말하면 확 이해가 될 것이다. 혹시 본인의 학교가 기대했던 학교가 아니어서 실망한 분들이 계신가? 계신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애초에 그분들이 기대했던 바르샤바대학교는 투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으니까.
아, 하지만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비록 우리 학교가 바르샤바 변방에 위치한 학교이지만, 이 학교도 나름의 자랑거리가 있다. 솔직히 우리 학교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최상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 학교의 강점은 농업과 임업에 있다. QS 주제별 순위(QS University Rankings by Subject)라는 통계가 있는데, 거기에서 농업/임업 분야가 4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곧 학교 주변을 하나하나 소개하겠지만, 확실히 관련 실습 장소가 눈에 많이 띈다. 그 정도로 이 학교가 식물류 재배? 쪽에는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주요 장점들이 더 있는데, 이걸 일일이 나열하다간 지루해서 그만 읽겠지? 해서 지금부터는 학교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설명을 이어가고자 한다. 편하게 읽어주시길.
보시는 바와 같이 위 사진은 우리 학교의 정문 건물이다. 학교에 도착하면 저렇게 신호등이 먼저 학생들을 반긴다. 한국과 차이점이 느껴지는가? 폴란드 바르샤바는 보행자와 자전거 도로가 구분이 명확히 되어 있는데, 신호등 역시 자전거 신호등이 따로 있다. 물론 불빛 전환은 보행자 보도와 방향이 같기에 보행자 신호등과 일치한다. 여러분이 이 신호등에 대해 알아야 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신호등이 깜빡이면 정말로 빨리 움직여야 한다. 한국에서는 신호등이 깜빡이면 딱 걸어서 건너가도 빨간 불이 안 되지 않는가? 폴란드는 몇 초만에 순식간에 바뀐다. 초록불이 깜빡이면 진짜 말 그대로 얼마 안 남았다는 표시인 거다.
저 정문 쪽으로 들어가면, 위 사진들과 같이 넓은 부지가 보일 것이다. 부지가 얼마나 넓은지 건물들이 마치 바다에 띄엄띄엄 있는 섬들처럼 느껴진다. 처음 이 광경을 봤을 때는 이 모습 때문에 순간 이 학교를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뭔가 딱 임팩트가 있는 건물이나 조형이 없고 황량하게만 느껴져서. 하지만 이렇게 넓어서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학생들끼리 잔디 위에서 수다 떠는 낭만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이렇게 부지가 넓어서 볼 수 있는 이 학교의 장면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아쉽게도 위 사진은 우리 학교 사진은 아니지만, 저렇게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실 학교뿐만이 아니다. 우르시누프구를 걸으면 최대 5분에 한 번 꼴은 산책하는 개를 마주치는 것 같다. 한국 시골보다도 많이 본다. 이를 보면 폴란드 국민들은 반려견에 대한 관심이 높은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부지가 넓다고 건물이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이 학교는 건물마다 숫자가 있는데, 총합해서 50개 가까이 된다. 진짜 많다. 어찌나 많은지, 본 캠퍼스 바깥쪽에는 또 신호등을 넘어서 구 캠퍼스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위 사진이 그 구 캠퍼스의 일부 사진인데, 보면 전체적으로 건물들이 조금 아기자기하다.
구 캠퍼스의 건물들은 대부분 2층이며, 내부가 본관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이 학교는 일부 건물에 저렇게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코너가 있고, 물건 자판기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내가 구 캠퍼스에 들어가면서 놀란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 학교에 경제학과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학과 건물이 구 캠퍼스 건물에 있었는데, 다른 건물들도 살펴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학과들이 이 학교에 존재했다. 혹시 폴란드어를 잘하시는 분들 계시면 위 왼쪽 사진의 게시판 종이들을 읽어볼 수 있겠는가? 생명과학과는 분명 관련성이 떨어지는 내용일 것이다. 구 캠퍼스에 특히 그런 건물들이 꽤 있었는데, 특히 경제학 관련 건물은 3개 이상 존재했다. 충격이었다.
알고 보니, 이 학교에 오는 교환학생들은 나처럼 생명과학과 관련 학생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멀리 갈 것 없이, 내 기숙사 방 한국인 동기의 학과는 경제학과이다. 이처럼 투리 본인의 학교는 학교 이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랑은 달리 종합대학의 성격도 띠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 학교가 생명계열 쪽으로 특징이 없는 건 아니다. 독자들이 위 사진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 지는 모르겠지만, 저 쪽 구 캠퍼스에는 상당히 신기한 것들이 있었다. 일단 실습용 트랙터들부터 여러 개 마련되어 있는 게 눈에 띄었고, 아예 토목 관련 실습실이 통으로 있는 건물도 있었다. 관련 도구들이 보관된 창고도 있는 듯했는데, 투리의 한국 학교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밤에 보면 공포 영화용으로 딱이다. 농담이 아닌 게, 구 캠퍼스 사이에 시민들이 사는 주택들이 있다. 그 사이를 들어가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어딘가 아름다우면서도 으스스한 구 캠퍼스를 뒤로 하고, 이제는 좀 더 넓은 본 캠퍼스의 건물들을 구경해 보자. 본 캠퍼스는 확실히 공간이 많이 넓다. 건물이 3층을 넘어가는 것은 기본이요, 해당 학과도 수의학과, 동물생리학과 등 생명과학 계열에 더욱 가깝다. 구 캠퍼스와 신 캠퍼스 모두 Ground 층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 있는데, 바로 외투 걸이 공간이다. 투리가 지금까지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데, 박물관 같은 장소를 가면 관람을 하기 전에 외투나 배낭 등은 꼭 서랍이나 외투 걸이 공간에 맡기라고 한다. 루마니아나 이탈리아처럼 소매치기가 만연한 국가도 많은데, 이렇게 물건을 대놓고 맡길 수가 있다고? 내가 생각했던 유럽의 이미지상 절대 상상하지 못한, 참으로 신기한 문화였다.
그 외에도 인프라를 보면 정말로 많은 장점들이 눈에 보였다. 건물 복도마다 구비되어 있는 책상과 의자, 가끔씩 볼 수 있는 전자레인지와 물 끓이는 공간, 심지어 이 학교는 전용 수영장과 체육관, 자체 비닐하우스까지 가지고 있다.
이 학교는 다양한 기능의 건물들이 많은 것도 있었는데, 건물 복도마다 여러 실험 포스터들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바로 위 그룹 사진의 양옆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저 사진들에 있는 포스터들이 투리의 본학교에 비해 정말로 많았다. 실험실들도 많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최소한 이 학교는 생명과학에 한해서만큼은 정말로 열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만나는 교환학생 동기들도 보면, 상당수는 영어 회화가 괜찮았다. 이제 슬슬 원래 질문에 답을 해볼까? 유럽인들은 정말로 영어를 잘하는 편일까? 정답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교환학생 동기들의 상당수는 확실히 영어를 잘했다. 한국인 중에서는 그나마 영어회화가 제일 준수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나마저도 저렇게 자연스럽게는 못 말하는구나 싶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일반 시민들이라면?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보다는 낫지만, 상당수가 그 정도로 유창하지는 않다. 특히 나이가 있는 분일수록 더더욱. 이론적으로는 독일어나 폴란드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영어를 배우기 더욱 유리하다고는 한다. 그쪽 계열 언어 구조가 아무래도 한국어보다는 영어랑 더 유사한 편이니.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유럽인이 다 영어를 모국어 정도로 구사하는 건 아니다.
아, 다만 그건 있다. 점원이나 식당 안내원 분들 등 젊은 서비스업계 종사자 분들은 생각보다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독일 사람들이 그렇게 영어가 능숙하지 않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기대치를 낮춰서 그런 걸까. 아무튼 생각 이상으로 괜찮아서 조금 놀랐다. 그렇지만 다시 강조하건대, 독일인이나 폴란드인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다. 그들도 사람인데, 설마 전 국민이 다 영어를 능숙하게 하겠는가.
정리하자면, 우리 학교의 소개와 함께 바르샤바 외곽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에 대해 말했다. 말이 영어권 국가이지, 폴란드, 독일, 헝가리, 체코는 영어를 주로 쓰는 국가가 아니다. 교환학생들끼리의 소통과 수업에서 영어가 필수적인 것일 뿐. 일반 유럽인들에게는 조금 기대를 낮출 필요가 있다. 그러면 번역기로 말을 걸 때 친절히 영어로 반응해주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그러니 한국인들이여, 자신감을 가지자. 회화가 어려우면 번역기를 이용하면 그만이다. 진짜 중요한 건 의사소통에서 묻어 나오는 진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