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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 유럽 교환학생이 되기까지

유럽에서 학생들이 노는 스타일

by 흑투리

지난 주인가, 별안간 쇼츠에서 '영국 어학연수 살아남기' 컨텐츠를 올리는 여대생의 영상이 떴다. 영국은 폴란드보다 개강일이 빠른 편인지, 투리보다는 2주 정도 일찍 출국한 것으로 보인다. 투리 본인의 육체 나이(?)보다 2~3살 어린 그 친구를 보자니, 공감도 참 많이 되고 귀엽게도 느껴졌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쇼츠 끝부분마다 하는 '휴, 오늘도 영국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라는 대사. 누군가한테는 그냥 시그니처 멘트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나한테는 그 한 마디 속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유튜버의 몸부림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꼈다. 투리보다 못한 영어 회화 실력(?)으로 영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처절하면서도 유쾌한 몸부림. 장담하는데, 올해 하반기쯤 되면 저 친구의 영어 회화가 본인보다 월등히 나아질 것 같다. 투리는 영어권 국가에 있지도 않고, 어학연수가 아닌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왔으니까.




다만 투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본인도 어쨌거나 유럽에서 살아남는 중인데, 단지 살아남는 것에서 끝내고 싶지 않다. 본인은 '잘' 살아남고 싶다. 특히 16주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기에 더더욱. 이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오늘 인도네시아 기숙사 동기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친구도 이 기회를 정말 후회없이 보내고 싶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아시아인 입장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 '자유롭게' 유럽에 돌아다닐 기회가 언제 또 있을까? 기회란 것은 무한정 오는 것이 아니다. 왔을 때 그게 기회란 것을 인지하고 잘 살리는 것이 곧 지혜인 것이다.





여기서 상식 퀴즈. 투리는 어느 나라 사람처럼 보이는가? 정답! 투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20년 넘게 한국에서 산 찐 한국인이다. 물론 본인이 한국어가 능숙한 유럽인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아직 브런치에서는 얼공을 하지 않았으니까. 아쉽게도 투리는 그런 예외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케이스. 본인은 딱 그 케이스다. 그럼 생각해보자. 투리가 처음 유럽에 갔을 때, 교환학생 생활이 마냥 익숙하고 단조로웠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지 않겠는가! 한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폴란드. 이 나라의 문화와 환경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친해지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이 딱 초반 2주였다. 이 글에서 2주 동안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하기에는 너무 길어서, 오늘은 초반 사흘 동안 있었던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대충 일정을 정리하면 이런 식으로 흘러갔던 것 같다.

20일: 기숙사 도착, 마트(E.leclerc) 첫 방문

21일: 바르샤바 겉핥기 투어, 펍에서 노래방

22일: 미술관과 와지엔키 공원 방문




바르샤바 투어의 공식 일정이 끝나자, 동기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일정대로 움직였다. 누군가는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누군가는 거리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나는 딱히 남을 이유가 없어서 학교 기숙사로 다시 돌아갔다.



6시가 되었을 때의 학교 풍경


그런데 기숙사에 돌아갈 때쯤 되니, 벌써 하늘의 분위기가 저녁이었다. 폴란드의 특징을 하나 말하면, 겨울~봄에는 체감상 해가 빨리 진다. 그러다보니 한 게 없는데 벌써 밤이야?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래서 듣기로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생각보다 할 게 빨리 없어진다고 한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펍에 가기까지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떴던 것 같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뭘 먹을까 고민하던 와중, 당일 처음 만났던 핀란드 동기가 학교 근처에 한식당 마트가 있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어서, 나는 별생각없이 지도를 키고 K마트로 향했다.



K마트가 있는 골목의 모습. 저 건물 전체가 K마트인 건 아니고, 일부 공간이 K마트이다.



유럽에 온지 이제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한식을 찾는 꼴이 조금 웃기기는 했지만, 다른 마트를 찾기에는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컸다. 들어가보니, 진짜로 일반 마트에서는 보기 어려운 한국 제품들과 음식들이 상당수 진열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반가웠지만 아뿔싸. 한국보다 2배 높은 가격을 보니 반갑지 않아졌다.



K마트의 진열대 모습


K마트의 식당 쪽과 메뉴판.



뭐 일단 진열대 구경은 그렇다치고, 막상 오기는 했으니 저녁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름 배가 고픈 편이었어서, 짬뽕에 밥까지 추가해서 주문했다. 상품 계산대 쪽에는 한국인과 폴란드인이 각각 한 명, 식당 쪽에는 폴란드인 남녀 한 분이 계셨는데, 음식 맛으로 보아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나름 높으신 분들이었던 것 같았다. 다만 비싼 건 둘째쳐도 넣은 재료가 좀 신박했는데, 짬뽕의 국에는 일반 면 대신 마카로니 면이 들어가 있었다. 나중에 라면에 떡 추가를 했을 때는 떡국 떡이 아닌 떡볶이 떡이 추가가 되어서 나왔다. 그 외에 분위기나 맛의 구현도에서는 별 문제는 없었지만, 문제는 역시 돈이다. 관세의 영향인지 한식들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아쉽게도 정말 땡기지 않는 이상은, 한식 마트는 자주 들르기 어려울 것 같다ㅜ



K마트의 다른 진열대



처음치고 빠른 폴란드식 K마트 경험을 마친 뒤, 나는 딱 시간에 맞게 학교 안의 Pub으로 향했다. 한국의 학교에도 그런 곳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학교 건물 안'에 대놓고 술집이 존재한다. 아무래도 유럽인들에게는 술이 취하기 위한 존재라기보다는 일상 속의 친근한 존재로 느껴서 그런 걸까. 지금도 그렇지만, 교환학생 단톡방에서는 틈날 때마다 저녁에 Pub에서 모이는 경향이 강하다. 아예 교환학생 주관 학생회가 Pub에서 만남을 추진할 정도니까.



이 날의 모임 컨셉. 해리포터에 나오는 네 마법사 팀들 중 가장 어울리는 팀을 고르면 그 컨셉에 맞는 색깔의 넥타이와 스티커를 받는다


펍에 갈 때는 가끔 정해진 컨셉 이벤트를 통해 교환학생들끼리 가까워지도록 유도를 한다. 이 날의 컨셉은 해리포터. 내가 속한 팀을 정해야 펍 안의 가라오케 방에 들어갈 수 있다. 팀을 배정받는 방법은 간단한다. 먼저 학생회에서 준비한 마법사 모자를 쓴다. 그리고 노트북 앞의 설문조사를 한다. 그러면 본인이 어느 팀에 소속되는지 나온다. 팀은 그리핀도르, 레번클 로, 후플푸프, 슬리데린이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후플푸프만큼은 아니기를 바랐다. 후플푸프 팬들한테는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내 머릿속에는 후플푸프가 애는 착한데 지혜롭지 않은 이미지가 박혀 있다. 다행히도 나는 레번클로가 나왔다. 레번클로는 나한테는 책과 지식을 추구하는 똑똑이 이미지이다 ^^



학생들이 펍에 들어오는 장면 + 신청한 노래 부르는 장면.


가벼운 배정이 끝나고 들어가니, 상당수 교환학생들이 본인이 신청한 노래들을 부르고 있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노래는 팝송이나 폴란드 노래만 있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괜찮은 노래라면 터키 노래든, 러시아 노래든 얼마든지 신청 가능. 나는 노래는 부르지 않았지만,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가볍게 노는 술자리가 굉장히 신선했다. 술은 그냥 수단에 불과하고, 중요한 건 그 분위기를 즐기는 것. 투리는 오래는 안 있고 금방 들어가긴 했지만, 유럽에서 노는 방법은 이 때 확실히 인지했다. 분위기가 개방적이면서, 격렬하지 않다. 보면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말을 어느 정도 잘 거는 것 같았다.



노래 부르는 자리 왼쪽에 학생들이 앉아서 웃고 떠드는 장면


혹시나 본인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개방적인 타입이라면, 이런 자리에 자주 참석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더 많이 참여하면, 더 알게 되는 사람도 많아지고, 특정인들을 만날 빈도도 높아진다. 한 번 만난다고 바로 친해지는 건 아니지만, 계속 만나는 그들과의 관계가 추후 어떻게 될 지 누가 알겠는가?




다음 날에도 학교 이벤트가 하나 더 있었다. 미술관 방문과 함께 와지엔키 공원 촬영하기. 전날 밤에 진탕 논 사람이 많아서인지, 참석한 사람들은 우리 학교 한국인 세 명과 외국인 서너 명이 전부. 공원 얘기를 하다간 글이 길어져서 다음 글로 미루겠지만, 당시의 나는 폴란드 3일차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저녁까지 와지엔키 공원 주변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말았다.



방문했던 미술관의 앞쪽 전시 장면


이 날도 정신차리고 보니 벌써 저녁. 밥은 먹어야 하는데, 학교 주변 마트는 다 문을 닫은 상황. 이럴 때는 학교 안의 무인 매장이 유일한 해답이다. 내 기억에는 이 때가 내 첫 무인 매장 방문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때 찍은 사진을 보니 당시의 내가 실망했던 기억이 생생히 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내가 고른 이 날의 저녁


그렇다. 위의 사진이 내가 말한 저 사진이다. 혹시 저 도시락이 뭔지 아는 사람 있는가? 김밥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저건 초밥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유럽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초밥이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일단 상당 부분이 내륙 지역이다 보니 신선한 해산물 조답이 어렵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초밥의 인상이 별로라나 뭐라나. 유럽은 애초에 초밥 문화가 미국을 거쳐 들어온 경우가 많았는데, 미국 스타일이 사진 속의 롤 형태였다고 한다.




초밥의 형태가 처음에는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이 편의점에 실망한 건 아니었다. 맛은 먹을 만했으니까. 내가 실망한 이유는 먹을 종류가 많지 않아서였다. 밥 느낌으로 먹을 수 있는 건 빵 몇 가지랑 냉동 파스타, 초밥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입맛이 맞지 않거나, 식사용 음식이 아닌 것들이었다.




이번 글은 의식의 흐름으로 초반의 교환학생 생활을 막 꺼낸 것 같다. 막 꺼내는 말 같으면서도, 의외로 유럽에 대해 나름 알아가는 것 같지 않은가? 지금은 전보다는 익숙해졌지만, 약간씩의 다른 디테일은 확실히 불편한 점이 있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독립심을 기르는 것, 그게 교환학생 생활의 매력이지 않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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