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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한다, 폴란드에서 살아남기

폴란드(등의 유럽 국가)에서 살아간다면 마주할 장소들

by 흑투리

이 글이 올라가는 날은 3월 20일. 놀랍게도 이 날은 투리의 생일이다. 안 물어봤다고? 미안하다, 어그로 끌어서! 사실 그건 올해의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다. 그럼 뭐가 더 중요하냐고? 바로 이 날이 내가 한국을 떠난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난날이다!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나름 폴란드(정확히는 바르샤바)에 적응했다고 생각을 한다. 교통수단을 타는 것, 송금하는 것부터 물건 살 장소를 사는 것까지. 지금은 나름 일상생활에 필요한 활동들은 어느 정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처음은 완전히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렵다고까지 말하지는 않겠다. 머물 장소는 고정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초반 2주간은 많이 불편하고 짜증 났다.



투리 기숙사에서 제일 가까운 버스 정류장. 이제는 이 장소도 많이 익숙해졌다.


해서, 어느 정도 폴란드 주변을 돌아다닌 유경험자의 시점에서 투리 본인의 초반 적응 모습과 함께 바르샤바에서 마주할 대표적인 장소들을 곁들어서 몇 군데 정도 소개하도록 하겠다. 물론 투리의 파견 학교 근처 위주로 소개를 할 것이니, 조금 편파적일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해 주시길. 이 글을 통해 예비 폴란드 교환학생들은 폴란드의 일상에 조금 친숙해지고, 교환학생의 삶이 궁금한 독자들은 그 느낌을 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필자 본인이 도착한 날짜는 2월 21일. 20일 밤 11시. 넘어서 인천에서 출국해, 21일 폴란드에 정오쯤 입국했다. 그 당시 파견학교에서는 아직 학기를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 투어나 펍 이벤트 등등 여러 가지 행사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중간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는가? 그렇지만 기숙사에서 짐을 푼 직후는 그런 걸 생각할 여유마저 없었다. 아니, 지식마저 없었다는 표현이 더 낫겠다. 본인 학교의 다른 두 명은 먼저 학교에 와 있던 상태. 그중 한 명이 같은 기숙사 동기였는데, 맨 처음 왔던 다른 한 명이 포르투갈 동기와 함께 마트에 갔다 오자고 제안을 했다. 방금 도착했던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갔다.



우리가 갔던 마트 E.Leclerc. 추후 이 곳은 투리가 가장 많이 방문하는 마트가 된다


지금은 적응했지만, 한국에 있었을 때보다 불편한 점을 이때 하나 깨달았다. 마트까지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다. 마트는 기숙사로부터 도보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게 위 사진의 'E.leclerc'이다. 내가 이 얘기를 하면 경기권이나 시골에 사는 분들은 그게 뭐가 머냐고 공감을 못할 수도 있다. 반박할 마음은 없다. 다만 투리는 서울 촌놈이라,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마트가 있는 곳에서 5년째 살아왔다. 편의점?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있었다. 이 정도면 '상대적으로' 멀어진 건 맞지 않은가.



E.Leclerc의 내부 모습. 처음에 보여준 마트 쪽 사진의 문과 반대쪽 방향의 문으로 들어가면 위와 같이 왼쪽에 대형 마트 코너, 오른쪽에 빵집 등 자잘한 상점들이 있다.


아무튼 없는 것이 많았던 나는 자연스레 그들을 따라가게 되었고, 위 사진이 처음 마주한 마트의 풍경이었다. 모든 'E.leclerc'이 저런 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곳 근처는 위와 같이 대형 슈퍼마켓 본점과 KFC 등 다른 상점들이 공존해 있는 형태이다. 여기서 본점만 소개하자면, 본점은 파는 물건의 범위가 다양하다. 전기주전자 등 전자제품들부터 시작해서, 책, 음식 재료, 가정용 제품에 이르기까지 어지간한 물건들은 다 팔고 있었다. 포르투갈 동기는 당일 전자레인지 등의 규모 큰 물건들을 샀었는데, 덩치가 큰 만큼 카트가 없으면 안 되었다. 내가 그렇게 오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대규모로 사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부모님이 그만큼 지원해 줄 테니 사라고 하시더라. 집에서 목장을 운영한다나 뭐라나. 다른 독일인 교환학생은 조랑말을 직접 기르고 있다고 하던데, 서울에만 살았던 내 입장에서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상점의 반대쪽 방향. 여기에는 PLAY 등의 휴대폰 통신사들과 갖가지 옷가게 등이 분포해 있다.


그 포르투갈 동기가 이것저것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가볍게 수건들만 사고 마트 주변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에게 여기만한 마트는 없다. 일단 대형 슈퍼마켓 중에서는 제일 가깝고, 필요한 것들은 이 곳에 거의 다 있다. 나는 지금도 이 마트에 많이 의존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폴란드에는 다른 브랜드의 상점들도 많이 있다. 같은 수업을 듣는 우크라이나 동기는 다른 쪽 방향의 'Auchan' 마트를 주로 방문한다고 한다. 그 친구의 소개로 한 번 들어가 봤는데, 대충 내가 들르는 마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같은 세면실을 공유하는 카자흐스탄 동기는 나에게 'Biedronka' 마트를 추천했다. 여기도 대형 슈퍼마켓이라 많은 물건들을 팔고 있는데, 특히 할인을 자주 하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나는 저 마트에는 가지 않는다. 내 카드들로 물건 결제가 안 되었던 슬픈 기억 때문에...



'Ursynow'라는 지역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건물. 들어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상가 건물인 것 같다


어쨌거나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 중에는 'E.leclerc', 'Auchan', 'Biedronka', 'Lidi' 등의 이름이 있는 건물들을 많이 볼 것이다. 특히 'E.leclerc'과 'Auchan'은 프랑스 쪽 브랜드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볼 일이 많을 수 있다. 그러니 폴란드 이외의 국가에 교환학생을 가더라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좀 더 첨언하자면, 'Biedronka'는 폴란드 최대의 할인 슈퍼마켓 체인이라고 한다. 폴란드로 가는 사람들은 당연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지?




그렇게 생존 쇼핑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우리, 아쉽게도 그 많은 전자 도구(?)들을 가지고 20분을 걸어갈 수는 없었기에, Uber 택시의 도움으로 편히 기숙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다 보니 벌써 저녁시간. 이때 당시에는 내가 주방에 들어가는 게 처음인 것도 있고, 먹을 것에 대한 준비가 아예 안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머지 두 한국인 동기 분들은 미리 며칠분을 준비했다고 한다! 먹을 걸 사려고 해도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피곤한 상황. 어쩔 수 없이 나는 두 한국인 후배들 앞에서 생존을 위해 음식을 가져가는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주방에서 요리한 첫 날 사진. 이 때 주변 분들이 왜 밥솥을 꼭 챙기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두 명이 준비한 음식은 합쳐서 김, 김치, 고기와 밥. 나는 헐레벌떡 미니밥솥을 들고 와 후배 분이 준 밥을 지어먹었다.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밥솥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아마 앞으로 주방에서 조리할 때는 많이 쓰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니 내가 생각지 못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일요일과 늦은 밤에는 대형 마켓들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 당시 주말에는 바르샤바 투어라던지 여러 활동들을 하느라 마트에 갈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시간대에도 문을 여는 매장을 급히 찾을 필요가 있었다. 이때 알게 된 곳이 아래의 무인 매장이다.



투리 학교 안에 있는 24시간 무인 매장. 규모를 보면 알겠지만, 파는 종류가 적어서 보통 급할 때 이용하는 마트이다.



폴란드에 갔다 온 사람들이라면 알 거라 생각하는데, 혹시 'Zabka'라고 들어봤는가? 쉽게 말하면 폴란드의 편의점이다. 한국의 'CU'나 'GS24'급으로 흔히 찾을 수 있는 편의점이라 생각하면 된다. 다만 본인 학교 안의 편의점은 다른 'Zabka' 편의점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첫 번째는 저 편의점은 24시간 운영이다. 그리고 무인 매장이다.



무인 매장의 내부 모습. 이게 매장의 거의 대부분이다.


처음에 입구 쪽으로 가면 카드 인식을 요구하는데, 인식을 하면 자동으로 15 즈워티가 결제된다. 그러면 문을 열어서 들어갈 수 있고, 거기에서 사고 싶은 물건을 들고 그냥 매장에서 나가면 된다. 처음에는 결제를 하는 기기가 없어서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매장이 알아서 빠진 물건을 자동으로 인식해서 결제를 한단다. 빠지는 금액은 내가 가져간 물건 가격들의 총합에서 15 즈워티를 뺀 값이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식의 매장이라서, 지금도 상당히 생소하게 느껴진다.



유럽의 프랜차이즈 카페. 도심을 가면 가끔 볼 수 있는 카페인데, 'Costa Coffee' 카페는 더욱 흔히 마주할 것이다 ㅋ



우리 학교 안의 'Zabka' 같은 경우가 무인 매장인 특이 케이스이긴 하지만, 어쨌든 폴란드 편의점 하면 90%는 'Zabka' 편의점이다. 내 기억에는 그 다음으로 많이 본 곳이 'Costa Coffee'라고 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이다. 거의 폴란드에만 분포한 'Zabka'와는 달리, 'Costa Coffee'는 아마 다른 몇몇 유럽 국가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텐데, 앞서 말했듯 여기는 카페 프랜차이즈다. 커피로 정신수혈(?)을 하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가성비 카페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존재 아니겠는가? 적어도 스타벅스 카페보다는 싼 편이니 알아두면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 근처의 다른 매장에서 산 음식. 고기맛의 기다란 꽈배기형 간식 같다




내가 기억하는 주변의 흔한 프랜차이즈들은 대충 이 정도였던 것 같다. 혹시나 독자들 중 또 생각나는 장소가 있다면 댓글로 알려줘도 좋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내 초반 교환학생 생활은 주변 프랜차이즈들에 익숙해지는 것부터가 먼저였다. 정확히는 브랜드만 다르지, 따지고 보면 사람 사는 건 본질적으로 똑같기는 하. 그렇지만 갬성이 다르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저러한 브랜드를 볼 일이 거의 없을 텐데, 이렇게 유럽에 오래 체류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한 달 동안 즐거웠던 기억이 많았는데, 앞으로도 남은 세 달 반 역시 알차고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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