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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랑 먹고 자고 씻는 기숙사?

충격의 첫 기숙생활

by 흑투리

이번 글, 어쩐지 어그로 글이라 생각하고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끝까지 읽어달라. 내가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글을 꾸준히 애정해 주신 분들께는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다. 투리는 남자일까, 여자일까? 제발 남자라고 대답해 주시길 바란다. 만일 본인의 글에서 남자 티가 하나도 안 났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는 것이니.




암튼 투리가 남자인 사실, 그리고 폴란드로 교환학생을 왔다는 사실. 이 두 가지만 알면 여러분은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끝났다. 아, 한 가지 더 추가. 투리는 이번 기숙사 생활이 생애 처음이다. 혹시나 기숙사 경험이 있는 분이 계신다면 각자의 생활을 비교해 댓글로 올려줘도 좋을 것 같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투리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이니까. 또한 교환학생 기숙사 생활이 어떤지 궁금한 분들은 오늘의 글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적어도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충격을 먹는 것보다는 심리상 더욱 나을 것이다.


투리가 머무는 학교의 기숙사 건물.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기숙사 생활이 3주째라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처음 도착했을 때는 상당히 정신이 없었다. 19시간 동안의 비행과 타임어택이 걸린 기숙사 체크인. 그런데 저걸 유럽이 생애 처음인 사람이 겪어본다고 생각해 보자. 당연히 피곤하지 않을 리 없지 않겠는가? 내가 바로 그때 그랬다. 근처의 외국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체크인이 끝났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드디어 기숙사에서 잘 수 있구나.




어찌어찌 기숙사 카드를 받고 배정된 방으로 올라가니, 내가 속한 방은 3인실이었다. 처음 딱 들어갔을 때는 두 명이 이미 자리를 잡은 뒤였고, 그중 한 동양인이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그 수많은 교환학생들 중에 한국인이 걸릴 확률은 수치상 높지 않다. 그래서 나는 편견을 버리고 영어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나랑 같은 학교의 파견학생이었다. 평소 만난 적이 잘 없어서 얼굴도 기억이 안 났던 것이다. 기숙사 희망사항에 분명히 한국인보다는 외국인 친구들하고 붙여달라 했었는데, 학교는 역시 학생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후술 할 내용까지 생각하면, 정말로 철저히 들어주지 않았다. 그나마 다른 한 명은 인도네시아에서 온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었는데, 당연히 이 친구와는 영어로 대화를 한다.



참고로 내가 기숙사 동기로 한국인을 선호하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어를 덜 쓰고 싶어서. 나는 가능하면 이 기간 동안 철저히 한국이랑 멀어지고 싶었다. 그래야 좀 더 외국생활에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것도 실패했다. 개인적 사정 때문에 카톡에서의 소통을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뭘 해도 역시 투리는 한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가.



노을이 지는 투리 학교 캠퍼스 모습.


아무튼 첫 만남에 필수적인 통성명까지 각자 끝나고 나니, 그제야 기숙사를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한 번 보고 내가 내렸던 결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한다'였다. 투리 본인은 기숙사에 4달 반 정도 있는데, 전부 합해서 100만 원이 안 되었다. 처음에는 가격을 보고 정말 좋았는데, 들어가고 나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일단 인프라 문제. 기숙사에 없는 걸 얘기하는 것보다 있는 걸 얘기하는 게 더 빠를 정도이다. 있는 게 뭐냐고? 와이파이, 침구류, 냉장고, 휴지통, 전기 코드, 그리고 서랍들. 아, 샤워실이랑 세면대, 주방까지 포함시키자.




이렇게 말하면 꽤 있는 것 같은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없는 걸 생각해 보자. 일단 수건과 세면용품이 없고, 숟가락이나 젓가락 등의 조리도구도 일절 없다. 휴지통은 우리가 직접 비워야 하며, 책상은 한 명분이 부족하다. 다시 말하지만, 난 지금은 이미 많이 익숙해졌다. 사실 지금은 오히려 이런 기숙사에 왔다는 게 감사할 정도이다. 하지만 처음 기숙사 생활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정도 각오는 하고 준비하라는 말이다. 특히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기숙사 생활은 개인의 행동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부분은 분명히 적응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투리의 기숙사 복도.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기숙사는 청결도 하나는 최고인 것 같다.


자 그리고 두 번째 문제, 개인 시설 문제다. 기숙사 생활에서 제일 불편한 게 이 부분이다. 또한 이게 오늘의 제목과 관련이 아주 깊기도 하다. 여기서 개인 시설이라 말하는 것은 주방, 세면대, 화장실, 샤워실 등 기숙사 방 외의 공간을 통칭하는 말이다.



기숙사 2/3인실 사이 통로. 왼쪽 끝 문이 화장실이고, 오른쪽 끝이 샤워실, 그 사이 공간이 세면대이다.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기숙사의 복도를 보면 문들이 있다. 그중 아무 문이나 하나 들어가면 문이 딱 세 개가 있을 텐데, 하나가 2인실, 다른 하나가 3인실, 남은 하나가 바로 위 사진의 통로이다. 저렇게 화장실, 세면대, 샤워실은 통로 왼쪽 공간에 있다. 그리고 뒤의 문은 또 다른 2인실/3인실 공간으로 이어진다. 다들 투리의 말을 잘 따라왔는가?




이렇게 얘기하면 대충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예상 가능할 것이다. 최대 9명의 사용 인원과 이용시간이 겹칠 수도 있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 외에도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로 나오거나 급한 일을 볼 때, 뜻하지 않게 다른 사람이 내 '날 것'을 마주할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이성'도 저 공간을 공유한다는 사실까지 추가한다면? 분명히 누군가에게는 그 수치스러움이 배가될 것이다. 그래서 교환학생 3일 차였나. 아침에 몽롱한 상태로 얼굴을 씻으려 갔는데, 거기서 가나에서 온 어떤 여자분하고 처음으로 통성명을 했다. 농담 아니고 실제 상황이다.




아까 말했듯 주방을 제외한 위의 개인 시설들은 최대 10명이 공유하는데, 이 중 여자 방도 존재한다. 아니, 생각해 보니 남자 방은 우리밖에 없다(이게 소름인 게, 나도 지금 쓰면서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저 통로에 누군가가 있을 때, 특히 샤워실에 누군가가 있을 때는 극도로 조심스러워진다. 후폭풍 생각 안 하고 진짜 맘만 먹으면 샤워하는 여자랑 눈이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 설마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으레 나오는 변태처럼 이 상황이 오히려 즐겁지 않냐는 X 친 소리는 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현실은 바로 경찰서 연행이니까.




그래도 외국인 여자라면 그러려니 하는데, 유독 한국인 여자하고 마주치면 뭔가 더 민망하다. 한국인과 소통하기를 지양하는 내 마음가짐이 무색하게 우리 방 옆의 2인실에는 한국인 2명이 배정되었는데, 두 분 다 여자이다. 부산 학교에서 오신 분들이라 사투리 억양이 약간 있으신 분들인데, 어쨌거나 한국인인 건 똑같지 않은가. 아직 그분들과 저 통로에서 마주치는 건 상대적으로 더 신경이 쓰인다. 투리의 동족 트라우마가 또다시 발현한 것일까.



투리 기숙사 주방의 모습.


마지막으로 주방은 각 층의 중간마다 하나씩 있는데, 이 공간은 해당 층의 모든 사람들이 공유한다. 그래서 주방에 들어가면 8할은 사람들과 마주친다. 이 주방에 자주 들락날락하면 'Hi'라는 인사말은 정말 많이 쓰는 것 같다.



같은 방 한국인 동기가 준비했던 첫 날 밤 고기. 주방에는 싱크대와 오븐, 전자식 가스레인지 딱 세 가지가 있다.


아무튼, 이게 투리가 기숙사를 마주했을 때의 첫 소감이었다. 다행히도 기숙사의 장점도 없는 건 아닌데, 일단 뜨거운 물이 너무너무 잘 나오고, 수질이 양호하다. 걱정과 달리 샤워필터기는 사용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청결하다. 복도나 주방에 매일 관리하는 사람이 계셔서 그런지, 조금 청결도가 부족한 환경에 있는 교환학생 유튜버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양반이다. 방 기온도 딱 적당하다. 진짜 기본적인 것들은 그래도 잘 갖춰진 것 같다.




이상이 투리가 속한 기숙사에 관한 내용이다. 투리가 속한 기숙사가 모든 기숙사를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숙사마다 특징이 다를 테니까. 하지만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면, 혼자 살 때와는 환경이 크게 다를 것이다. 남자들이라면 대부분 군대에 가면서 어느 정도 경험했겠지만, 같이 산다는 건 그 자체로 불편한 점들이 많다. 그렇지만 그런 경험들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면, 나름 본인이 성장하는 부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돌이켜보면 이 또한 추억일 테니, 피할 수 없는 기숙사 생활이라면 조금은 즐겨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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