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의 시작
2월 20일 오전 11시 45분. 여권에 떡하니 붙여진 비자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올해를 보내면서 그렇게 짜릿하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그래봤자 올해는 아직 50일밖에 안 지났다).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나는 시험에서 통과한 사람마냥 급 유쾌해졌다. 이제 남은 건 여태껏 준비한 짐을 싸들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것뿐.
자 그러면, 투리는 짐 속에 무엇을 챙겼는가? 일단 투리가 예약한 항공편은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사로, 출국할 때 총합 25kg까지의 짐을 옮길 수 있었다.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겠다만, 본사의 말에 따르면 본인들의 짐 규정이 가장 너그러운 편이라고 한다. 그 말이 확실히 거짓은 아닌지, 생각보다 가볍지 않게 챙겼음에도 내 짐은 총합 20kg을 안 넘겼다.
물론 그렇다고 쓸데없이 무겁게 들고 가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는 유럽에 오래 체류한다. 아무리 물건을 많이 챙겨도 4달 넘게 있으면 현지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본인은 생각할 수 있는 한에서 꼭 필요한 것들 위주로 챙겼다.
일단 며칠간 입을 수 있는 기본적인 옷가지, 필수 약과 상비약들 및 예비용품, 휴대폰 충전기와 코드 변환기, 휴지, 우산, 평소 읽던 간단한 책들 정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아는 누나가 교환학생 파견을 축하한다면서 올리브영 쿠폰을 선물했다! 안 쓰기에는 아깝지 않은가? 그걸로 화장품이랑 세면용품까지 사서 쑤셔 넣고 말았다. 그 외에 주변 지인들이 계속 전기밥솥을 들고 갈 것을 추천해서, 2만 원대의 작은 밥솥까지 사서 캐리어에 집어넣었다.
거기에 위탁수하물로 써도 튼튼한 소프트케이스 속에 통기타와 교재들까지 챙기고 나니, 모든 준비는 끝!
이때 감사하게도 인천공항 근처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내가 기내 수화물을 검사하는 자리까지 함께해 주었다. 그 와중에 내가 약간 바보 같은 짓을 했는데, 환전주머니(미리 환전 예약을 하고 출국 당일에 공항에서 돈을 받는 시스템)의 위치를 비행기를 타는 제1터미널이 아니라 제2터미널로 예약했다. 그래도 무사히 돈은 찾았으니 투리는 감사했다.
기분 탓일까, 가장 마지막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한 때가 작년 7월 말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공항은 그때의 기억보다 굉장히 화려했다. 장시간 경유하는 비행기를 처음으로 타기 직전이라 그랬을까. 그게 아니라면 순전히 일본에 갔을 때의 공항 위치가 아니라서 그렇게 느꼈을까.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인천공항은 갈 때마다 늘 새롭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 만일을 대비한 유심칩까지 산 뒤, 우리는 쉑쉑버거를 먹어 허기를 살짝 달랬다. 친구가 너 이제 떠나니까 자기가 사 준다고 했을 때, 그 친구한테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날 그 친구는 나에게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까지 배웅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의 기분이 이런 걸까? 약간 신기했다. 나 그렇게 오래 떠나 있는 것도 아닌데.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고 기내수화물 검사까지 끝낸 다음,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랍에미레이트 항공기에 올랐다. 두바이까지 가는 길이 멀어서 그런가, 비행기의 크기는 이전에 내가 탔던 제주항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내가 바르샤바까지 갔던 길은 두바이를 경유한다. 비행시간이 내 기억상 두바이까지가 13시간, 바르샤바까지가 6시간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헬싱키를 경유해서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인 말로는 헬싱키를 경유하는 게 더 편했던 것 같다고 그러더라. 하지만 비자예약일의 항공편을 억지로 맞춰야 했던 투리로서는, 두바이 경유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밤 11시 40분, 비행기는 인천을 떠나 두바이로의 항해를 시작했다.
딱 잘 시간이었는데, 하필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는 위치 바로 뒷자리인지라 잘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배급받은 첫 기내식을 먹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의외로 잠을 자긴 자더라. 물론 수면의 질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필요한 숙면은 취했던 것 같다. 다만 자리가 좁고 피곤해서 그런지 다른 일을 할 에너지가 없더라.
그렇게 억지로 자려고 하다가 겨우 숙면, 그러다 아이 깨는 소리에 기상, 다시 자다가 승무원의 기내식 제공에 또 기상.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도착!
우여곡절 끝에 짐을 다 챙기고 공항을 나오니 벌써 오후 한 시 반. 파견 학교 체크인까지는 오후 4시까지라 조금 다급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버스를 타 봐서 알지만, 그때는 아예 유럽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시간 내에 학교에 못 갈까 봐 굉장히 조마조마했다. 영어로 비현지인들에게 억지로 의사소통하며 표를 뽑고, 현지인에게 도움을 받으며 버스에서 내리다 보니, 겨우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된 얘기인데, 투리의 학교에 파견된 나머지 두 명은 각각 버디가 공항에서 마중을 나와줬단다. 어떻게 혼자서 학교까지 올 수 있었냐고 대단해하던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조금 살이 떨린다. 정해진 시간까지 체크인을 하지 못할 걸 생각하면.... 그 많은 짐을 들고 며칠짜리 숙소를 구할 상상에 아찔하다.
혼자서 기숙사까지 도착하고, 마침 옆에 있던 버디 역할 학생의 도움을 받은 결과, 나는 그날 무사히 체크인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 영양가가 있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까지가 투리의 첫 유럽행 항공을 탄 소감이었다. 이른바 기행(紀行) 문의 첫 시작인 것이다.
역시 첫 번째 글이라서 그런가. 글이 난동을 부리는 기행(奇行) 짓을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기행이 없다면 어찌 특별한 기행으로 남을 수 있으리! 이제부터 유럽 대륙의 중심, 폴란드의 바르샤바 땅을 밟으면서부터 겪은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나의 글은,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