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지엔키 공원>, 왕의 정원이자 폴란드인의 정원
폴란드에 입국한 지 3일째, 첫 일요일이었다. 개강 전이라 그런지 초반에 이런저런 학교 이벤트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예술 갬성 이벤트였다. 어떤 미술전시회를 하나 돈 다음, 와지엔키 공원을 방문하는 차분한 일정이었다. 혹시 본인의 글을 꾸준히 읽은 분들 중에 전날 일정이 뭐였는지 기억하시는 분 계신가? 정답은 가라오케 펍 파티! 맞추신 분들은.....투리 작가가 열렬히 애정해 주겠다! ㅋㅋ
암튼 그런 상황인데, 여러분이라면 다음 날이 일요일인데 토요일 일찍 기숙사로 돌아가고 싶겠는가? 상당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날 집합 시각은 적당한 오전(10시 반쯤)이었는데, 역시나 온 사람은 별로 없었다. 투리를 포함한 본인 학교 한국인 3명, 한국과 무지 친근한 핀란드 동기(이 누나는 무려 한국에서 교환학생 경험이 있는 눈나였다), 그 외 다른 동기들 몇 명이 전부. 하지만 소수인 게 나쁘지는 않았다. 해당 일정은 왁자지껄과는 어울리지 않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알겠지만, 이번 기행글의 주제는 <와지엔키 공원>이다. 물론 아까 말했듯 그전에 폴란드 잡지 전시관을 살짝 들르긴 했다. 여기에 대한 소개도 하고 싶기는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아는 정보가 없다. 전시관 위치도 기억이 안 난다. 혹시나 아래 사진을 보고 해당 전시회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신다면 댓글로 첨언해 주길 희망한다.
몸풀기 느낌으로 여러 잡지들과 사진으로 감성력 장전을 한 뒤, 우리는 와지엔키 공원으로 향했다. 드디어 투리의 글에 처음으로 관광지 기행글이 올라오는데, 독자 여러분은 와지엔키 공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애초에 와지엔키 공원이란 말을 들어본 적은 있는가? 폴란드에 관심 있는 게 아닌 이상, 아마 와지엔키 공원에 대해 아예 모를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랬으니까! 나도 폴란드 교환학생에 성공할 때까지는 아는 관광지가 하나도 없었다. 자고로 사람은 본인과 접점이 생겨야 비로소 그 대상에 관심을 가지는 법이다.
상당수 한국인들은 그 공원을 처음 듣겠지만, 의외로 와지엔키 공원에 관한 글들은 많이 있다. 심지어 이 브런치 플랫폼 안에도 굳이 내가 설명할 필요 있을까 싶을 만큼 다른 분들이 이미 상세히 설명하셨다. 그래서 무조건 그 관광지의 모든 내용을 설명하는데 집착하지는 않겠다. 대신 교환학생 투리의 관점에서 본 관광지의 모습, 그리고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적당한 배경지식 위주로 글을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그래야 투리의 독자들이 본인의 글을 읽는 명확한 이유가 생기지 않을까?
투리와 일행이 버스에서 내리고 공원에 들어갔을 때, 제일 처음 봤던 모습은 위 사진의 광경이었다. 동상을 한 번 가까이 살펴보면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 동상은 우리가 아는 그 쇼팽의 동상이다. 아직 입구인데도 저만한 공간에 쇼팽 동상? 일단 느낌이 일반 공원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공원 주변 울타리들도 이런저런 그림과 설명이 담긴 팻말들이 많이 붙여져 있다. 이것만 봐도 와지엔키 공원, 무언가 사연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와지엔키 공원(Łazienki Królewskie)은 이름부터가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 (łazienki)는 목욕탕 내지는 욕실, (królewskie)는 왕이라는 말로, 직역하면 '왕의 목욕탕'이라는 뜻이다. 이 공원은 18세기 폴란드의 마지막 왕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냐톱스키(Stanisław August Poniatowski)가 원래 있던 목욕탕과 인근 우야즈두프 영지를 사들이면서 왕궁으로 발전시키려 했던 곳이다. 그래서 이 공원 안을 살펴보면 여러 개의 궁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실로 왕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후 폴란드는 외세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잃게 되고, 왕이 부여한 이 공원의 의미는 점차 쇠락한다. 원래 국왕은 폴란드의 계몽주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이곳에서 여러 지식인들과 많은 논의를 했다. 그랬던 공원이 폴란드의 분할 이후로 19세기에는 러시아 황제의 소유, 20세기에는 나치 독일군의 시설로 자리 잡으면서 폴란드에 크나큰 아픔을 안긴다. 그 과정에서 쇼팽의 동상 등 많은 건축물들도 파괴되고 마는데, 소련의 영향 하에 공산주의 국가가 될 때쯤 이 공원은 겨우 복구가 된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이 공원이 폴란드 국민들에게 독립과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공원에서 쇼팽 피아노 콘서트가 열릴 때마다, 국민들은 본인들의 문화와 정신을 다시금 상기시켰다고 한다.
이제 이 공원이 왜 폴란드인에게 단순한 공원이 아닌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으려나? 와지엔키 공원은 그냥 크기만 한 공원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독립운동과 전쟁, 민주화 등 굵직한 사건들의 중심지였다. 이 글의 제목처럼 폴란드인인데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마냥 빈말은 아닌 셈이다.
공원에 도착하자, 학교 재학생 가이드들은 공원 안의 건물들 중 일부를 찍어서 인증하라는 과제를 주었다. 다 찍어야 하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이상 찍으면 통과이다. 당시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냥 주변 사람들을 따라다니다가 나중에 나 혼자 심층적으로 돌아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본인은 단체로 가면 음미가 좀처럼 안 되는 성격이라.
와지엔키 공원에는 크게 왕의 정원(Ogród Królewski), 벨베데르 정원(Ogród Romantyczny), 모던 정원(Ogród Modernistyczny), 그리고 10여 년 전 추가된 중국 정원(Ogród Chiński)으로 네 개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 정원들이 경계를 이루는 것도 아니고, 각 정원에 대한 안내나 정보가 딱히 없어서 몰라도 지장은 없다. 실제로 저 사실을 몰랐던 그때의 나도 잘만 공원 구경하고 다녔다. 본인이 참고한 브런치의 다른 작가 글에 따르면, 2016년의 중국 정원은 인공적인 느낌이 강해서 맘에 안 들었다고 한다. 2025년의 본인이 갔을 때 중국풍의 정원을 본 기억은 없다. 공원이 하도 넓다 보니 내가 못 찾아서 그런 것 같은데, 어쨌거나 공원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는 게 관광지로서는 가장 좋지 않나 싶다.
동기들끼리 동선을 정한 후 이동하니, 가장 먼저 발견한 건축물은 워터 타워(Wodozbiór)였다. 크리스티안 피오토르 아이그너(Chrystian Piotr Aigner)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이 타워는, 주변에서 물을 모아 궁정과 왕궁의 분수에 공급하도록 만들어졌다. 그 외에도 아우구스트 왕의 시대에는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거주할 공간 역할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워터 타워는 우리가 찍어야 했던 건축물은 아니었고, 가장 처음으로 찍었던 건축물은 저 건물이다. 소위 우리말로 오렌지 궁이라 하는 저 궁은 구 오란제니아 궁(Stara Oranżeria) 건축물인데, 주로 왕실의 식물들을 보관하는 온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중간에 석상들도 한 번 찍어봤는데, 지금 보니 왼쪽 위 사진의 동상은 알몸인 주제에 뭐가 그리도 당당한지 아주 요염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저게 바로 신고전주의의 아름다움(?)인가.
다음으로 본 건물은 저 건물. 해당 건물은 아우구스트 왕의 별장으로 사용된 건물이라고 한다. 하얀 집(The White Pavilion)이라는 의미의 저 건물은 도메니코 멜리니(Domenico Merlini)의 설계로 완공되었다. 왕이 사용한 이후에도 저 별장은 왕의 자매들이 지속적으로 이용해왔다고 한다. 특징이 있다면 세계 2차 대전의 피해를 받지 않아 내부 구조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위에 있는 사진들은 섬 위의 궁전(Pałacna Wyspie)을 찍은 모습이다. 날씨가 풀릴 때면 궁전 앞 연못에서는 곤돌라를 타는 사람들과 그 모습을 기다리거나 사진 찍는 사람으로 북적거린다고 한다. 아쉽게도 내가 갔을 때는 겨울이라 보지 못했지만.
일행을 따라 쭉 가다 보니, 또 하나의 멋져 보이는 건물이 멀리서 눈에 띄었다. 꽤나 중요한 건물 같은 이미지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확인해 보니 벨베데르 궁(Pałac Belwederski)이라고, 대통령 관저가 있는 곳이었다.
중간중간 지나가면서도 주변 자연의 풍경들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왼쪽 위 사진을 보면 공원에 새들도 많이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특히 핀란드 동기가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고 어떤 새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찾아보니까 Mandarin duck이라는 종이었는데, 핀란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다는 종이란다.
그렇게 벨베데르 궁전까지 관람을 마치고 나니, 어느 순간 한 바퀴를 가볍게 다 돌았다. 위 사진의 전시된 자동차가 있는 구간을 끝으로, 우리는 재학생 가이드들에게 찍은 사진들을 제시했다. 어차피 각 잡고 진지하게 찍을 마음도 없었어서, 가이드들도 사진을 보고는 적당히 통과시켜 주었다.
그렇게 와지엔키 공원의 공식적인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못 본 구간이 있으면 더 둘러보고 싶은 게 사람 심정이 아니겠는가. 호기심을 못 참은 나는 카페에서 재정비를 마치고 혼자서 공원 탐색에 나섰다.
다시 걸음을 시작한 지점은 우리가 공원 탐색을 마쳤던 그 구간부터. 이번에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여서 마음 내키는 대로 공원을 돌기로 했다.
이런저런 건물을 보다가, 유독 인상적이었던 한 건물과 눈이 마주쳤다. 신 오란제리아(Nowa Oranżeria) 건물이었다. 이 건물도 150년 이상 된 건물로 나름 역사가 있는데, 둘러보니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사람들이 식사를 하면서 여유롭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남쪽으로 생각 없이 이동하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와지엔키 공원에서 벗어나 있었다. 와지엔키 공원을 벗어난다 해도 무조건 공원이 아닌 곳으로 가는 건 아니라 다른 공원들과 붙어있는 구간도 있는데, 내가 딱 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보니까 내가 간 곳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놀거리들이 많은 놀이터였다. 주말이라 그런지 상당히 많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시 와지엔키 공원 쪽으로 방향을 돌리니, 이번에는 큰 호수에 다다랐다. 친절하게도 앞에 큰 표지판이 근처에 어떤 동물들이 서식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얼마 안 가 공작새가 돌아다니는 걸 발견하고는 다시 그 표지판에으로 눈을 돌렸다. 살아생전 야생 공작새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근처에는 원형극장도 있었다.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이 공원이 파도파도 볼거리가 많다는 건 확실히 깨달았다.
다시 보니까, 공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건 맞는 것 같다. 사진을 보면 어둑해진 게 느껴지는가? 이외에도 찍은 사진들이 꽤 있는데, 개인적으로 바르샤바에 온 사람들은 한 번쯤은 들를 만한 곳이 아닐까 싶다.
아직 다 돌아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7시라니. 아쉽기는 했지만, 중요한 지점들은 거의 다 돌아본 느낌이었다. 더 늦으면 저녁을 못 먹으니, 나는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갔다. 그렇게 이 날은 대부분의 시간을 와지엔키 공원 안에서 지내면서 마무리했다.
어떤가? 다소 길긴 했지만, 투리의 첫 관광지 해설을 보면서 유럽의 정취를 느낀 것 같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게 바르샤바의 전부가 아니다. 사실 폴란드 전체로 따지면 투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투리가 꺼낼 관광지와 교환학생 썰은 여전히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많이 기대해 주길 바란다. 본인의 이야기가 만일 끝이 난다면, 그때까지 투리의 글을 모두 읽은 사람들은 적어도 유럽에 관해서만큼은 문외한은 아닐 거라 확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