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이 100% 과학은 아니다
"관상은 과학이다."
이런 얘기를 농담 반 진담 반이라도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투리는 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 명제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사람마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느끼는 인상은 존재하는 것 같다. 투리의 파트너 유한열도 그의 유튜브 영상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첫인상이 상당히 무서운 분이 계셨는데 알고 보니 그분이 신학과 출신이라서 깜짝 놀랐다고.
투리도 다른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첫인상이라는 게 있다. 예를 들면 투리와 (본인이 가끔씩 언급한)교환학생 후배 동기가 같이 소속된 그룹이 있는데, 그 그룹원들을 봤을 때 몇몇은 솔직히 첫인상이 무서웠다. 그런데 이 얘기를 같은 그룹 동기들이랑 한열이한테 얘기를 하니까 그들도 납득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런 걸 보면 같은 민족 사람들끼리는 보는 눈이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투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을 느끼는 조건들이 평균 사람들에 비해 몇 가지 더 많았는데, 그건 술이나 담배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당시 투리 주변에는 그런 걸 하는 사람들이 잘 없었다. 만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 중에는 진짜 없었다(혹은 투리 앞에서만 안 했거나). 그래서 PEET 입시를 겨우 포기할 즈음이었나, 오랜만에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보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술을 마시는 모습에 크게 충격을 받았었다. 지금이야 그 친구들한테 술문화를 배울 정도로 많이 익숙해졌지만 말이다.
정리하면 결론은 뭐냐. 지금은 나아지기는 했지만, 투리가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대상은 첫인상이 무서운 사람들과 술과 담배, 클럽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확실히 보수적인 걸 떠나서 선비적인 마인드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폴란드 여자를 보면서 필자 투리는 두 가지 놀란 부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코뚜레 피어싱을 한 여자들이 많은 것이었으며, 두 번째는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이 한국에 비해 많은 것이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코뚜레를 피어싱을 한 여자는커녕 그걸 한 사람 자체를 못 봤는데, 유럽을 갔을 때는 비행기 경유편 옆자리 여자부터가 그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혹여나 유럽 여자분들에게 환상을 가지신 MZ 아시아 남자 분들이 계신다면 이 부분은 유념해 주시길 바란다. 환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법이니 말이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투리는 돌이켜 보면 첫인상이 조금 무섭고 긴장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크라쿠프 기행 때 언급했던 케빈이 딱 그랬었다. 뭐랄까, 약간의 이탈리아식 말투를 연상케 하는 영어와 본인을 지긋이 바라봤던 그 얼굴.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의 입장에서는 그냥 호기심에 가득 찬 평범한 말투로 본인한테 말을 걸었던 건데 말이다. 실제 이미지도 투리의 첫인상과는 전혀 딴판인 친구이다. 전체적인 교환학생 동기들한테 케빈은 관종이면서 뭔가 순수하고 호기심이 많은, 동시에 ESN 행사를 하면 항상 마지막에 도착하는 이미지였다. 케빈은 투리에게도 정이 꽤 들었던 친구였다. 케빈 덕에 모든 교환학생과 폴란드 동기들이 그의 모국인 알바니아를 자주 밈처럼 언급했었으니까.
여기서 투리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담배나 술을 즐긴다고, 인상이 무섭다고 꼭 모두가 성격이 나쁘고 인성 파탄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반대로 보면, 이 친구들도 다 투리와 육체 나이가 비슷한 동기들이다. 문화적인 것만 조금 다르지, 공감대가 그렇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다. 공부보다는 노는 게 더 좋고, 시험보다는 게임을 사랑하고, 여행에 크게 설레는 건 교환학생 누구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 친구들도 본질적으로는 다 같다는 얘기이다. 성향이 다를 수는 있을지언정, 학생인 이상 기본적으로 괜찮을 친구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첫인상이 달라졌던 친구들은 케빈 이외에도 여러 명이 있다. 한 명은 크라쿠프 파티 타임 때 인상적으로 리듬을 탔던 친구. 크라쿠프의 마지막에 케이크를 대령하면서 투리에게 감격을 선사한 이 친구의 이름은 불가리아 출신의 다르코이다. 뭔가 GTA에서나 볼 법한 이름의 이 친구를 처음 봤을 때, 투리는 그가 파티 같이 노는 것만 즐길 줄 아는 동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실제와는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 파티나 클럽에서 왁자지껄 교류할 때, 다르코는 비교적 우직하고 꿋꿋이 팔을 흔드는 한 가지 자세로만 리듬을 탔었다. 무언가 강해 보이는 그의 얼굴 속에는 다른 면이 있던 것이다. 실제로 같이 대화를 하니 나름 젠틀한 면도 있었고, 박물관에 가면 누구보다도 학구열을 가지며 감상에 충실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의 폴란드어 학습 열정도 상당했다. 마지막 ESN 파티에서 가장 폴란드인 컨셉이 뛰어났던 부문 시상식에 '다르코'가 1위로 선정되었다. 거기에서 그가 폴란드어로 쓴 자기소개 글을 낭독했을 때, 투리는 왜 그가 그 부문에서 1위로 뽑혔는지 납득했다. 다르코는 주어진 활동들에 충실한다는 점에서 투리와 비슷한 과였던 것이다. 거기에 축구와 같은 스포츠 팀에 관심이 많은 건 덤이고.
투리에게 좋았던 또 한 명의 친구는 포르투갈 출신의 아폰소. 이 친구를 처음 만났던 곳은 위 사진 쪽의 학교 안 바였다. 투리가 기억하기에 그를 만났을 때는 거의 교환학생 초기였다. 당시 바 문화가 처음이었던 투리는 상시에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덕분에 투리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담배를 피우는 동기라면 누구든지 순수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다. 처음에 아폰소가 본인을 비롯한 다른 동기들에게 적극적으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너무 좋았지만,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니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그 느낌도 역시 기우에 불과했다. 아폰소는 투리가 있었던 교환학생 학기에 있어서 몇 안 되는 MVP들 중 한 명이었다. 어떤 폴란드 동기에게 아폰소는 한 학기를 즐겁게 해 주던 최고의 동료였고, 다른 누군가에게 아폰소는 최고의 케미를 자랑했다. 본인이 보았던 남자 동기들 중에서 가장 두루두루 지냈던 친구 하면 딱 두 명이 떠오르는데, 그중 한 명이 아폰소이다. 우연의 일치인가, 방금 투리가 생각한 두 명은 모두 포르투갈 출신이다. 따지고 보면 포르투갈 사람들은 원래 성격이 원만한 편인 건가.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게, 교환학생 과정을 마치기 전 아폰소의 소감을 들어보면 그도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도 그때 처음 시작하는 의외의 모습도 보였고. 어쩌면 그도 선천적인 인싸 유형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사람 사는 건 진짜로 다 비슷비슷하구나 싶다.
마지막으로 한 동기만 더 언급하자.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투리가 만난 동기들 중에는 인도 출신의 수두도 있다. 몸에 빨간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어떤 병을 연상시키는 이름의 그는 사진 찍는 걸 즐기는 동기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는 전공이랑 별개로 사진 기술을 배운 것 같았는데, 실제 사진들을 보니 실력이 투리보다는 훨씬 좋았다.
위의 사진들이 모두 수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란다. 참고로 오른쪽에 있는 흑백 문서는 그가 적은 사진 촬영의 비법(?)이 담긴 것이었다. 투리가 수두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ESN 단체채팅방에서 공지한 사진 특강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였다. 당시의 선생님이 바로 수두였는데, 특강을 듣는 사람들은 여자 동기들밖에 없었다. 역시 더 예쁜 사진을 찍는 걸 선호하는 성별은 여성인 걸까. 핀란드인 엘리나와 불가리아인 키키도 그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투리는 수두가 ESN에서 섭외한 일종의 시간강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수두는 농구 같은 스포츠를 할 때 다른 동기들과 함께 참여하는 동기에 가까웠고, 심지어 마지막 ESN 여행 때는 같이 참여한 동기들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의 동기들과 다르게 석사 과정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뭐 어차피 다 같은 20대 아닌가. 유럽에서는 아니 외국에서는, 같은 20대라면 그렇게 나이를 의식하는 모습이 없다. 항상 얘기하지만 투리는 유럽의 인간관계에 있어 그 점이 너무나도 좋았던 것 같다.
이상의 네 명의 동기들은 투리가 교환학생 초기에 처음 만난 동기들이었는데, 모두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이 다른 공통점(?)을 지닌 친구들이었다. 초반에는 다들 무섭게 느껴졌지만, 알고 보니 교환학생 동기들 중에서 인싸와도 같았던 그들. 다른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후기를 들으면 같은 동기에게 한 번씩은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말이 많은데, 감사하게도 투리의 교환학생 동기에 한해서는 그런 일도 없었다. 오히려 본인이 인종차별을 당한 얘기를 꺼낼 때, 친하지 않은 동기마저도 충격받은 표정으로 본인에게 공감의 표시를 보였다. 어떤 의미에서 그게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인종차별이 많은 편이라는 유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마저도 감사히 여겨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하하하, 여기서 투리가 갔다 온 바르샤바생명과학대학교의 깨알장점을 하나 알려주겠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다들 이렇게 살가울 줄 알았으면 투리가 그렇게까지 긴장할 일은 없었을 텐데.)
물론 교환학생의 모든 순간이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기들에 한해서만 얘기한다면 투리의 인복은 타 교환학생들에 대비해서 더 좋았다고 자부한다. 투리의 주변 동기들만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난 동기들 모두 하나같이 기본적인 예의는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었으니까. 그들 모두가 본인 머릿속의 첫인상(관상)이나 편견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래서 혹시나 인종차별이나 유럽 동기들의 성향이 자기 자신과 안 맞을 것 같아서 걱정하는 교환학생 꿈나무들이 있다면, 이 얘기는 해주고 싶다. 그 유럽마저 좋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보다 더 많다. 그곳에도 당신을 도와줄 사람들은 꼭 존재할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인복이 유독 좋았던 투리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