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과학기술 박물관>, 바르샤바에 숨은 폴란드산 기술들의 원전
"That's what I said, Slickback
No n****
I'm a pimp named Slickback
Pimp named Slickback-back
pimp named, pimp named
Pimp named Slickback..."
질문! 이 가사를 기억하시는 분? 밈에 정통하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2년 전쯤 유행했던 '한국 초전도체 밈'의 음악 가사이다. 당시 고려대학교에서 발견한 LK-99 물질이 상온, 상압 초전도체라고 주장하면서, 전국적으로 초전도체에 대한 붐이 크게 일어났었다. 하지만 국제적인 검증 과정에서 해당 물질은 우리가 기대했던 초전도체가 아닌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이에 따라 초전도체 붐도 사그라들었다.
투리가 물리학과 출신은 아니라서 체감은 안 되지만, 원래 '초전도체'와 같은 기초과학은 다루기 어려운 내용이다. 해당 분야들은 결과를 기약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길게는 10년, 20년을 투자해야 하고, 설령 좋은 결과가 나온다 한들 상당수는 국가에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튼튼한 기초과학은 곧 그 국가의 강력한 기반이 되기 때문에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때 산업혁명으로 세계열강에 오른 영국도 기초과학이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한국에서도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오가지만, 아쉽게도 당장의 결과를 추구하는 정치권에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하다.
아무튼 기초과학 강국을 생각하면 우리는 보통 영국이나 일본과 같은 주요국들만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학문이라는 것은 몇 개의 국가들만이 향유하는 개념이 아니라, 여러 나라들의 발견과 발전을 거듭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투리는 폴란드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여러분은 혹시 마리 퀴리,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인물들이 폴란드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 컴퓨터 에니그마 해독에 폴란드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은? 2권 4편에서 언급했듯이 폴란드는 서브컬처에서도 은근히 강한 면모를 보이지만, 투리의 눈에는 과학 부문에도 '은근' 칭호를 주어 마땅하다고 본다. 그 정수를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냐고? 그 이야기가 담긴 박물관이 바르샤바에 존재한다. 과학문화궁전 근처에 위치한 '국립 과학기술 박물관(Narodowe Muzeum Techniki w Warszawie)'. 이번 글에서는 이 박물관과 함께 폴란드의 과학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박물관을 들어가자마자 발견한 친숙한 구형 차. 위의 사진이 익숙하다면, 당신은 맞게 찾아오셨습니다! 바르샤바 과학기술 박물관은 과학사에 있어 이정표가 된 사건 중심의 연대기와 그 안에서의 폴란드인들의 업적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곳이다. 물론 내용이 많아서 모든 내용을 다 다루지는 않을 거고, 투리가 찍은 사진 속 내용들과 전체적인 흐름을 위주로만 설명하도록 하겠다. 본인도 글이 길어지면 피곤해져서 말이다.
투리가 입구 쪽에서 발견한 또 다른 물건. 처음에 봤을 때 무슨 큰 밥통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폴란드 북부 발트해 쪽에서 1975년까지 사용한 등대라고 한다. Stilo 등대라고 하는 해당 물건은 폴란드의 초기 조립식 금속 등대인데, 저걸 보면서 폴란드의 초기 공학기술을 가늠할 수 있다고. 사실 폴란드는 근대 시대에 외세에 너무 고생해서 자체 기술을 발전시키기 힘든 상황이긴 했다. 그래서 저 등대를 포함한 많은 기술들이 독일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자, 여기는 투리가 언급한 과학사를 연대기별로 서술해 놓은 전시관이다! 과학사는 한 나라에서만 독단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이쪽은 설명이 폴란드 위주로만 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이 박물관은 폴란드에서 발명된 기술들과 발견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었다.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도 상당수가 폴란드산을 주축으로 하는 것들이었다.
위 왼쪽의 사진에는 폴란드 선사 시대에 철을 제련한 방식을 재현한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도 보면 밥솥과 온수기 등의 기구들이 있는데, 역시 20세기에 폴란드에서 사용되던 기구들이다. 이처럼 전시된 여러 기술들은 폴란드의 기술 유산을 바탕으로 한 것들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투리가 깨달은 깨알 상식! 온도의 단위가 섭씨와 화씨로 두 가지가 있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겠지? 이중 화씨 단위를 개발한 사람이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Daniel Gabriel Fahrenheit)인데, 이 사람의 출생지가 그단스크란다. 그리고 그단스크는 폴란드의 대표적인 도시들 중 하나이다! 다만 그의 연구는 주로 네덜란드 쪽에서 이루어져서 그 외의 폴란드와의 연결점은 없어 보인다.
위의 내용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설명들을 통해서도 과학사의 흐름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부분들은 배경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대충 알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만.
저렇게 다양하게 전시된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투리는 다음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는 전체적인 과학사의 흐름을 다루는 곳이라서, 굳이 모든 내용을 글로 다루지는 않았다. 투리는 어디까지나 폴란드를 알려주기 위해 글을 쓰는 거니까. 본격적인 폴란드의 과학과 기술은 이 뒤에서부터 나온다.
드디어 여기서부터 폴란드 과학과 기술을 빛낸 이들의 흔적이 담긴 전시가 시작된다! 제목부터 '세계 과학·기술 유산에 대한 폴란드인의 공헌: 우리의 민족적 자부심과 정체성의 형성'인 위 전시회는, 여러 폴란드인 과학자들과 관련 발명품들을 중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전시회는 분열과 전쟁의 한가운데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과학을 빛냈던 폴란드인의 잠재력과 역량을 나타내도록 의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상당수의 성취들이 17세기에서부터 20세기까지를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
다만 전시관에 있는 모든 인물을 다루면 지면이 길어지니, 독자 분들이 알면 좋을 일부 분들만 소개를 하도록 하겠다. 그와 더불어 폴란드의 눈여겨볼 만한 과학사도 조금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과학자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마리 퀴리! 이분은 최초로 자연계 방사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신 분이고, 해당 물질들의 연구를 통해 과학 연구의 기준을 원자 단위까지 확장시키는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녀는 무려 노벨상을 받는 최초의 여성이자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인물이 된다. 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인물이 되는 건가.
그다음 인물로는 야누쉬 미쿨리치-라데츠키(Jan Mikulicz-Radecki). 이 분은 수술용 마스크와 장갑을 전 세계에서 최초로 도입한 발명가이다. 역사적으로 위의 물건들이 처음 쓰인 곳은 1896년 브레슬라우(현재의 브로츠와프)의 한 병원이라고 한다. 코로나 사태에서 살아남은 우리들은 저 도구들의 중요성을 아주 절실히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투리가 주목한 인물들 중에는 스테판 얀 포프와프스키(Stefan Jan Popławski)도 있다. 이분은 "믹서기의 왕"이라는 별명답게 전기스탠드 믹서를 상용한 발명가라고 하는데, 관련 특허를 1921년에 땄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 믹싱은 손으로 하거나 크랭크 방식의 도구를 쓰는 식이었는데, 저 기구 덕에 믹싱 시간이 혁신적으로 짧아질 수 있었다. 이 정도 발명이면 솔직히 대표 과학자로 인정할 만하지 않은가?
이외에도 나와 있는 인물은 여럿이 있지만, 궁금하신 분들은 독자 여러분들이 직접 방문하시기를 권장한다! 모든 분들을 한 번씩 언급하면 내용이 너무 길어지니, 본인은 폴란드의 깨알 발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이 글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본다.
다음으로 발견한 전시관은 폴란드와 서방의 현대 기술 부문! 이 뒤에서부터는 컴퓨터, 군사 장비, 교통수단 등 다양한 물건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첫 시작은 위의 컴퓨터부터다! 전시관의 설명에 따르면 컴퓨터의 발전은 보다 발전된 계산 기술의 수요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산업화 혁명에 따라 기술은 혁신적인 발달을 이루어냈고, 그다음 과제는 논리 회로의 구축이 되었다. 전기 기술을 바탕으로 위의 욕구들을 충족시킨 초기의 브라운관 컴퓨터는 초당 수만 번의 계산을 마칠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성능을 보였다. 이 컴퓨터라는 존재는 이후 인류의 일상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렇게 컴퓨터와 관련된 여러 참고할 만한 설명문과 기계들이 있었지만, 위의 내용들은 독일에 좀 더 가까운 내용이므로 패스. 그래도 독일이 폴란드에 비해 당시에는 강국이었기에 독일 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폴란드도 별수 없었을 것이다.
폴란드의 기술이 보다 강조되는 부분은 교통수단 쪽이었다. 왼쪽 사진의 차들은 자동차 산업계에서 폴란드가 선보였던 차들이었다. 보면 폴란드도 나름 자체적으로 자국 기술을 많이 활용하려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오른쪽 사진의 오토바이는 폴란드에서 군용 목적으로 자체 개발된 오토바이(Sokół 1000)라는데, 1933년부터 1939년까지 활용되었다고 한다. 크기와 무게가 꽤나 나가는 이 오토바이는 폴란드의 기술 자립과 군사 근대화의 상징이 되는 대표적인 모델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저 오토바이가 독일과의 싸움에서 게임 체인저가 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외에도 전시관에는 트렁크 차, 자전거, 비행기 사진 등 폴란드가 자체 개발하거나 개량한 다양한 대상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투리가 찍지는 못했지만, 전시관에는 아예 오토바이 10~20여 대를 벽 한쪽에 몰아서 전시한 곳들도 있었다.
보면서 느낀 것은, 이 박물관은 단순히 과학과 기술사를 알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폴란드의 주관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미 여러 글을 통해 언급했지만 폴란드의 영토는 몇 백 년간 여러 나라들에게 번갈아가면서 점령당한 전적이 있다. 이런 곳은 솔직히 말하면 장기간의 인내심 있는 연구를 요구하는 학문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인물들의 집념과 끈기 덕분에, 적어도 폴란드는 자국의 기술이라고 자랑할 만한 작품들을 전시관에 모을 수 있을 정도의 결과는 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위의 사진 속 배들과 항구를 통해서도 폴란드의 자체 기술을 향한 독자적인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해당 사진은 그드니아라는 곳에 있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인데, 당시 그단스크라는 해양 도시는 다른 국가들의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좀 더 자율적인 항구를 만들기 위해 그드니아를 선택했던 것이다. 비록 위의 배들이 폴란드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지만, 저 때를 기점으로 폴란드는 독립적인 해양 기술과 세력을 가진 나라로 발돋움했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박물관에는 독일의 작품들도 꽤 전시되어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서 폴란드가 덤덤히 당시의 객관적인 시대상을 인정하는 느낌도 들었다. 사실 역지사지해 보면 한국도 역사적으로 중국이나 일본 기술의 영향을 서로 많이 받아서 다른 나라의 영향을 안 받았다고 얘기하는 말 자체가 이상하기는 하다. 여하튼 역사적으로 기초과학의 토양이 뛰어나지 못한 국가임에도, 막상 까보면 폴란드인이 뿌린 씨앗이 많다는 것을 이 박물관은 얘기해주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과학적(?)으로 바라본 폴란드의 박물관을 통해서, 투리는 유럽에서 공학적 내용이 담긴 첫 박물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역시 '문화과학궁전' 근처에 있는 박물관답게 투리는 이곳에서 과학과 문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시작은 소련 양식의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이미 폴란드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중인 관광지. 다가올 미래에는 어느 나라의 압박도 받지 않고 폴란드만의 자랑스러운 특허 소식들을 더욱 많이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번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