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첫 깜짝 생일파티

크라쿠프, 생일 축하 선물을 받은 유일무이할 도시

by 흑투리


장장 9편과 약간의 속편들을 통해 진행했던 크라쿠프의 이야기가 거의 다 끝났다. 3일 차 오후, 미술관을 끝으로 크라쿠프의 공식 일정은 모두 마무리!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ESN 활동의 첫 번째 여정이었다.


그로부터 3달의 시간이 흘러, 교환학생 동기들과의 마지막 만남이 진행된 순간. 바르샤바생명과학대학교의 홍보영상을 찍던 사람이 갑자기 본인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나는 그녀의 부탁에 흔쾌히 응했고, 그녀는 이런 질문을 했다.


"지금까지의 ESN 활동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어떤 거였나요?"


순간, 본인이 다른 동기들과 함께한 수많은 수업과 활동들이 파노라마처럼 촤르륵 뇌리를 스쳤다. 아, 고르기가 쉽지는 않은데. 하지만 몇 초간의 사투 끝에, 투리의 뇌 속 판사는 가장 합리적이고 극적인 판결을 내렸다.


"꼭 대답을 해야 한다면, 저는 역시 크라쿠프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은 것 같습니다."


후반부에 학업으로 바빠서 동기들과의 인상적인 경험이 적었던 투리의 환경상, 본인이 고를 수 있었던 선택지는 ESN 활동이 거의 유일했다. ESN 여행은 총 네 번 있었는데, 고민 끝에 투리는 첫 번째 활동이었던 크라쿠프 여행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여행이라고 대답했다.


뭐,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첫 번째로는 네 번의 활동들 중에서 크라쿠프의 일정이 가장 밸런스가 좋았다. 여행 기간이 2박 3일로 길면서 특정 지정 도시 안에서만 집중했던 활동은 크라쿠프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여행이 끝났음에도 아직 떠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는 여운과 기대감이 컸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고, 클럽 등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체험을 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투리가 이 여행을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큰 이유가 있다. 바로 이곳에서 본인이 'Surprise Birthday Party'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내용을 포함해 본인이 크라쿠프 여행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마쳤는지 갈무리하도록 하겠다.






20250323_090656.jpg



둘째 날보다는 다소 늦게 일어난 크라쿠프에서의 셋째 날 아침. 어제보다는 확실히 몸이 나른하고 느슨해진 아침이었다. 다행히도 이 숙소의 아침 식사는 마음에 들었다. 폴란드에 가면 보통 괜찮은 숙소의 뷔페에는 여러 종류의 빵과 치즈, 햄이 있는데, 해당 숙소는 그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 약간 가벼운 아침 뷔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마실 것까지 챙기고 자리에 앉은 투리. 곧 이어서 발렌틴과 알렉세이, 이네즈 등도 뒤따라왔다. 분위기는 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셋째 날은 집합 시간이 어제보다 늦어서 조금 더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20250323_085932.jpg 해당 숙소에 있던 지도, 이곳을 찾아온 손님들이 본인의 사는 거주지가 있는 곳에 핀셋을 꽂은 것 같다



그래도 너무 빈둥대면 늦기 때문에, 본인은 빨리 밥을 먹고 다른 쪽의 부엌에 가서 식판과 컵을 닦았다. 식기를 다 정리하고 돌아오는데, 발렌틴은 여전히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집합시간까지 10분도 안 남았다고 하니, 발렌틴은 지금 가나 10분 뒤에 가나 어차피 늦게 출발하는 건 똑같다고 대답했다. 수지 등 활동 주최자들이 서두르라고 얘기했을 때도,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문제는 그의 말이 맞다는 사실이다. 이미 전례의 사례들을 아는 투리도 그의 말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떠나기 전에, 투리는 마지막으로 두고 간 게 없나 최종 확인을 하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다른 동기들도 정리를 하느라 바쁜 상태였다. 그러다 문득 숙소에서 투리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걸었던 그 친구를 보니, 막상 저 친구의 국적과 이름이 어디인지 물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흠흠. 조금 긴장했지만, 그래도 본인에게 관심을 가져준 친구다. 마지막 가는 길에 이름은 듣고 가야 하지 않겠나.


"저, 안녕?"

"어, 왜?"

"그, 혹시 너의 이름은 뭐니? 그리고 어디 출신이고?"

"나? 나는 케빈이야. 알바니아에서 왔지."

"아하, 그렇구나. .........그래, 반가워."


대화치고는 싱겁게 끝난 우리 둘의 티키타카. 애초에 짐 정리를 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이라서 말을 길게 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그렇게 숙소에서의 마지막 대화를 마치고, 투리는 다른 동기들이 모여 있는 호스텔 앞으로 이동했다.



20250323_101244.jpg



예상대로 집합 시간이 되었는데도 ESN 일행은 출발하지 않았고, 발렌틴이 오고 또 10분이 지나서야 이동 시작. 그런데 밖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다른 급한 일정이 있어서 그 시간대에 집합한 건 아니었다. 체크아웃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호스텔에서 나와야 했던 것일 뿐. 오후에는 '차르토리스크 박물관'을 가야 하지만, 그전까지는 자유일정이다. 다시 자유시간이 되자, 우리는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했다.



몇 명이 대표로 어디를 가야 하나 구글맵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키키가 본인이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며 먼저 일행을 향해 말했다. 그녀가 찾은 곳은 토끼들이 있는 크라쿠프 유일의 카페. 사진을 보니, 주변이 분홍 배경으로 가득 찬 러블리한 감성의 카페였다. 딱 봐도 키키가 좋아하게 생긴 곳이었다. 하지만 발렌틴의 생각은 달랐다. 기억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발렌틴은 스웨덴인. 발렌틴은 본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카페를 찾고 싶다고 했다. 그의 입맛을 해결해 준 곳은 스톡홀름 카페.



어디를 갈까 고민을 했는데, 일행의 대부분이 키키를 따라 우르르 몰려가는 것 같았다. 브램 등 몇몇은 박물관이나 다른 곳으로 따로 빠지고 있었다. 고민을 한 투리는 저렇게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고 싶지는 않아서 발렌틴과 함께하기로 했다. 발렌틴과 함께한 일행에는 알렉세이, 이네즈 등이 있었다.



20250323_105449.jpg 비교적 아기자기한 느낌의 스톡홀름 카페



비가 내리는 칙칙한 크라쿠프의 거리를 10여분 가량 걸어서 간 끝에 발견한 스톡홀름 카페. 안을 보니 상당히 아기자기한 느낌의 북유럽풍 카페였었다. 사실 본인은 일반적인 폴란드 카페와 위 사진의 카페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으나, 발렌틴이 별말하지 않았던 걸 보면 스톡홀름 감성의 카페는 맞는 것 같았다.



20250323_110101.jpg



위의 사진이 카운터 뒤에 사람들이 앉는 바깥쪽 공간. 우리는 여기에 머무르다가, 이동하고 싶을 때쯤 키키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카페에서 비를 피하면서, 발렌틴 일행은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유럽과 관련된 여러 가지 얘기를 한 것 같았다. 심지어 몇몇은 가끔씩 자기들의 언어로 얘기하기도 해서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투리는 여기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나마 투리가 발렌틴에게 물어봤던 거 하나만큼은 투리의 기억 속에 남았는데, 삐삐 롱스타킹이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걸 알고 있냐고 물어보니까 금시초문이란다. 그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우리나라의 소설 내용이 일본 애니로 나왔다고? 나는 한 번도 못 들은 얘기인데, 그것 참 신기하네!"



역시, 일본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본인들의 스타일에 맞게 잘 재해석하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20250323_110306.jpg
20250323_111524.jpg



어쨌거나 두 시간 정도가 흘렀나. 슬슬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 일어날까?라고 물으면서 자리를 초밥집으로 옮겼다. 결국 키키의 카페에 가는 것은 포기.




20250323_131905.jpg



위 사진이 초밥집에서 주문한 메뉴였는데, 그전에 차가 먼저 우리의 식탁 앞에 제공되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또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했는데, 이네즈가 무언가를 가방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작은 노트였다. 그게 무엇인지 물어보니, 지금까지 여행했던 곳들에 대한 기록을 적으면서 흔적을 남기는 노트라고 한다.



20250323_131444.jpg 이네즈의 노트



이네즈의 노트를 보니, 저렇게 노트에 관광지들에 관한 작은 자료들을 붙이면서 본인의 감상을 모국어인 불어로 쓰는 것 같았다. 투리가 직접 다른 페이지들도 보았는데, 어떤 페이지는 글만으로 가득했고, 또 어떤 페이지에는 여러 자료들이 남아 있었다. 몇몇 페이지들에는 본인과 함께한 동료들의 말도 모아놓았다고. 그러면서 그녀는 우리에게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20250323_131454.jpg 투리의 현생 이름이 있어서... 그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시켰다 ㅜ



투리도 그녀의 일기장 한편에 본인의 응원과 캐릭터 로고를 적어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본인이 쓴 저 문장, 뭔가 잘못되었는데. 'Exchange life'는 직역하면 '교환 생활'이잖아. 차라리 'ESN life'로 써 주는 게 더 깔끔할 뻔했다. 하지만 원래 그런 서툰 점(?)도 다 지나가면 추억이라지 않나. 이네즈는 지금쯤 프랑스에서 잘 지내고 있을는지.



다들 그녀의 노트에 각각 자신들의 이름과 롤링페이퍼를 마칠 때쯤, 드디어 초밥 도착! 빠르게 초밥을 흡입하며 배를 채운 투리는, 일행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바로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는 2시간 반에 걸쳐 차르토리스크 박물관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20250323_160726.jpg






자, 관람을 마치고 이제는 다시 호스텔로 가서 짐을 챙길 시간. ESN 모두가 짐을 들고 이동을 할 수는 없었기에, 대부분은 짐을 호스텔의 창고 부분에 따로 모아놓았다. 그래서 기차가 떠나는 시각인 6시 이전에는 반드시 호스텔에 들러야 했다.



그래서 일행과 함께 오후 5시쯤 호스텔로 돌아온 투리. 그런데 아뿔싸. 본인, 세면도구를 잃어버렸다. 기차가 바르샤바에 도착하면 이미 밤이 된 이후일 테니, 지금 가만히 있다간 내일 아침까지 양치를 못하는 불편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야 할 판. 다른 동기에게 양해를 구한 뒤, 본인은 급히 시가지 근처 여기저기를 뒤졌다. 아쉽게도 세면도구는 찾지 못했지만, 그나마 불쾌감은 덜어줄 껌과 호올스를 발견. 급한 불이라도 끄기 위해 투리는 편의점에서 껌을 주문하고 다시 호스텔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호스텔에 돌아올 즈음, 갑자기 케빈이 본인의 등을 툭툭 쳤다. 뭔가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헤이, 투리! 잠깐. 내가 너한테 보여줄 게 있어. 따라와 봐."

"? 뭔데?"


내가 반응을 보이자, 곧바로 나의 두 눈을 가린 케빈.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냐, 아냐. 지금은 볼 수 없어. 너는 나만 따라오면 돼."

"?"


따라가면서 케빈을 따라 호스텔로 올라가는데, 뭔가 불안했던 투리. 이거 설마, 뒤에서 담그려는 건가? 본인의 이런 긴장한 상태를 케빈도 인식했는지,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아, 걱정 마! 이상한 거 아니니까. 진짜 이상한 거 아니야."


....대체 뭔데 갑자기 호스텔로 이동하는 거지. 계단으로 중반쯤 올라갔을 때, 순간 케빈이 전날 본인의 생일 얘기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어, 그러고 보니 본인. 어제 바벨 성 관람을 마치고 친구들 앞에서 생일 얘기를 했었지. 그러면 설마....


중반쯤 가서야 상황을 눈치챈 투리. 혹시나 하면서 남은 계단을 올라가는데,



눈을 뜬 순간,



20250323_170627.jpg



"생일 축하합니다!!!"


사방에서 생일을 환호해 준 동기들의 모습과 케이크를 가져오는 파티에서 리듬 타던 동기의 모습. 케이크에는 위 사진의 빵 세 개와 함께 정확히 본인의 현생 나이에 맞는 수의 양초가 올려져 있었다(독자 분들은 구태여 세지 말아주시길). 옆에서 카밀리아가 접시를 받쳐주는 동안 친구들이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 케빈이 본인을 부를 때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와, 정말로 고마워! 이미 생일이 사흘이나 지났는데도 이렇게까지 챙겨주다니."


"당연히 챙겨줘야지. 오히려 급하게 준비한 거라서 좀 더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저렇게 답변한 동기가 누구였는지는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거기 있던 상당수의 동기들이 다 그런 마음이었겠지. 당시 ESN 위원회를 빼면, 투리가 아는 동기들은 그때 다 위층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들 본인이 흘러가듯이 얘기한 생일을 까먹지 않았을 줄이야.



20250323_161004.jpg 거리를 지나가면서 찍은 풍경. 여러 그림들이 걸려 있다.



빵을 준비한 사람은 키키. 세 빵의 맛이 각각 다르다는데, 두 번째까지만 무슨 맛인지 알려주고 나머지 하나는 직접 먹으면서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덕분에 빵을 세 개씩이나 받은 투리는, 기차를 타고 바르샤바로 돌아가면서 배를 곪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투리의 크라쿠프 여행은 기대가 컸던 처음부터 생일 축하로 마무리한 마지막까지, 정말로 훌륭한 여행으로 남게 되었다.



애초에 Surprise Party만 해도, 투리가 인생에서 받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본인의 육체 나이가 스물을 넘겼다만, 국내에서도 여태껏 한 번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귀중한 경험을 투리는 다시 한번, 그것도 유럽에서 외국 동기들에게 받은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누리기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살면서 다시 오지 않을 유럽에서의 깜짝 생일 축하파티. 비록 간소하지만, 본인의 생일을 기억하고, 이렇게라도 챙겨주려고 했던 당시의 동기들이 지금도 참 감사하다.






ㅠㅑㄱ소.jpg 친구들에게 깜짝 생일 축하를 해 줘서 고맙다는 투리의 단톡방 인사말



너무 자랑하는 것 같은가? 그렇다면 맞게 봤다. 지금 이 순간, 투리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지금의 글을 자축하고 있다! 하하하. 하지만 달리 보면, 누군가는 자기 생일을 이 정도밖에 축하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 않나? 그에 비하면, 투리는 오히려 생일 축하를 받은 것 자체만으로 기쁘기 그지없다. 평소에는 소박함을 지향하는 투리이기에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정말로 소중한 기억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아무튼 본인 딴에는 진귀한(?) 축하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흑투리의 두 번째 도시. 크라쿠프 기행글의 마지막 여운을 남기도록 하겠다. 이 글을 보는 독자 여러분들도 미래에 교환학생을 가거나,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그 순간을 반드시, 반드시! 온 감정을 다해 누리시길 바란다! 그러한 추억 하나하나가, 당신의 과거에 행복한 순간을 회상시킬 수 있는 격려이자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keyword
이전 19화[크라쿠프 기행] 어떤 공작의 금품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