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 중앙 직물 박물관>, 우치의 핵심인 섬유산업의 이모저모를 담은 곳
李 정부 "방산 강국 나아가야...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尹 대통령의 미래 먹거리(산업)는 반도체?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미래 먹거리 산업은?
"먹거리 산업"이라는 말, 몇 년 전부터 뉴스에서 많이 보지 않았는가? 굳이 뜻을 검색해 보지 않아도 우리의 밥상을 책임질 정도로 중요한 산업이라는 것은 다들 예측했을 것이다. 한 번 의미를 검색해 보니, 먹거리 산업은 "인간의 생명 유지와 건강에 필수적인 식품 생산, 가공, 유통, 소비를 아우르는 핵심 경제 분야"를 뜻한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한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투리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한 나라가 미래 먹거리 산업을 무엇으로 지정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전망이 있는 산업을 제대로 못 정하거나 투자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는 세계의 흐름에 뒤쳐지고 만다. 그래서 행정을 집행하는 정부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어느 정권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주목받는 산업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고, 그에 따라 국민들 역시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정부의 중요성을 역설할 이유는 수십, 수백 가지는 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먹거리 산업은 진짜 그 도시나 나라의 경제를 멱살 잡고 끌어올릴 수준으로 매우 중요한 산업인데, 폴란드를 여행하면서 그 먹거리 산업의 영향력을 아주 크게 느낀 박물관이 있다. 글 제목을 봤다면 다들 아시겠지만, 그 박물관은 '우치 중앙 직물 박물관(Centralne Muzeum Włókiennictwa, 영어로 Central Museum of Textiles in Łódź)'이다. 이 말을 몇 번째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치의 핵심 산업은 섬유, 방직 쪽이다. 유럽의 부호들이 너도나도 먹거리 산업과도 같은 섬유와 방직에 손을 대자, 우치는 19세기말 순식간에 폴란드 안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로 성장한다.
단순히 도시의 성장뿐이겠는가. 우치의 먹거리 산업은 또 하나의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 변화는 '패션 기반의 마련'이었다. 그저 생계를 위하여 노동자들이 만든 원단들이 곧 의류 제작 산업 기반이 되었고, 이것이 20세기말에 이르러 패션 디자인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만다.
자, 그러면 이번 글에서는 해당 박물관의 실내전시관을 위주로 투리의 감상과 더불어 약간의 배경설명을 첨가하도록 하겠다! 한때 우치의 먹거리 산업과도 같았던 섬유 내지는 직물 산업. 이 박물관 속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걸까?
가장 처음으로 들어갔던 실내전시관 구역은 기계 체험실! 해당 박물관은 설립 초기부터 주로 전형적인 공업용 물품들이 수집했으며, 이는 방적, 제직 등 여러 생산 과정에서 사용된 기술적 아이디어와 진보를 보여주는 자료였다고 한다. 특히 우치 지역의 방직 산업에서 만들어진 완전하고 문서화된 기계 세트들은 폴란드 내에서도 큰 규모라고 알려져 있다. 해당 기계들은 교육용으로 전시해 놓았는데, 가이드가 실제로 작동시킬 수 있다고 한다.
투리는 방직 기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각 기계가 어떤 공정을 맡는 기계인지 몰랐지만, 해당 전시관에서는 크게 방적(spinning), 제직(weaving), 편직(knitting), 마감(finishing)이라는 네 가지 생산 영역으로 나누어 기술의 발전을 소개하고 있었다. 또한 설명서에 의하면 준비 공정(preparatory department)이라 불리는 섬유 생산 초기 단계에 사용된 기계들도 일부 전시관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투리 눈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였던 기계들이 자세히 보니 일정한 역할에 따라 여러 갈래로 세분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투리가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한 남자가 다른 사람들을 앞에 두고 당시의 기계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몸소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가이드는 손으로 기계를 조종하면서 바쁘게 관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으나, 슬프게도 투리는 폴란드어를 못하는지라 그의 말을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한편 해당 가이드에 대한 배경설명도 한쪽에 걸려 있어서 한 번 찍어봤는데, 내용을 보니 우치의 직물 산업에 대한 열정이 상당하신 분으로 보였다. 이 체험 전시관이 운영될 수 있던 것도 저 가이드 분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어를 잘하시는 독자 분들은 저 가이드의 이력이 궁금하다면 위의 오른쪽 사진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잠깐이나마 체험실을 구경하고 다시 메인 홀로 돌아온 투리. 이제는 제대로 건물 안의 전시관을 둘러볼 차례이다. 이 메인 건물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면, 해당 건물은 Ludwik Geyer 가문이 고전주의 양식으로 만들었던 건물이다. 폴란드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산업 건축 기념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건물은, 1955년부터 본격적으로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대부분 상설 전시관이 아닌 특별전시회를 위주로 운영하고 있으며, 전시관 안에는 여러 원단과 그 원단들을 활용한 옷감 및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우치의 방직 산업을 통한 패션의 발전과 현재 역시 이 실내전시관에 나와 있다.
한 층 올라가고 가장 처음으로 마주한 전시관은 여러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모아놓은 전시관! 설명에 따르면 전시된 소장품들은 기술과 재료에 관한 지식의 저장소일 뿐 아니라, 직물 예술과 관련된 아이디어 역시 함께 담고 있다고 한다. 위의 직물들은 실용적 용도를 벗어나 예술적 변형의 길로 나아가던 순간, 그리고 세대와 세대를 잇는 전통이 세월을 거치며 어떻게 재해석되고 반복되어 왔는지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내용이 좀 어려운데, 일단 하나하나씩 살펴볼까.
직물들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는 시도가 느껴졌다. 위 사진들을 보면 누가 봐도 평범한 원단은 아닌 것 같아 보이지 않은가? 박물관의 관점에 따르면 원래 직물과 원단은 인류의 문화에 있어서 물질적, 정신적 유산의 표현과도 같은데, 이 지속성은 민간 직물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민간 예술의 역할은 달라지고 원단의 상징과 흔적마저 새롭게 바뀐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전시된 직물들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기록뿐만이 아니라, 소위 "전통의 발명"이라는 주제로 새로운 가치 창조를 표현하는 것을 의도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투리가 많은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이 전시관 안에 있었던 직물들은 확실히 투리가 아는 일반적인 직물들과는 달랐다. 조금 예술적인 느낌이 담겨 있었다고 말해야 할까? 본인은 왜 굳이 옷을 만드는 데 쓰는 옷감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지루한 산업 활동 속에서 조금이나마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고 싶은 욕구가 노동자들 안에 반영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창조'란 개념은 인간들만이 활용할 수 있는 특권이니까 말이다.
한편 좀 더 넓은 쪽으로 자리를 옮기니, 아카디우스 베렘추크(Arkadius Weremczuk, 1969~)라는 사람의 패션 전시관이 특별 전시회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카디우스는 폴란드 패션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인데, 영국 패션 위원회(British Fashion Council)에서 뉴 제너레이션 어워드(New Generation Award)와 엘르 스타일 어워드(Elle Style Award) 등의 상을 수상할 만큼 패션에 대한 커리어가 화려해 보이는 분이었다. 그분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잠깐이나마 이런 전시회를 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아카디우스는 우치 태생의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들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아카디우스의 작품들은 상당수가 섬유 소재와 직물을 재료로 사용해 패션과 예술을 결합시킨 형태이다. 이 박물관이 전통적인 직물 산업의 새로운 창조를 나타내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을 상기하면, 현대의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들도 우치의 섬유 유산과 예술적으로 통한다고 느꼈나 보다.
원래 이 건물은 지금처럼 박물관으로 활용되기 전에는 게이어의 면방직공장으로, 19세기 당시 최신식 기계를 도입한 폴란드 최초의 대규모 산업 시설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이 시설은 단순히 직물만 만든 게 아니라, 의류 제작이나 염색, 디자인 샘플 개발까지 모두 담당했다고 한다. 결국 이 박물관의 역사 자체가 우치가 '패션 디자인'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종 원단과 직물을 활용한 현대 디자이너와의 만남은, 이 박물관에게 있어 전통과 현재의 연결을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외에도 여러 다양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특별 전시회 작품들을 보면서, 투리는 직물을 활용한 다양한 작품들을 보면서 해당 건물의 전시관을 모두 둘러보았다. 정리해 보면 위층의 특별전시관들은 모두 직물과 패션 산업이 현재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저 옷감 재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 같은 직물과 원단들을, 어떤 폴란드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메인 건물에 있는 전시관을 모두 살펴본 후, 다음으로 방문한 실내전시관은 'City-Fashion-Machine' 코너! 0층에는 옷감 날재료를 가공하는 일련의 기계들, 1층은 도시의 발전, 그리고 2층은 도시의 발전에 따른 패션의 변화를 각각 전시하고 있었다. 위 사진 역시 앞서 서술했던 기계들 중 하나인데, 0층에서는 단순히 기계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추어 변화하는 공장의 배경도 담아내었다.
그 당시 공장들이 주로 쓰던 의류 제작 재료들은 세 가지로 나뉘었는데, 그것들은 면직물(cotton textiles), 모직(wool), 리넨(linen)이었다. 이 재료들을 만드는 공장들이 밀집함에 따라 우치에는 다양한 섬유 도구와 기계들이 모이게 되고, 이에 따라 우치의 먹거리 산업은 더욱 탄력을 받는다.
우치가 본격적으로 기계 소리로 넘쳐나던 시기는 19세기 이후부터로, 수많은 노동자들은 방직 기계와 씨름을 하면서 공장 안에서 근무를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직전, 우치에는 무려 1900개의 다양한 공장들이 있었고, 이 직물 산업으로만 우치 거주민 전체의 85%를 채용할 정도로 그 규모는 컸다. 전쟁이 끝나고 15년이 지난 후에도, 면직물이나 옷감 관련 산업들은 여전히 도시 인구의 60%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공장에서 나오는 규칙적인 패턴의 소리들은 사람들의 노동 루틴을 맞추어 주었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을 혹사시켰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분명 기계는 산업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시 전체의 발전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 저렇게 위압감을 주는 형태의 기계를 다루느라 노동자들은 페이스를 비정상적으로 높여야 했고, 이는 곧 크나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여러분이 저런 기계들을 수작업으로 다루는 노동자들이라고 생각해 보자. 저기가 평생직장이라고 친다면 사고 한 번 안 낼 자신이 있는가? 투리는 전혀 자신이 없다. 본인이었다면 아마 물리적 사고가 나기도 전에 먼저 정신병에 걸렸을 것 같다. 왜냐하면 본인은 저런 폐쇄적이고 단조로운 노동 환경을 무척이나 싫어하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공장과 기계, 노동자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짐에 따라 공정의 전체적인 과정을 총괄할 사람이 필요해졌고, 이에 따라 숙련된 교육자들이 그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6년에는 방직 산업에 관한 국제기구가 우치에서 처음 열렸다고 한다. 그만큼 우치의 먹거리 산업이 유럽에도 미치는 역할이 상당했다는 뜻이다.
무수히 진열되어 있었던 기계의 감상을 마치고 1층으로 올라간 투리.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칙칙한 기계들의 풍경이 전시관을 가득 채웠는데, 1층부터는 전시관이 조금 더 알록달록해졌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1층은 우치라는 도시의 발전 내용에 비중을 둔 전시관. 산업이 도시의 경제규모를 키움에 따라, 도시의 건축이나 환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우치에서 직업을 구하러 온 사람들에게는 이 도시가 "약속의 땅"이나 다름없었고, 몇몇 공장주들은 큰 이익을 얻으면서 압도적인 부를 쌓게 된다. 투리의 초반 우치 기행글에서 언급한 포즈난스키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한편 공장의 굴뚝은 도시의 상징이 될 정도로 흔해지고, 어떤 노동자들의 경우 주거와 노동공간이 혼재되는 상황도 생긴다.
왼쪽 사진을 보면 우치에서 부를 얻은 가정의 행복한 모습을 엿볼 수 있지만, 오른쪽 사진에는 획일화된 공장과 도시의 벽돌 사진들이 걸려 있다. 같은 도시에 사는 시민인데 누군가는 남부럽지 않게 평온하고 유유자적한 인생을 살아가고, 누군가는 열악한 공장 환경에서 가족을 살리기 위해 치열하게 일을 하고. 뭔가 위화감이 드는 건 단지 기분 탓일까.
도시에 관한 얘기들은 이전 글에서 충분히 서술했으니, 이번 글의 마지막 전시관인 2층으로 올라가 보자. 위의 사진부터가 우치의 먹거리 산업을 통해 발전한 패션에 관한 전시관이다.
위 사진을 보니 어떤가? 박물관 폐관 직전이어서 전시관 불이 꺼진 걸 감안하더라도 0층보다는 화려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다양한 색깔의 빛들로 둘러싸인 피오트르코프스카 거리는 유럽에서 가장 긴 런웨이 거리가 되었고, 많은 예술가들은 우치에서 디자인에 대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수요가 많은 옷을 판매하는 상점들과 시장, 백화점, 그리고 재단사 작업장이 늘어난 데에 있었다.
동시에 도시와 거리에 늘어선 각 브랜드의 진열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했고, 패션 트렌드는 전문가들의 논평이나 광고, 영화 등을 통해서 구매자들을 유도했다. 한편 1962년부터는 지금의 온라인 쇼핑몰과 유사한 기능을 담당한 우편 주문 백화점(Mail-Order House) 제도를 통해 도시의 수요와 공급을 해소했다고 한다. 공산주의가 자리 잡힌 사회 체제 안에서도 패션을 통해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욕구는 막을 수 없었나 보다.
더 나아가 창의적인 재단은 그 시절 현대성에 대한 갈증을 비공식적으로 해소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들의 방식은 대부분 유엔이 제공한 물자나 민속 수공예품과 같은 재료들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냉전기의 폴란드 시절에는 공식적인 패션 산업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개인이 직접 자기 옷을 디자인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전시관의 패션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우치의 배경 덕분이었을 수도.
위 전시관을 마지막으로, 투리의 '우치 중앙 직물 박물관' 관광은 끝을 맺었다. 솔직히 본인도 모든 전시관을 다 방문했다는 확신이 없을 정도로, 이 박물관은 굉장히 복잡하고 많은 전시관들이 있었다. 박물관에 대한 안내책자를 봤을 때 투리가 못 본 장소들도 꽤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장소들만으로도 우치의 과거 먹거리 산업을 소개하기에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치의 섬유와 방직 산업은 먹거리 산업으로써의 기능이 끝났지만, 그들이 이룩했던 발전의 흔적은 여전히 박물관에 남아 과거의 낭만을 알리고 있다. 이제 우치는 예술과 영화 산업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발굴해 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조금은 뜬금없지만, 글을 쓰면서 문득 한국의 먹거리 산업이 떠올랐다. 한국 역시 세계에 내놓아도 경쟁력이 있는 먹거리 산업들이 꽤 있지 않은가? 반도체, 조선업, 원자력과 같은 산업들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산업들이 그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는가? 혹여나 우리의 선택이 전도유망한 먹거리 산업들을 스스로 파괴해 박물관으로 퇴역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