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 기행] 망한 공장에서 다시 짜낸 문화단지

<마누파크투라>, 폴란드 우치의 재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복합 문화공간

by 흑투리


조금 갑작스런 TMI지만, 본인 흑투리는 본인의 기행글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는 소년(?)이다. 그 이유는 본인의 여행 글에서만 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특징은 흑투리 특유의 글러먹은 성격이 본인의 글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밀레니엄 세대 이상 되시는 독자 분들은, 아마 본인의 글을 보면서 MZ 세대의 생각을 배워가실 지도 모르겠다(그런데 투리 본인을 통해 배우시길 그리 권장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특징은 특정 도시와 관광지에 대한 배경설명이 알차다는 것이다. 투리는 독자 여러분이 본인의 글을 그저 감상글 하나 보는 느낌에서 끝내길 바라지 않는다. 그 모든 유혹을 뚫고 시간을 내어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인데, 여러분의 시간은 소중하지 않은가? 그래서 투리는 본인의 글을 통해 하나라도 더 배워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해하기 쉽게 배경 이야기들을 담는다(말이 너무 많은 게 함정이지만).





그러나 이건 글을 쓰는 사람만 아는 얘기지만, 그 알찬 배경설명을 담으려면 관광지와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영어 내용을 듣고 읽는 실력이 필수적이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맥락에 맞게 한국어로 풀이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특히 박물관에 관한 기행글을 쓸 때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어 두통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번 글은 감사하게도, 감사하게도! 정보량이 상대적으로 많이 요구되는 관광지는 아니다. 무엇보다 이번에 소개할 관광지는 우치에 도착한 분들이라면 가볍게 훑고 지나가도 무방한 곳이다. 왜냐하면 이번에 투리가 간 장소는 배경지식보다는 시각적인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생각보다 역사적인 상징성이 큰 관광지기도 하다. 그럼, 오늘은 '우치 여행' 하면 반드시 거론될 수밖에 없는 이름, '마누파크투라(Manufaktura)' 복합 공간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3일 동안 우치의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을 진전했던 투리. 마지막 4일차는 월요일이라 거의 모든 박물관이 휴관한 관계로, 바깥구경을 하면서 여행을 마치기로 했다. 마침 우치의 상징 되는 마누파크투라를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어서, 이때 보기에도 딱 좋은 타이밍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투리가 들어간 방향이 사진에서 본 구도랑 달라서, 처음에는 들어가는 길을 찾느라 조금 고생했다. 위에서 두 번째 사진 쪽 모습을 봤을 때는 그 모습이 흡사 물류센터 같아서 본인이 길을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가까이 가니 확실히 물류센터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지금까지의 사진들을 보면 대충 감이 오겠지만, 마누파크투라는 여러 소핑물과 문화, 레저가 결합된 복합 공간이다. 이 공간은 우치의 공식 여가 시설 중에서는 27헥타르(27만 제곱미터)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으며, 개장일은 2006년 5월 17일이다. 위치는 두말할 것 없이 우치의 중심 쪽으로 상당히 노른자 지역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마누파크투라 입구에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본 안의 모습.



이전 기행글들에서 투리가 우치 MS2 미술관, 우치 도시 박물관(포즈난스키 궁전) 등을 소개했었는데, 놀랍게도 본인이 앞서 방문했던 곳들 상당수가 이 복합 공간 근처에 있었다. 다만 박물관은 개관 요일과 시간대가 정해져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관광 우선순위로 잡은 것이고, 마누파크투라는 얼마든지 방문할 수 있으니 뒤로 미룬 것이다. 여행에 있어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가면 최소 실패하지는 않는다고 하지 않나. 비슷한 맥락이다. 모든 도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더블린이나 브뤼셀 등 상당수의 도시는 관광지들 여러 개가 도보로 갈 수 있는 공간 안에 밀집되어 있다. 박물관도 사람이 많은 곳에 세워야 흥행하는 법이니, 따지고 보면 그리 이상한 얘기는 아니다.





언급하면서 포즈난스키가 세운 우치 도시 박물관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이 공간을 가장 처음으로 확장시킨 사람 역시 이즈라엘 포즈난스키(Izrael Poznański)다. 이즈라엘 포즈난스키가 1살 때 그의 아버지가 처음 우치로 거처를 옮기면서 다양한 직물과 조미료를 팔아 장사를 했는데, 나중에 그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으면서 이곳을 눈여겨봤던 것이다. 그는 사업을 확장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지금의 마누파크투라 일대에 방직 공장, 소방서, 회사 상점 등의 주요 시설들을 25년 동안 건설했다.





얘기하면서 지금까지 사진으로 마누파크투라 안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놀랍게도 이 길은 중앙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길들 중 단 하나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 공간은 2층으로 되어 있어 출구가 또 갈린다. 입구에서부터 위의 중앙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렸나, 체감상 10분은 걸렸던 것 같다. 반대쪽 방향으로 갈 때는 그보다 훨씬 오래 걸렸던 것 같다. 한쪽 입구에서 정반대 방향의 입구까지 걸어서 가려면 최소 20분 걸릴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일직선으로만 이동해도 통과하는 데만 20분이 걸리는 규모인데, 그때도 이 공간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용되었겠는가? 당연히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감당할 필수 시설들도 있어야 하는 법. 그래서 포즈난스키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위해 거주지나 병원, 학교와 식당들도 함께 만들어주었다. 이것만 해도 개인이 달성하기에는 압도적인 성과인데 그가 모은 부가 얼마나 상당했는지, 포즈난스키는 자식들을 위한 으리으리한 집과 회당(synagogue, 유대인이었던 포즈난스키는 유대교식 예배당을 세웠다)에도 상당한 투자를 했다고 한다.



길목 중간에 있던 화장실 통로.



하지만 포즈난스키가 세운 복합단지의 발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치는 곧 여려 악재들을 연속적으로 마주치게 되는데, 바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러시아 제국의 정치적 격변이다. 세계 1차 대전과 대공황은 포즈난스키의 사업에 큰 빚을 지게 만들었고, 독일군의 침공으로 인해 포즈난스키가 세운 회당 등은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그리고 근대 시대까지만 해도 우치는 러시아가 소유한 지역이었는데, 나치와 일제가 항복한 뒤 우치가 폴란드 품으로 돌아가면서 소련은 우치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다.



유럽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상당수의 브랜드들이 마누파크투라 안에 모여 있다.



이후 마누파크투라는 국유화되면서 냉전 기간 동안 우치의 다른 공장들과 함께 폴란드 공산당의 통제 하에 놓인다. 포즈난스키의 개인 저택이 우치 도시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던 것도 바로 이 시기에 속한다. 마침 투리가 포즈난스키 궁궐에 대해 적어 놓은 글도 있으니, 이즈라엘 포즈난스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그 글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마누파크투라 일대는 1990년대까지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면서 운영되다가, 폴란드 정권이 바뀐 뒤 청산 절차에 들어감에 따라서 폐허가 되어 버렸다.





구제불능이 되어 버린 포즈난스키의 유산을 구해준 주인공은 프랑스의 개발사 Apsys Group였다. 2000년대 초에 이 부지를 인수한 개발사는 건축 보존 전문가, 문화재 복원가, 도시계획가들의 협력을 통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대규모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19세기 붉은 벽돌 건물의 외벽과 아치형 창문, 굴뚝 등의 원형(原形)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으며, 그러면서 냉난방 기능과 엘리베이터 등의 기능을 확보하면서 현대화를 꾀했다. 공간 구조도 개방형으로 바꾸면서 마누파크투라는 성공적으로 기사회생하게 된다.



프랑스의 주택 개조와 원예 소매업체, 르루아 메를랑 안 모습



여기 프랑스의 대표 주택 개조 브랜드 르루아 메를랑(Leroy Merlin)을 보자. 여기 한 군데만 하더라도 그 규모가 굉장히 크다는 게 느껴지지 않은가? 장담하건데, 이 지점 한 군데만 돌아다닌다 해도 족히 30분은 걸릴 것이다! 이런 공간 안에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300군데 이상 자리를 잡았으니, 개발사의 시도는 완벽히 성공한 셈이다. 150년 전, 그 칙칙한 공장 단지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그들이 서 있는 땅이 이렇게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할 줄 알았을까?





한 시간 넘게 마누파크투라 안 매장들을 천천히 둘러보니, 배가 출출해졌다. 적당히 앉아서 시간을 때울 장소가 어디 없을까 했는데, 마침 위 사진의 커피 프랜차이즈가 눈에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저 프랜차이즈는 위아래로 매장을 하나씩 운영하고 있었는데, 시야가 넓은 곳에 앉고 싶던 투리는 위쪽에 앉기로 했다. 이렇게 본인처럼 생각하는 손님들이 많을 게 뻔한데, 저 'Costa Coffee'는 왜 굳이 아래층에도 매장을 세운 걸까.



투리가 주문한 그 날의 간식.
위쪽 Costa Coffee 매장에서 바라본 마누파크투라 공간의 모습.



크,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여유롭게 앉아서 시간을 떼우는 게 얼마만인가. 지금까지 투리의 인생은 항상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삶의 여유라고는 조금도 없던 각박한 인생이었다. 대한민국에서의 투리는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아왔고, 교환학생을 마친 현재 역시 그 압박감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해도, 그저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을 생각 없이 관찰하기만 해도, 누구 한 명 나무라지 않았다.



뭐랄까, 투리는 살아온 환경 탓에 아무것도 안 하면 뭔가 불안하고 마음이 힘들어지는데, 난생 처음으로 그런 기분이 안 들었다. 우와, 뭐지. 이 해방감이란? 누구 한 명 아는 사람 없는 이 우치에서, 투리는 제한된 시간 동안 뭘 해도 상관없다. 본인이 어떤 활동을 하든, SNS로 근황을 알리지 않는 이상 그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다. 알고 계신가, 독자 분들? 혼자 외진 곳에 떨어져, 주변 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어떤 기분인지 말이다. 단언컨데, 이런 기분은 혼자 여행이 아니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배도 채우고 시간도 떼웠으니, 슬슬 일어나 볼까. 반대쪽 방향으로 나가면 어떤 게 있을지도 궁금하다.



라이벌마냥 나란히 서 있는 샤오미와 삼성 매장. 파이팅이다, 삼성!





그렇게 반대쪽으로 열심히 가 보니, 보이는 풍경은?





자, 드디어 투리가 기대했던 장면들 발견! 처음에 투리가 앱에서 본 마누파크투라의 사진들은 투리가 찍은 위의 사진들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역시 투리가 반대 방향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리 두 눈 씻고 찾아봐도 'manufaktura'라고 적힌 간판이 안 보여서, 그 사이 이 공간이 재단장을 했나 생각했는데 말이다. 여러분도 혹시 MS2 미술관 쪽으로 해당 장소에 도착한다면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아까도 말했지만 여기가 여간 넓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쪽의 시네마. 명색이 영화 도시인데 시네마가 없으면 섭섭하다, 하하하!



여러 종류의 먹거리 스탠드와 놀이 시설들이 보인다.



다른 쪽 방향도 둘러보니, 처음 도착했을 때 전혀 보이지 않던 새로운 바깥 공간들도 있었다. 영화관, 카페, 레저 시설, 의류 브랜드, 심지어 가구점까지...마누파크투라, 이쯤 되면 없는 게 없을 수준이다. 그렇게 한 바퀴를 빙 돌고 나서야, 예상했던 시간보다 1시간 더 오래 머물렀던 투리의 복합 공간 관광은 끝이 났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저 특별할 것 없이 크기만 한 복합 공간을 왜 굳이 구경하느냐고. 그 말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투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한 도시에 대한 이해는 그 대표 장소에 머무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이다. 본인이 서 있는 장소의 배경과 그곳을 사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알아야, 유럽에 대한 이해도는 풍성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마누파크투라는 폴란드와 우치를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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