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ięży Młyn>, 붉은 벽돌의 산업유산 지구
몇 년 전, 본인 흑투리와 유한열이 부산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어떤 전망을 구경하려고 달동네 비스무리한 동네를 올라갔는데, 그 동네를 보고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집의 7~80% 정도가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뭐야?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데, 이런 데도 이렇게 집이 버려져 있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본인의 동네 밖을 잘 나가보지 않았던 투리였기에, 당시에는 그 상황이 굉장히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그러자 한열이는 놀란 기색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서울에도 저런 데 많아. 빈집이 시골에만 있는 건 아니야."
출산율이 문제일까, 동네 환경이 문제일까. 그게 아니면 둘 다인가. 어느 쪽이든 간에, 사람이 비었다는 말은 그만큼 그 공간을 제대로 못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누군가 거기에 살려면, 아니 최소한 관광객이라도 유치하려면 그 장소의 매력이 있어야 하니까.
이게 좋은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공간 활용'하면 폴란드도 말이 좀 많다. 10년 전쯤 유럽 책자를 뒤지면, 유독 폴란드 책자에만 "도로 상태가 좋지 않고 공사가 많다"라는 내용이 있다. 2025년인 지금이야 폴란드도 많이 발전했으니 그 정도로 심한 건 아니지만, 여전히 몇몇 교환학생들 동기들 입에서 "바르샤바는 몇몇 공간이 발전이 안 된 것 같다"라는 말이 오르내리기는 한다. 관광객들이 많은 구시가지랑 주변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바로 풀숲과 함께하는 동네로 변하기 때문이다.
물론 폴란드가 몰도바만큼 유럽에서 못 사는 국가는 아니니 이 문제가 폴란드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투리 눈에 폴란드는 미국과도 친하고 지금도 경제적으로 잘 성장하고 있으니, 이런 문제도 더욱 나아지길 기대해본다. 웃긴 건, 투리는 바르샤바에서는 교환학생 동기들이 얘기한 부분을 잘 못 느꼈다. 오히려 본인이 그 부분을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느꼈던 곳은 우치였다. 그리고 그 동네는 바로 'Księży Młyn', 우치의 자랑스러운 붉은 산업 건축 유적이다. 무려 '건축 유적'씩이나 되는 관광지인데, 발전이 덜 된 것 같은 게 무슨 소리냐고? 그 이야기를 지금! 이 글에서 밝히려고 한다. 그러면 투리의 3박 4일 우치 여정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관광지, Księży Młyn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관광지 소개를 하기 전에 씁쓸한 얘기를 조금 하자면, 원래 투리는 셋째 날에 해당 관광지 근방에 있는 '우치 영화 박물관'도 한 번 들르고 싶었다. 하지만 투리가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박물관에서는 본인을 받아주지 않았다. 슬프게도 다음 날은 월요일이라 휴관이었던 관계로 본인은 이 박물관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은 볼 기회가 없었지만, 영화에 관심이 많은 우치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대로 가기에는 뭔가 아쉬워서 '우치 영화 학교'도 서성거렸지만, 결국 이 학교도 안은 들어가지 못하고 겉만 훑어보는 식으로 끝나버렸다. 경비가 학교 입구를 열심히 지키는 걸로 봐서 쉬이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일은 꼭 남은 관광지들을 둘러보겠다고 결심한 투리. 이 날은 잠시 후퇴다.
마음을 굳세게 먹고 다시 돌아온(?) 다음 날. 마누파크투라 관광을 마친 투리는 곧바로 말로만 듣던 Księży Młyn 쪽으로 향했다. 월요일 정오라서 그런가, 사람들은 주변에 그리 많지 않았다.
골목을 지나고, 공원을 지나니 점점 보이는 빨간 건물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에는 주변 건물이 너무 격렬할 정도로 모두 시뻘겋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근처 간판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투리가 기대했던 폴란드어가 큰 글씨로 당당하게 적혀 있었다. 'Księży Młyn', 한국어로는 '크셴지 믈린'이라고 발음하며, 영어로는 'Priest's Mill'이라고 부른다. 이번 글의 부제목을 원어로 표기한 이유는 한국어로 쓰기에는 어딘가 어색한 것도 있지만, 해당 장소에 대응되는 한국어 명칭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Księży Młyn은 특정 건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치 안의 한 산업지구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진을 보면 건물들이 모두 붉은 벽돌로 지어진 것이 보일 텐데, 이 건물이 속한 장소 전체가 한 지구인 것이다.
아까 말했듯 이 구역의 이름은 영어로 'Priest's Mill', 다시 말해 '신부의 방앗간'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중세 시대에는 이 지구 근처에 밀방앗간들이 야셴(Jasień) 강 유역에 여러 개 존재했다고 한다. 해당 구역의 명칭은 그 밀방앗간들 중 하나를 신부가 소유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다가 19세기, 우치에 산업화의 물결이 불면서 시 당국이 이 지역 밀방앗간들을 우치 시의 산업 목적으로 사용하기로 지정한다. 여러 부자들과 산업가들이 우치에 방직 공장들을 세우기 시작하고, 그중 카롤 쉐이블러(Karol Scheibler)라는 부자가 이 방앗간 지역들을 인수하여 규모를 확장시킨다.
그 뒤 이 지역은 순식간에 한 마을 수준의 큰 규모를 이루게 된다. 방직공장, 창고, 가스공장 등의 산업 시설부터 시작해서, 학교와 병원, 소방서 등의 민간 시설들까지 이 지구 안에 세워진다. 투리의 이전 글을 보신 독자 분들이라면 그 흐름이 마누파크투라와 비슷하다고 느끼실 것이다. 얼추 맞기는 하지만, Księży Młyn에는 눈에 띄는 건축적 특징들이 있다. 첫 번째는 아까도 말했듯이 건물 하나하나가 붉은색 벽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인수자 카롤 쉐이블러가 독일계라 당시 독일이 쓰던 벽돌 건축 양식을 차용한 것도 있었고, 붉은 색깔은 그 시대에 근대성과 산업의 힘을 상징하는 강렬한 색깔이었다고 한다. 결국 몇몇 사람들이 쓰던 평온한 방앗간들을 하나의 공장 단지로 만든 카롤의 속내에는 강한 권력을 얻으려는 야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의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통해 우치를 지배했던 나라들은 확실한 경제적 이익을 얻어갔다. 카롤이 단지를 세웠을 때 우치는 사실상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우치에서 생산된 섬유 제품들 대부분이 러시아 시장으로 수출되었으니, 그의 단지도 사실상 러시아의 이득에 한몫한 것이다. 말 그대로 지역 하나가 몇 개의 방앗간에서 제국을 키우는 발전소로 변한 것이다!
이 前 산업단지의 또다른 특징은 공장과 주거지 구역에 자갈과 모래로 포장된 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정돈된 거리 배치와 함께 어느 정도의 깨알 자연미가 합쳐진 지역의 모습은, 나름대로 건축미를 어느 정도는 챙기려는 노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뭐랄까, 분명 지금까지 돌아다녔던 공장 단지들보다는 사람 냄새가 나지만, 어딘가 쓸쓸하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확실히 사진들을 보면, 월요일 오후란 것을 감안하더라도 생각한 것보다 사람이 너무 없었다. 건물들도 하나같이 잠겨 있었고, 장사를 하거나 열려 있는 곳은 손에 꼽았다. 휴일이나 저녁쯤은 되어야 행사도 하고 사람도 몰린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본인은 인적이 드물어도 너무 드문 타이밍에 온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몇몇 건물들은 조금 낙후되거나 버려진 곳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인파가 붐비지 않는 시간대에 오는 것도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 날씨 때문에 조금 흐린 감은 있지만, 주변의 좋은 풍경이 가려지지 않고 사진 안에 온전히 담기니까 말이다. 흐름을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 촬영뿐 아니라 관광지 감상에도 최적이다. 인파가 없으니 관광객치고 너무 차분해진다는 점은 흠이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성당이 성당 같지 않았던 경우들을 생각하면 훨씬 양반이다.
아무튼 이 단지는 그 뒤로도 계속 산업단지로서 그 기능을 톡톡히 헤내지만, 섬유 산업이 몰락하면서 공장들은 몰락하면서 폐건물로 전락해 버린다. 위기에 빠진 산업지구는 재생 사업을 통해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는데, 건물들은 주거, 사무실, 문화 공간 등으로 재활용되고 주변에는 박물관도 세워진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Księży Młyn은 관광객뿐 아니라 예술가 커뮤니티, 사진가, 영화인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가 되고, 그 거리가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사진들의 모습이다!
구름이 많고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모양과 구조는 다르면서 모두 같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들의 모습은 상당히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그, 우리가 촌스럽게 여기는 서울 벽돌집을 이쁘게 보시는 외국 분들이 계시지 않은가. 투리의 마음이 딱 그 외국인과 같았다.
그리고 한참을 걸으니 발견한 박물관 표시판. 오, 이렇게 사람 없는 시간대에 열려 있는 박물관이 있다고? 어디 한 번 들어가볼까?
처음에 투리가 접근한 방향이 사진과 반대 방향이었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박물관이 안 열린 줄 알았다. 다행히도 큰 도로 쪽으로 나와보니 열려 있는 입구가 보였다! 내용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박물관 안은 본인이 찍은 사진들 몇 장 정도만 보여주는 걸로 마치도록 하겠다. 참고로 이 박물관은 작지만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투리가 간단히 느끼기로는, 이 박물관은 당시 부유한 귀족 아래 있던 방직공 노동자의 삶을 재현해 낸 공간 같았다. 만약에 카롤 쉐이블러의 집을 전시했더라면 또 부자의 전시관이네 하면서 지루해 했겠지만, 오히려 노동자 가족의 삶을 전시해 놓으니 산업지구의 분위기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그 와중에 이 가족이 동시대의 조선 서민보다는 잘 살았던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한편 박물관의 반대쪽에는 카롤 쉐이블러가 지은 커다란 방적 공장 건물이 놓여 있었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하나같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황량한 느낌이었는데, 드디어! 드디어 사람이 좀 통하는 도로변으로 왔다. 이쪽은 안쪽보다는 펍이나 사무소 등 불이 켜져 있는 공간들이 많았고, 이따금씩 차와 사람들도 돌아다녔다.
이쪽 단지들이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이유는 여기에 특별히 더 큰 건물을 세우려는 카롤의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위 사진 부근은 야셴(Jasień) 강을 따라 형성된 구역에 속하는데, 카롤은 다른 부자들로부터 추가적인 토지를 매입한 뒤 해당 일대 전체에 걸친 공장 단지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지은 단지는 산업 지구의 다른 쪽의 워터 마켓(Water Market) 지역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처음에 투리는 위의 장소들이 공공기관인 줄 모르고 그냥 들어가려 했었는데, 건물 안쪽이랑 오가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다른 걸 파악하고 나서야 여기가 관광객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만큼 건물의 사이즈와 규모만 좀 다르지, 전체적인 기조는 다른 붉은 벽돌 건물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섬유 산업이 전체적으로 침체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대부분의 장소들이 버려질 법도 한데, 이렇게 남겨진 지역을 어떻게든 잘 살려놓은 걸 보니 용하기는 하다. 사실 이렇게 특징이 명확한 공간이 모두 버려질 걸 생각하면 많이 아까웠을 텐데, 우치는 다행히도 이렇게 유기될 위험이 높은 곳들을 현대적 흐름에 맞게 잘 살려 놓았다. 여기도 그러한 우치의 노력 덕분에 UNESCO 문화 유산에 지정될 수 있었고 말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 지역이 모든 곳이 온전한 상태로 활용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도로를 가로지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위 사진의 건물들처럼 아무도 쓰지 않는 공간이 이따금씩 보였다. 아무리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곳이라도 그 시절의 찬란했던 영광을 넘어서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이렇게 폐건물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말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러한 건물들은 안이 완전히 비어 있었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였다. 어린 친구들끼리 담력 테스트를 할 때 무모하게 들어가기 딱 좋은 공간이랄까? 괜한 걱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건물들이 지속적으로 방치되다간 도시의 미관상 그런 것도 있고 치안상 위험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안전한 편인 폴란드의 도시들과 비교해볼때 우치는 그렇게 안전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이런 공간들도 도시의 정체성과 유산을 잘 보존해서 잘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 아까 맨 처음에 폴란드에 발전이 필요한 곳들이 몇 군데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그 말이 지금 한 얘기와 같다. 마지막 우치 기행글을 정리하면서 우치에 대한 갈무리를 하자면, 우치는 노력하는 도시다. 아무래도 섬유 공장의 영향이 커서 그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우치는 새로운 발전 산업을 찾아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곳으로 보였다. 밤에 일부 지역은 으스스할 수도 있고, 어떤 곳은 퀭한 느낌도 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치가 이루어낸 성과들은 도시가 시대에 완전히 도태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하긴, 그렇기에 아직까지 폴란드 제3의 도시로 남아 있는 거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과거의 부지런한 흔적을 남긴 채 변화와 재생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도시, 우치. 그리고 그 안의 산업 지구, Księży Młyn. 교환학생 동기들이 얘기했던 것처럼, Księży Młyn을 비롯한 일부 폴란드 지역들은 지속적인 변화와 재생이 필요하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우치가 변화를 아예 추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치는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투자와 발전 부족으로 낙후된 다른 지역들을 생각하면 우치는 양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우치는 한국의 부산이나 대구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인구 감소가 매우 심하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부디 우치가 영화나 예술 산업으로서의 매력을 꾸준히 높여 섬유 산업의 그림자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다(마음 한편으로는 다른 경쟁력 있는 도시인 크라쿠프와 그단스크를 놔두고 굳이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상으로 투리의 세 번째 도시, 우치의 마지막 기행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외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폴란드인은 모를 수 없는 대도시, 우치. 투리 정도의 마이너한 취향이 아니라면 관광할 일도 없는 곳이겠지만, 보시다시피 이곳은 폴란드의 역사에 한 획을 남겼을 정도로 상당한 도시이다.
솔직히 다른 나라의 매력적인 도시들도 많기 때문에, 우치를 들러야 하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도록 하겠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거칠고 빛바랜 우치의 공장 벽 뒤에는, 지금도 창조의 숨결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