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수업 모두 기계를 사용하건만 어째서 이렇게 생생함이 다른가
한국의 대학과 비교해서, 유럽(내지는 폴란드)의 대학은 크게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는 시험을 망치면 재시험을 통해 점수를 만회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과학 실험이 딸린 수업일 경우 lecture class와 lab class의 개강일이 각각 따로라는 것이다.
첫 번째 특징에 대한 설명은 좀 더 나중 글에서 얘기하도록 하고,
두 번째 특징을 설명하자면 저게 왜 장점이냐.
많은 경우 lab class의 개강일이 학기가 시작하는 날짜보다는 좀 더 늦기 때문이다.
즉, 한국보다는 학기 초반의 피로도가 적은 편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투리의 교환학생 파견교는 lecture class의 출석이 점수에 반영이 안 된다.
한 마디로 유럽은 한국에 비해 일반적으로 출석에 관대한 편이라는 얘기.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점수의 비중이 높으니 공부에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 역시 모든 유럽의 학교를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투리의 한국 학교 중에서도 유럽과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대학이 있을 수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투리의 경험에 근거한 일반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일 뿐.
투리가 듣는 수업들 중에 전공 과학수업은 총 두 개였는데, 두 수업의 lab class 모두 4월에 개강이었다. 그중 하나는 수요일에 열리는 'Genetic Engineering'이었고, 이 수업 역시 이전 글에서 아주 열심히 설명했다. 나머지 하나는 목요일에 열리는 'Animal Physiology'로, 말이 동물생리학이지 사실은 인체의 생리를 다루는 과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쨌거나 이런 수업들은 투리 체감상 아예 별개의 두 과목을 듣는 것과 다를 바 없었는데, 그 이유가 이론과 실험 쪽의 교수가 완전히 별개이기 때문이다. 수업 행정 자체가 아예 다른 것이다.
심지어 'Genetic Engineering' 같은 경우는 같은 실험 수업 안에서도 담당 교수가 둘로 또 따로 나뉘었다. 5월 초까지는 교수 A, 그 뒤부터는 교수 B. 이런 식이었는데, 교수 A가 평가하는 항목에 대해 문의하고 싶다면 교수 B가 아니라 A에게 직접 연락해야 한다. 이와는 별개로 어떤 교양 과학 수업은 교수가 셋으로 나뉜다. 이렇듯 한국과 유럽의 수업 체계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지난 글에서 'Genetic Engineering'에 대해 다루었으니, 이번에는 'Animal Physiology' 수업에 대한 후기를 간단히 말하고자 한다. 한편 투리가 이전에 '학점은 높은데 시험이 없는 수업'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저 동물생리학이 개강하는 동안 이 수업은 뭘 했는지 근황을 좀 알려주겠다.
2025년 4월 3일, 목요일.
바로 전날 'Genetic Engineering' 실험수업도 개강했으니, 슬슬 남은 실험수업도 개강할 차례이다. 목요일 오후에 ESN 동기들과 교환학생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기회가 이제는 사라져 버린 셈.
그런 내 마음을 모르고, 목요일 오전 수업의 교수님은 WhatsApp 단톡에서 끊임없이 수업 내용에 대한 링크들을 올리고 계셨다. 그렇다. 지금 '학점은 높은데 시험이 없는 수업'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투리는 이 수업을 생일날 처음으로 들었기 때문에 이 수업을 편의상 '생일수업'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이 생일수업은 재학생들을 위한 정규 수업이 아니라 오로지 교환학생만을 위한 수업인데, 투리는 이 수업만큼 편한 수업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고? 일단 수업이 오전 11시 시작이다. 다른 수업들은 오전 9시나 8시 반으로 투리를 같은 기숙사의 다른 동기들보다 일찍 일어나게 만드는데, 이 수업만큼은 약간의 늦잠을 허용한다.
게다가 이 수업은 학점도 높으면서 시험을 보지 않는 유일한 수업이었다. 심지어 반영 요소도 출석 점수랑 발표 단 두 가지가 전부라서 대놓고 태도가 불량하지 않은 이상 수업에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어쩌면 이 수업이 투리의 대학생활 역사상 가장 편한 수업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러면 이 수업에서는 보통 뭘 하는가?
바로 '실습수업'이다. 무슨 말이냐? 이 수업의 정식 명칭은 'Climate change impacts on plant growth and crop yield'(부가적인 제목도 있는데 그 부분은 생략)인데, 적절히 번역하면 기후에 따른 식물과 작물의 생장에 관한 수업이란 뜻이다. 그런데 생산 작물의 생산량 등 여러 지표들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기기가 필요하지 않은가? 바로 그런 기기들을 실제로 직접 체험해 보면서 실습을 하는 것이다!
마침 이 날은 날씨가 아주 좋았기에, 교수님께서는 본인을 비롯한 학생들을 데리고 캠퍼스 안의 비닐하우스로 들어가셨다. 보통 관련자가 아니면 직접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갈 수 없는데, 우리는 특별히 수업 중에 있으므로 교수님의 허락하에 비닐하우스 안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수업을 들었을 당시 그렇게 교수님의 말씀을 열정적으로 들었던 것은 아니라서 저 기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기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식물의 광량을 측정하는 기계였던 것 같다. 쉽게 설명하면 식물이 광합성을 하려면 빛이 필요한데, 모든 종류의 빛을 쓰는 게 아니라 400nm에서 700nm 사이의 파장대 빛을 주로 이용한다. 식물이 초록색 빛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점에서 근거하는데, 쓸 수 있는 빛은 흡수하고 안 쓰는 빛은 반사하다 보니 그 반사된 초록빛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여하튼 해당 기계는 그 빛의 세기를 측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위의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저 검은 막대기의 동그란 부분이 빛의 세기를 측정하는 지점이다. 따라서 저 부위를 식물의 잎 앞에 갖다 놓고 측정 버튼을 누르면, 식물이 받는 빛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맨 앞에 돌출되어 있는 잎과 다른 잎들에 가려져 있는 잎이 받는 빛의 양은 서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수님께서는 같은 식물이라도 잎의 위치에 따라 따로따로 측정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본인은 큰 흥미가 없어서 본인 차례 이외에는 딱히 더 건드리지 않았지만, 이런 수업에는 꼭 열정 많은 친구들이 있는 법이다. 그 친구가 바로 이 수업의 리더(?) 되시는 아루잔이다. 아루잔은 투리에게 생일수업의 후기를 처음으로 전해준 친구이지만, 동시에 교수님께 우등생으로 총애를 받는 학생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수님은 단톡에 공지가 필요할 때 이를 가끔씩 아루잔에게 맡기기도 하셨다. 위의 오른쪽 사진에서 파란색 옷을 입은 친구가 저 친구인데, 확실히 학구열 자체는 투리보다는 높은 것 같다. 그녀는 직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다른 동기들과 함께 기기의 수치를 열심히 비교해 보았다.
반면 투리는 날씨가 좋아서 수업이 끝나고 빨리 건물을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원래부터 식물학 자체가 투리의 취향이 아니기도 했고,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야 할 동기마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수업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이 수업은 편한 수업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여러 기기들을 체험해 보면서 여러 가지 작물들과 그 관련 지표의 측정에 관여하는 기계들에 대한 감각을 익혔던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학점이 두둑한 생일 수업을 마치고, 문제의 수업은 'Animal Physiology'.
아주 잠깐이지만, 투리는 소위 '동물생리학'이라고 불리는 이 수업의 lecture class에 대해서는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다. 나이 지긋한 교수님이 2~30분 늦게 수업을 시작한다거나, 전체적인 내용이 한국에서 배운 것들과 큰 차이가 없다거나 말이다.
그런데 배운 내용은 별 차이 없어도, 어려운 건 어렵다. 사실 대학교를 나와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것이다. 좀 어려운 전공과목 같은 경우는 한 번 수업 듣고 나중에 뒤돌아보면 수업 내용이 기억이 안 나는 거 말이다. 듣기로는 학점 4.5점 만점 중 4.5로 졸업한 사람도 시간 지나니까 본인도 공부한 거 다 까먹었다는데, 투리라고 오죽하겠는가.
이걸 영어로 듣고 있으니, 애초에 흥미도 없었던 데다 별의별 생소한 영단어들까지 출몰하니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lab class는 과연 어떻게 다를까.
처음 지정된 장소 안에 들어가니, 강의실 안은 컴퓨터실에 가까운 실험실이었다.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저렇게 큰 스크린이 칠판 앞에 있고, 그 뒤에 학생들이 앉을 수 있는 여러 책상들이 있다. 그리고 각 책상에는 여러 대의 컴퓨터들이 놓여 있다.
이 책상들의 앞에는 학습지 비스무리한 자료가 위 사진과 같이 나와 있다. 물론 저 학습지를 다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럴 시간도 없다. 왜냐하면 아까 사진에서 스크린 앞에 계셨던 교수님이 필요한 설명을 알아서 다 하실 테니까.
위 사진의 자료들이 교수님이 보여주시는 발표 자료이다. 여기서 이 수업에 대해 불편한 점이 있는데, 교수님께서 수업 자료는 절대로 공유하지 않으신단다. 저작권과 관련된 이슈 때문이라나 뭐라나. 그러면서 공부할 때 활용하길 추천하는 책을 알려주셨는데, 솔직히 외국에 와서 그런 책을 사면서까지 공부할 열정은 없었다. 대학 교재들은 양이 많은 만큼 비싸기도 하고 자리도 많이 차지하니까. 같은 동기한테 얘기를 들었는데, 어떤 책은 한화 10만 원을 넘어가기도 하니까 살 거면 차라리 중고로 사는 걸 추천했다. 가장 베스트는 책을 공유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래도 지금 보면 사진 촬영은 딱히 금지하지 않으시는데, 이마저도 작년까지는 철저하게 금지하셨단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동기의 도움을 받아 페이스북 단체채팅방에 들어가 보니, 어디서 구했는지 수업 자료가 공유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학생이 공부할 수 있도록 자료는 공식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하지만, 뭐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차피 이렇게 암암리(?)에 공유되는데 굳이 강의 홈페이지에 공유를 안 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
어쨌든 수업 방식을 마저 설명해 보자. 교수님이 해당 주차에 필요한 내용들을 모두 설명하면, 아까 보았던 학습지 뒤쪽의 연습문제들을 모두 풀어봐야 한다. 문제를 풀려면 여러 실험들을 수행하면서 수치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 수행 방법이 바로 사진 위의 컴퓨터 화면이다. 학습지에 따르면 컴퓨터 안의 어떤 프로그램을 실행하라고 하는데, 그러면 저렇게 플래시 게임처럼 생긴 가상 실험 프로그램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다.
문제 자체를 푸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학습지 안에 저 프로그램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지시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진에 나온 수업의 주제는 '신경 전달'인데, 전압의 수치와 자극을 주는 대상에 따라 결과값이 어떻게 다른지 묻는 문제의 경우 프로그램 안의 'Voltage' 양을 늘리거나, 커서로 특징 물질을 옮기라는 식으로 설명이 구체적으로 되어 있다. 만일 어떤 현상에 대해 이유를 묻는 문제가 나온다면, 학습지 안의 내용을 참고하면 된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답을 체크하고, 그걸로 수업이 끝난다. 영어를 기본적으로 읽고 쓸 줄 안다는 전제만 있다면 진도를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투리의 생각을 말하자면, 실제 대상이 아니라 컴퓨터 안의 가상 물질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 거니 기분이 이상했다. 말만 실험이지, 정작 하는 건 시뮬레이션이나 돌리는 느낌이랄까? 아니, 느낌이 아니다. 왜냐하면 저게 사실 그 자체니까. 그래서 수업이 끝날 때는 이런 식으로 버츄얼 실험만 하다가 끝내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진짜 실험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귀찮았겠지만, 학업만을 기준으로 두었을 때 그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아마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라 그런 걸 수도 있겠다만.
이상이 마지막 실험 수업까지 개강한 4월 3일의 폴란드 라이프 후기였다.
결론은, 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이고, 기기를 쓴다는 점도 똑같지만, 두 수업의 진행 방식은 상극이었다는 점.
모든 폴란드 교환학생이 투리와 같은 라이프를 걸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실제 교환학생의 경험담을 듣는 것은 그 경험에 무지한 분들께 충분히 참고할 만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
이 글을 읽는 교환학생 꿈나무 친구들에게 투리가 바라는 것은 그저 두 가지다.
하나는 조금이라도 외국 교환학생 생활에 대한 불확실성을 떨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본인의 글을 마음껏 즐기고 배워주길 바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