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를 배출한 나라의 실험수업이 궁금하세요?
벌써 이번 생을 16년째 학생 신분으로 지낸 작가 흑투리. 날 적부터 공부를 위해 태어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보통의 남학생들은 학창 시절을 이렇게 생각하며 보냈던 것 같다. 수업 시간은 항상 지루하고! 축구나 게임은 항상 즐겁고! 점심시간(오후 시간이면 종례시간)은 빨리 왔으면 좋겠고! 앗, 투리의 독자 형제들 중에 그렇지 않은 형제가 있는가? 있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적어도 본인의 주변 남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여기면서 초중고 인생을 살아간 것 같았다.
본인도 그런 점에서는 남들과 똑같았는데, 대학생활이라고 크게 다를 게 있겠는가?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이어지는 자유여행이 끝나면, 본인을 기다리는 것은 귀찮고 지루한 수업시간! 더욱이 4월 이후부터는 비교적 개강일이 늦는 실험수업들마저 열리는 바람에 학업의 피로도는 커져만 간다. 그나마 투리는 두 가지 포인트에서 행운인 부분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월요일 아침 수업을 취소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바르샤바생명과학대학교 교환학생은 최소 요구 인정학점이 20 ECTS였는데, 타 수업들을 통해 학점을 맞춘 덕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수업들이 폴란드에서 진행되니 그나마 이색적인 기분은 들었던 점이다.
자, 여기서 투리의 전공이 무엇인지 기억하시는 독자 분들 계신가? 본인의 현생 전공은 '생명과학과'인데, 학교 이름을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즉 자연계 소속 학생이라는 말씀~그런데 여기서 '자칭' 폴란드 잘알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아니, 그 유명한 퀴리 부인과 코페르니쿠스를 배출한 국가인데, 그래도 과학에 한해서는 수업 수준이 한국보다는 낫지 않을까?"
이론적으로 대답하자면 틀린 말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현대과학에 폴란드가 미친 영향은 한국보다 크니까 말이다. 비록 프랑스 신분으로 받았지만 퀴리 가문의 상당수가 노벨상 수상자였고, 나치 독일의 '에니그마' 해독 기초를 마련한 것 역시 폴란드의 수학자들이었다. 적어도 수학이나 화학에 한해서는 기반이 튼튼한 셈이다. 사실 음악이나 인문계 쪽도 폴란드가 우수한 편이긴 하다. 지금도 피아노 분야에서는 폴란드로 유학을 가는 학생들이 많은 편이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도 다섯 명이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뭐랄까, 2010년대 이후의 기초과학 지표를 기준으로 하면 오히려 한국이 더 높은 편으로 보인다. 객관적으로 네이처 인덱스나 OECD 과학기술 경쟁력 지수를 보면 한국의 점수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을 목적으로 꺼내는 말이 아니라 단순 수치상으로만 봤을 때 그렇다는 거다. 한때 유럽을 호령한 시절도 있던 폴란드인데, 한국이 협력해서 참고할 부분이 어떻게 하나도 없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여행글을 제외하면 투리의 '폴란드 대학교 과학수업 Life'을 담은 글들이 꽤나 많이 올라올 것으로 예상된다. 말로만 듣는 것보다, 투리가 실제로 경험한 학교생활을 보여주는 게 우리의 교환학생 꿈나무들한테 더욱 와닿지 않을까 싶다. 비록 모든 폴란드의 학교 수업들이 투리의 학교와 같은 방침으로 운영되지는 않겠지만, 폴란드의 학교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치 여행이 끝난 다음 날 아침. 비몽사몽한 눈으로 하루를 시작한 투리는 냄비에 우유 탄 시리얼로 대충 아침을 때운 뒤, 그날의 수업을 준비한다. 한국과 달리 폴란드의 시리얼은 대부분이 단맛 없는 브랜드라 먹는 느낌이 밍밍했지만, 뭐라도 뱃속에 들어가는 게 어디인가. 나중 되면 이것마저 피곤해져서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끝내기도 한다. 부디 독자 여러분은 이런 귀차니즘에 한해서는 본인을 본받지 말아 주시길.
2권에서 언급했던 월요일 오전 8시 수업이 있던 시절보다는 낫지만, 오전 9시에 시작하는 이 수업도 게으름뱅이 투리에게 그리 널널한 편은 아니다. 그걸 알아서 그런지, 교수님도 보통 20분 정도 늦게 오셔서 수업을 시작하신다. 정말이냐고? 정말이다. 들리는 말로는 폴란드 학교에서 이런 일은 상당히 흔하다고 한다. 학생들이 말하길 교수와 학생의 이동 시간을 위해 여유롭게 시작하는 거라나 뭐라나.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5분 늦게 혹은 정시에 시작하는 경우도 있어서 완전히 방심할 수는 없다. 게다가 저런 수업들은 보통 진행하시는 교수님이 나이 지긋한 경우가 많고, 교수님이 젊으시거나 교환학생용 수업 같은 경우는 시작 시간이 정시와 큰 차이가 없을 확률이 높다. 본인이 수강한 수업이 어떤 스타일인지는 직접 강의실에 들어가셔서 확인해 볼 것!
아주 예전 글에서 언급했지만, 이 학교의 과학계열 전공수업은 lecture와 lab class로 나뉘어 각각 다른 시간대에 따로따로 진행된다. 여기서 lecture class는 출석 점수가 반영이 안 되어 자유로운 편이지만, lecture class에서 배운 내용도 시험 범위에 포함되므로 너무 의도적으로 많이 빠지면 좀 곤란하다.
참고로 위 사진들의 자료는 'Animal Physiology'라는 수업의 lecture class였는데, 이때 교수님이 딱 한 번 출석을 부르신 적이 있었다. 바로 첫 수업이었다. 본인은 처음에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면 귀엽게 손을 들고 'Here~'나 'Yes!'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정답은 'Presence~'였다.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대사라 처음에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도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저 멘트가 더 대학생다운 대답인 것 같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출석 멘트 역시 수업마다 다르고, 중요한 건 교수가 학생을 확인하는 것이니 딱히 멘트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어쨌거나 그날도 외국의 수업이라는 낭만만 잇빠이 채우고 내용이라곤 하나도 못 얻어간 채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을 준비하는데, 바로 이 수업이 이번 글의 메인 주제이다! 왜냐하면 이 수업이 투리가 처음으로 듣는 전공실험 수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부터 투리의 글을 애용해 주신 독자 분들이라면 2권에 이미 실험수업이 올라가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투리가 말하고자 하는 수업은 '전공수업 실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길. 개인적으로 본인은 그 수업을 전공수업에 낄 축에 속하지도 못하다고 본다. 투리가 말하는 실험은 기구들을 가지고 사람 몸이나 조금 건드리는 특정 테스트가 아니라, 실험실에서만 실행 가능한 진짜배기 실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 이 실험수업에 대해 본격적으로 소개해볼까. 투리의 첫 전공실험 수업은 'Genetic Engineering'으로 4월 2일, 수요일 오후 1시에 시작되었다. 첫 시간에 들어오신 교수님께서는 간단히 OT를 진행하신 다음 수업을 나갔는데, 이 수업의 주제는 'Reporter Gene(리포터 유전자)'이었다. 생물학도에 뜻이 없는 독자 분들을 위한 배려로 내용을 쉽게 설명을 하면, 생물은 모두 유전자가 있다. 그런데 유전자는 모든 부위가 항상 발현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일부만 발현된다. 그중에서 관심 있는 유전자가 발현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유전자를 삽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 삽입되는 유전자가 Reporter Gene이다.
위의 사진들 중 맨 위의 표에 있는 내용이 모두 Reporter Gene 내지는 그와 유사한 유전자 탐지 수단들인데,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여러 종류가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단연 대중적이고 잘 알려진 것은 'Green Fluorescent Protein(초록색 형광 탐지 단백질, 약칭 GFP)'이다. 비록 유전자가 아닌 단백질이지만, 이 물질은 다른 수단들과 달리 살아 있는 세포를 대상으로 쓸 수 있다는 장점 덕에 널리 쓰이고 있다. 또한 GFP는 자외선이나 청색광을 받으면 다른 보조 물질 없이도 녹색 형광을 아주 잘 내뿜기도 한다.
쉽게 설명하면 이런 내용인데, 이날 우리가 실행할 실험이 저 GFP를 이용해 식물의 형광을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어떤가? 혹시 재미있게 느껴지는 예비 대학생 분들이 계신가? 그렇다면 주저 말고 생명과학과에 발을 들이시길! 대학원에 가면 이런 류의 실험들을 아주 지겨울 정도로 반복할 것이니, 그전에 해당 학부에 들어가서 실제 모습이 그대들이 상상했던 바와 얼마나 일치했는지 확인하면 좋을 것이다!
불행히도 투리는 생명과학과에 들어와서 그 환상이 깨진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는 과학자가 꿈이었는데, 막상 커서 실험을 하니 흥미는 하나도 없고 머릿속에 남는 것도 적었다. 특히나 외워야 하는 영어 전문용어들은 뭐가 이렇게 많은지! 아마 이 브런치스토리의 기행글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지난 학기의 수업을 꺼내면서까지 배웠던 내용을 더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브런치 플랫폼이 수업을 복습시키는 선기능(?)을 해주는 셈.
필수적인 배경설명은 끝났고, 이제부터 실험 시작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기본적으로 실험실에 들어가서 실험을 진행할 시 실험복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벌써 생명과학과 짬이 4년째를 향해 가는 투리가 설명을 하자면, GFP 탐지 실험은 아주 초보적이고 보편적인 축에 속한다. 그럼에도 룰은 룰! 한 번 실험실에 들어왔다면 어떤 유해한 화학 물질들로부터 노출될지 모르니, 실험복은 여러분의 안전을 위한 아주 기본적인 보호장치인 셈이다. 어떤가, 이제야 실험수업의 품격이 조금 느껴지는가?
관심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그래도 글의 진행을 위해 실험 과정을 간략히 말하자면 일단 식물 잎을 파쇄할 파쇄기와 GFP 유전자를 지닌 플라스미드(생명체와 별개로 독자적으로 복제 가능한 원형 DNA)를 준비한다. 그리고 액체 질소 안에 냉동시킨 적절한 식물 잎을 파쇄기로 파쇄한다. 위 사진을 보면 회색 박스가 보일 텐데, 저 안이 바로 식물들이 액체 질소 안에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교수님께서 박스를 여시니, 사진에는 안 보이겠지만 액체 질소가 수증기 형태로 하얗게 퍼지고 있었다.
사진 위의 식물들이 바로 이 실험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이 사용할 실험 대상 되시겠다. 여기에서 학생들은 각각 세 명이서 조를 짜야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 수업은 교환학생들보다 재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수업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수업은 아까도 말했듯 전공수업이라 하지 않았는가? 당연히 재학생을 위해 편성된 수업이다 보니 체험판 수업을 지향하는 교환학생이 많을 리가 없는 것이다. 투리는 졸업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이 과목을 선택한 것일 뿐.
그러다 보니 조원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졌는데, 본인의 파트너는 유일하게 같은 교환학생 기수(?)인 우크라이나인 제인이 되었다. 사실 교환학생 이벤트 때 이 친구를 마주쳤던 적은 바르샤바 투어 이후로 없었는데, 제인과 결정적으로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는 이 전공수업의 lecture class 때였다. 우연히 이 친구 옆자리에서 수업을 들었었는데, 마침 교수가 팀별 활동을 제안했을 때 당시 한 재학생이 우리한테 동시에 수업 질문을 했던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동시에 대답을 해 주었고, 그 일을 결정적인 계기로 우리 둘은 서로 대화를 턴 사이가 되었다.
선택지가 없었던 나와 그녀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찾게 되었고, 이에 따라 ESN 도우미 알랴까지 합세하면서 조가 완성되었다. 학구열이 높은 제인의 주도 하에, 우리는 식물 배지 아래에 우리의 이름과 조를 적은 뒤 실험을 시작했다.
마저 남은 실험 절차를 소개하면, 파쇄한 식물 잎을 완충용액(buffer)에 넣은 다음 원심 분리한 후 슬라이드 글라스로 옮긴다. 그 슬라이드 글라스를 형광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실험 끝!
어떤가, 직접 사진들과 실험 과정들을 보니? 생명과학과 연이 없는 사람들은 "우와, 대단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대학원생 선배님들은 "귀엽네. 자식들"이라고 여기면서 이 글을 보지 않을까 싶은데, 투리가 봤을 때 한국과 크게 다른 건 없다. 그도 그럴 게, 이제는 한국의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낮은 편은 아니라 어지간한 국가를 가도 엄청난 차이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면 투리가 생명과학과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도 GFP 실험은 흔하게 이루어진다. 이건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다.
첫 수업이라서 그런지 해당 실험은 투리도 큰 어려움 없이 무난히 진행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교수님의 도움을 통해 투리는 형광색으로 빛나는 식물(이었던 것)의 모습을 아주 뚜렷이 볼 수 있었다. 결과를 보면서 드디어 실험수업이 끝이라는 걸 깨닫는 그 안도감이란!
정리하자면 투리는 바르샤바생명과학대학교(SGGW)라는 폴란드의 한 대학교에서 'Genetic Engineering'이라는 수업을 수강했는데, 지금까지 소개한 실험이 투리가 이 수업에서 처음으로 실행한 실험이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깨달은 거지만, 아마 저 수업이 투리가 대학생 때 실험을 수행한 가장 마지막 수업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소위 '막학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의 투리는 실험수업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귀국한 지금, 저 수업 때 한 모든 활동들이 투리가 한국에서는 경험해 본 적 없는 것들은 아니다. GFP 표지나 블로팅(Blotting) 같은 실험들은 투리가 한국에서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교 고학번이 되어 감에 따라, 요새는 투리의 본교 교육과정에서 실험을 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자연과학에 편성되는 예산이 갈수록 적어져서 그런 것일까. 그런 면에서 지금은 바르샤바생명과학대학교에서 수행했던 실험 경험들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기분도 든다. 아무래도 생명 분야에 한해서 강점이 명확하다 보니, 투리의 본교에 비해 실험 기회가 정말로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인 학생한테도 개방적이었던 수업 분위기와 상냥했던 재학생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실험수업이 투리의 인생에 더 있을까 싶기도 하다. 정규수업을 외국인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귀한 일인데, 그 친구들이 책임감 있는 교환학생 동기들과 재학생 분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시간들이 그다지 그립지는 않다. 본인이 생물학에 흥미와 적성이 없는 건 어쩔 수 없어서 말이다. 투리는 다만, 그들과 함께할 기회가 있던 시간들 그 자체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