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린 대성당>, 동남부 폴란드 성당의 얼굴마담
매번 교회나 성당 얘기를 하면 느끼는 건데, 성당 기행글은 가톨릭이나 개신교 분들한테는 더 읽기 유리한 글인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 동정녀 마리아, 아브라함, 모세...가끔 가다 이런 분들이 인문서적 읽을 때 나오면 반갑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가톨릭과 개신교 여러분들에게 나머지 분들을 위해 배려해줬으면 하는 게 한 가지 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요한'하면 생각나는 분이 딱 두 명 있지 않은가? 그분들에 대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하하하, 잘 모르겠다고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학구열이 없거나 선데이 크리스천(?)이라면 잘 모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투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공부는 해야 하는 입장. 지금부터 투리가 쉽게 설명을 해드리겠다. 첫 번째 대표적인 요한은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 세례 요한은 메시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올 것을 예언하며 요단 강에서 세례를 베푼 인물이다. 세례를 베풀었을 당시의 요한은 낙타털 옷차림에 메뚜기와 야생꿀을 주식으로 삼은 독특한 인물로 남겨졌다고 한다.
두 번째 요한은 사도 요한(John the Apostle)! 지구인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 바로 이 분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과 신약성경의 여러 책들을 남긴 인물로, 예수에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제자로 알려져 있다. 어느 정도냐, 그는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의 품에 기대어 있던 제자로 묘사된다(요 13:23).
그런데 본인이 두 요한에 대한 얘기를 왜 하냐, 이번 글에서 소개할 성당이 이 두 요한을 함께 헌사한 성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성당은 루블린을 방문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마주칠 성당이기도 하다! 이 성당이 루블린에서는 나름 입지가 있는 편인데, 그래서 '루블린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거 아닐까? 사실 루블린 구시가지를 들어가기 전에 먼저 방문한 곳이 이 성당인데, 이번 글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가장 먼저 방문한 루블린의 관광지인 이곳을 한 번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뭐, 지루할 것 같다고? 잊지 마시길, 투리의 글을 읽으면 여러분의 여친이나 남친 앞에서 교양을 하나 더 어필할 수 있다는 걸~~농담이고, 투리도 글이 너무 재미없지 않도록 최대한 힘써보겠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루블린에 도착하고 체크인 시작까지 시간이 남을 것 같아서, 숙소에 가는 동안 뭘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구시가지에 들어가는 지도 경로에 큰 성당이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햇빛도 쨍쨍하고, 기온도 적당해서 돌아다니기에는 딱 좋은 상황!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때 수업 하나가 온라인으로 보충수업을 진행했던지라, 투리는 한쪽 귀에 이어폰으로 수업 내용을 들으면서 주변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보니까 교수님이 다른 이탈리아 학교에서 진행되는 실시간 수업을 우리와 공유하셨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머릿속에 남은 것은 없었다. 주변 풍경 구경하면서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까 위에 있던 사진이 루블린 대성당의 사진이지만, 주변의 다른 풍경들도 인상적이었다. 폴란드 인구의 대부분은 가톨릭 신자인데, 역시 이 부근도 가톨릭의 세가 강했던 것이다. 십자가 그림이나 가톨릭 인물의 동상들이 없으면 이제는 심심할 지경이기까지 하다. 여기에 편의점 Zabka까지 있다? 그럼 본인은 100% 폴란드에 있는 거다!
좀 더 가까이 가보니, 확실히 성당의 사이즈가 대성당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규모였다. 금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른 오후인지라 사람은 많은 편이 아니었다. 루블린 같은 소도시는 상대적으로 극동아시아 사람들이 적은 편인데, 신기하게도 카메라를 든 두 동양 남자가 본인 앞에서 성당을 관광하고 있었다. 중국계로 추정되긴 합니다만.
성당에 대한 소개를 좀 하자면, 해당 성당은 예수회가 1586년부터 건축 단계에 들어가 1631년에 완공한 건물이다. 그 후 몇 번의 파괴와 주인의 교체를 거듭하면서, 현재는 로마 가톨릭의 루블린 대교구 소속 아래에 있는 성당이 되었다.
제일 처음 완공된 해가 1631년이라고 하지만, 성당의 변화는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있었다. 예를 들면, 1752년 이 성당은 대화재로 인해 성 스탄이스와프 코스트카(St. Stanisław Kostka) 경당을 제외한 내부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때 당시의 예수회 건축가 프란치셰크 코지민스키(Franciszek Koźmiński)의 지휘와 요제프 마이어(Józef Meyer)의 내부 벽화 제작을 통해 성당은 다시 옛 영광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1841년에는 구조적 손상을 보수하면서 코라치의 포치코(Corazzi’s portico) 기둥이 새로 지어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다시 성당이 피해를 입은 과정에서 정면과 첨탑 배치가 일부 수정된 일도 있었다.
비록 지금은 예수회 소속의 성당이 아니지만, 처음 만든 주최가 예수회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투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은 이름만 들었을 때 '예수'가 있으니까 개신교 교파의 일종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예수회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도사제들을 보유한 가톨릭 수도회이다. 예수회의 주 설립자는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cio de Loyola)라는 전직 기사로, 회복 중 가톨릭 서적들을 읽고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 관한 환시를 경험하면서 수도자의 길로 나아갔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설립한 예수회는 한때 세계적으로 가장 왕성한 선교 활동이 일어날 정도로 영향력이 큰 수도회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고.
예수회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좀 많은데, 일단은 성당 안부터 들어가보자. 여기가 바로 성당 입구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예배당의 모습이다! 예수회의 초기 성당들이 그랬듯 이 성당 역시 바로크 형태의 미술 양식을 띠고 있다. 다만 로마 예수회의 양식 그대로의 형태는 아니고, 폴란드 고유의 장식적이고 극적인 구성도 이 성당 내부에 반영되고 있다. 그래서 폴란드 바로크 회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성당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보시다시피 제단을 보면 바로크 조각(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다만;)과 금박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천장은 트롱프뢰유(Trompe-l’œil) 기법으로 지어져 있는데, 해당 기법은 천장이 마치 하늘로 열린 듯한 착시 효과를 준다고 한다. 이런 기법을 사용한 배경에는 신앙과 예배를 통해 인간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표현하려던 예수회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참고로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성당 안에는 세례 요한의 순교 장면이 담긴 그림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까 이 성당이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성당이라는 거, 기억하시는가? 성당의 주보 성인은 성 세례 요한이라고 하는데, 그는 "진리의 증언자"로서 루블린 시민들에게 신앙의 상징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예언된 인물이라고 공인한 선구자라는 점에서, 그는 가톨릭교도들 사이에서 기독교 역사의 가장 중요한 성인들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 것이다.
이 성당에 대한 또 하나의 특징! 사진들을 보면 내부 벽화 하나하나가 그림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성당 내부를 처음으로 만든 요제프 마이어(Józef Meyer)는 성경 속의 내용에 기반하여 성당의 벽을 다채로운 벽화 양식으로 꾸몄다고 한다. 실제로 그가 만들었던 이 성당은 폴란드 초기 바로크 양식을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을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추후 소유주가 예수회에서 다른 수도회로 바뀌더라도 이 성당의 원형을 복원하려고 애쓴 거였겠지?
비단 이 성당뿐만 아니라, 예수회가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본래 예수회는 가톨릭이 루터나 칼빈 등이 주도한 개신교의 종교개혁에 맞서기 위해 꺼낸 대안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가톨릭의 재건을 위해 학문과 종교, 선교에 많은 힘을 쏟았고, 폴란드와 루블린 역시 그 영향이 닿았던 것이다. 이들은 예수회 대학(Jesuit College)을 만들어 여러 과목들을 교육했고, 바로크 미술을 동부 전역에 널리 전파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보수적인 개신교도들 입장에서는 그들이 개신교를 견제한 역사를 알기에 예수회를 긍정적으로 볼 리 없다. 실제로 지금 한국에서도 이들과의 연합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애초에 예수회가 가톨릭인 이상 개신교와 가톨릭의 연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보일 수밖에 없는 반응이다. 같은 구약의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이해의 차이로 인해 하나될 수 없는 운명이라니, 참 기분이 묘하다.
예배당을 다 둘러본 뒤, 투리는 마지막으로 성당 보물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성당 안의 설명서를 보니, 해당 보물관은 루블린 교구의 역사적 유산을 보관하는 공식 교구 보물실이라고 한다. 안에 들어가니, 한 직원 분께서 일반인은 출입 금지라면서 투리를 내보냈다. 그분이 영어가 부족해서 좀 고생하기는 했지만, 돈을 내고 안을 보고 싶다는 말을 겨우겨우 전달한 끝에 보물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가격은 30zt로, 오직 현금만 받는다는 점 참고하시길 바란다!
그런데 결제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의사소통은 끝나고 어떻게든 영수증은 받았는데, 지갑을 보니 현금으로 20zt밖에 남아 있지 않던 것이다! 유로 역시 환전 불가능한 데다 영수증을 끊은 이상 환불도 불가능하다고 해서 어쩔 줄을 몰랐는데, 다행히도 직원 분께서 나중에 내라고 하시면서 본인을 들어보내주셨다. 다시 이 성당을 방문할 때 10zt를 마저 내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안타깝게도 일정상 이 성당을 다시 돌아오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투리는 이 성당에 계속 10zt의 빚을 마음속에 두고 살아갈 것 같다.
보물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독자 여러분이 직접 보셔서 확인하시길 권장하지만, 짧게 설명하면 18~19세기 폴란드 가톨릭 문화의 정수가 담긴 전시물들이 모인 곳이다. 여러 성채 관련 유물이나 루블린 교구 설립 관련 문서, 주교들의 복식 등이 이 전시관 안에 구체적으로 남아 있었는데, 당시 성당이 예수회 성당에서 교구 중심 성당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썼던 물건들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이 인상 깊었다.
이상으로 '루블린 대성당'에 관한 전체적인 내용설명이 끝났다! 두 명의 요한에게 헌사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예수회의 바로크 성당. 이 조건에 해당하는 성당이 한 개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루블린 대성당'은 그들 중 폴란드 동부에서 가장 대표적인 성당이 아닐까 싶다! 어떤가, 확실히 성당은 한국의 일반 교회들에 비하면 역사와 미술적 가치가 높은 곳들이 많지 않나? 특히나 유럽은 로마를 통해 기독교가 퍼진 만큼 역사가 깊은 성당들도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투리의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폴란드는 가톨릭의 영향이 짙은 국가에 속한다. 아마 이번 글이 그 영향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예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 영향은 단순히 성당 건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폴란드 사람들의 삶에 큰 변곡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학문, 정치, 나아가 역사적인 순간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어떻게? 그 부분들이 바로 투리가 지금까지 쓴 기행글들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나올 기행글들 역시 그 과정이 세세히 담겨있을 것이다. 투리의 글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