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예약한 최초의 호스텔

처음으로 일면식 없는 남자들과 맞이한 나날들

by 흑투리


눈물의 교환학생 합격목걸이를 받은 2월 초부터 시작한 브런치 글이!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처음 프롤로그를 썼을 때만 하더라도 비자 하나 못 받을까 봐 안달복달했던 본인이었는데, 이제는 교환학생 학기뿐만 아니라 그다음 학기마저도 끝이 났다. 그럼에도 브런치 글을 쓸 때마다 당시의 기억을 생각하면 여전히 얼마 전 일처럼 느껴진다. 마치 교환학생 학기만 투리의 인생에서 길게 흘러간 느낌이랄까. 그렇게 보면 '즐거운 경험을 하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라는 말은 틀린 말 같다. 정확히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가 맞는 표현 아닐까.



그동안 남긴 투리의 글들이 적지 않은데, 여기까지 함께한 투리의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글 하나하나를 쓰려면 최상의 컨디션에서 하루, 길게는 이틀까지 투자해야 한다. 라이킷이라도 눌러주는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본인은 절대로 이 글을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회수나 라이킷이 글의 품질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본인의 글을 즐겨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흐뭇한 마음이다.



사실 본인이 이 플랫폼에서 연재할 수 있었던 제일 큰 요인은 '교환학생 경험' 그 자체이기도 하다. 교환학생이 되지 못했다면 본인은 여기서 글을 쓸 엄두도 못 냈을 테니까. 브런치에서 글을 지속적으로 연재할 수 있었기에, 투리는 본인의 진로에 대한 긴 방황을 마칠 수 있었다. 학과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고 취업 시장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보면서, 역시 투리가 갈 길은 ''밖에는 없는 것 같다.



20250403_185522.jpg 폴란드 바르샤바생명과학대학교(SGGW)의 해질녘 캠퍼스



서론이 길었다. 이번 글은 2025년의 마지막 글이니, 딱딱한 기행글이 아니라 루블린에서 있었던 가벼운 썰이나 하나 풀어보고자 한다. 여행을 많이 가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숙박 시설들 중에는 '호스텔'이라는 곳이 있다. 호텔 비용이 부담스러운 여행객들을 위해 생긴 가성비 숙박지인데, (약간씩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다른 여행객들과 한 방에서 함께 숙박하는 장소다. 오늘은 본인이 처음으로 예약한 호스텔에서 느낀 것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투리의 몇몇 충실한 독자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 그런데 호스텔이라면 크라쿠프 기행글에서 이미 다루지 않았어요?"



맞는 말이다. 루블린을 여행하기 전에 투리는 크라쿠프에서 호스텔을 한 번 이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호스텔은 투리가 아니라 ESN 위원회에서 단체로 예약한 곳이고, 함께 머물렀던 사람들도 다른 교환학생 동기들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솔로 여행자로서 제대로 된 호스텔 체험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지금 얘기할 경험은 투리가 홀로 마주한 찐 호스텔 이야기와도 같다. 큰 영양가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호스텔 첫 경험을 이렇게 느끼는 한국인도 있구나 정도의 느낌으로 편하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투리가 처음으로 예약한 호스텔은 본인이 예약한 숙박 시설들 중에서 가격이 제일 쌌다.

생각해 보면 놀라운 게, 이 호스텔은 제일 싼 주제에 퀄리티도 나쁘지 않았다. 어느 정도였냐고?



KakaoTalk_20251122_193347772.jpg 투리가 예약한 그 호스텔. 뒷광고 아닙니다잉



이런 느낌이다. 당연히 사진으로 보니 어느 정도의 미화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이 호스텔의 숙박비는 3박 4일에 9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이었다. 3일 자는데 9만 원? 아무리 내수로 사는 소도시라도 이런 가격은 찾기 어렵다. 당시에는 감이 없어서 별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예약을 완료하니, 숙박지에서 긴 폴란드어로 본인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번역을 해 보니 별 내용은 없었고 그저 예약을 확인했다는 기본적인 내용이었지만, 그때는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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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맞춰 호스텔이 있는 곳으로 가니, 이렇게 건물 안에 뻥 뚫린 공간 옆쪽에 커다란 대문이 놓여 있었다. 손잡이를 내린 다음 당겨서 문을 열려고 했는데, 아무리 흔들어봐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곤란해진 상황에 호스텔로 전화를 거니, 폴란드어로 전화를 받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이 분은 영어가 통하는 분이셔서, 투리가 영어로 물어보니 손잡이를 당기기만 하면 문이 열릴 거라고 친절히 알려주셨다. 폴란드는 영어가 상대적으로 덜 통하는 편이라 이런 소도시에서 영어가 안 통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폴란드는 손잡이를 돌리지 않아도 열리는 문들이 한국에 비해 많은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까 전화를 받은 안내원이 데스크에서 친절히 본인을 반겼다. 그분은 본인의 여권을 확인한 뒤, 바로 호스텔 안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셨다. 당시에는 투리가 호스텔이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아서, 부엌이나 샤워시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다.



20250404_165013.jpg 실제 호스텔 안 모습.



그래도 위의 실물 사진을 보면, 방 분위기가 앱에 나와 있는 사진들과 그리 큰 차이는 없지 않은가? 그 외에도 부엌이나 화장실, 샤워시설도 청결도가 꽤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런 데가 시가지랑 가까우면서 3박 4일에 10만 원도 안 된다니, 군말 없이 이용해야겠죠잉? 낯선 사람들과 밤을 보내는 경험은 처음이라 초반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가격을 보니 입이 쏙 들어가는 투리였던 것이다.



어느 정도 호스텔 구조 파악을 끝낸 뒤, 안내원은 투리에게 열쇠다발을 건넸다. 하나는 숙소로 가는 문 열쇠, 다른 하나는 서랍 열쇠였다. 아무래도 여러 명이 한 방을 공유하다 보면, 도난이나 다른 머시깽한 상황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럴 때 귀중품 등을 보관한 서랍을 보통 호스텔에서 마련한다. 운 좋게도 투리는 호스텔에서 도난을 당한 경험은 없었다. 본인이 물건을 빼먹고 간 거라면 모를까.



20250404_152837.jpg 루블린의 한 피에로기 식당. 투리는 여기서 한 끼를 먹었었다.



열쇠를 갖고 들어갈 방을 찾는데, 한 투숙객이 본인을 보고는 Dark(본인의 성) 가 맞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투숙객은 4번 침대가 혹시 본인의 침대냐고 물어봤다. 확인해 보니, 본인이 배정받은 침대는 1번이었다. 알고 보니, 이 호스텔에도 본인과 같은 성의 한국인이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와, 이런 소도시에도 한국인이 존재할 줄이야. 한국인은 생각보다 많이 다양한 곳에 있구나.



아무튼, 그렇게 투리는 여러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구경하며 3일 동안 한 호스텔 안에 머물렀다. 하루, 이틀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조금씩 바뀌었고, 같은 방을 썼던 첫날밤의 한국인 남자도 다음 날 떠났다. 각자 예약한 기간이 따로 따로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본인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만 이 호스텔에 머무르면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딱 두 가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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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에피소드는 한 중년 폴란드 아저씨와 대화한 일이었다. 이 아저씨를 본 날은 첫째 날 밤이었는데, 숙소로 돌아오니 위쪽 오른쪽 침대(위의 숙소 사진 참조)에서 한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눈을 마주치긴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짐을 정리하던 찰나, 갑자기 그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어이!"


"? 저요?"


"응. 너. 너, 어디서 왔어?"


나이가 있는 폴란드인이라 영어를 못할 것 같은 편견(?)과 달리 남자는 생각보다 영어 실력이 좋았다. 그분 입장에서도 비유럽인이 이런 곳에 오는 게 신기했나 보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그래? 어떻게 오게 됐는데?"


"교환학생이요. 지금 바르샤바에 있는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있습니다. 지금 폴란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중이고요."


"아, 그런데 왜 루블린으로 온 거야?"


"여기가 폴란드 추천 도시들 중 하나라서요.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여기도 궁금해서 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다 보니, 이 남자도 폴란드 국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게 취미인 것 같았다. 첫인상이 뭔가 술을 많이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의외로 그날만큼은 더 마시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밖에서 왁자지껄한 파티 소리가 들렸는데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걸 보면 말이다.



그 뒤의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저씨가 본인한테 아는 폴란드어가 어떤 게 있냐고 물어봤던 걸로 기억한다. 얘기를 하다가 'Satellite'라는 단어의 폴란드어가 'Satelita'라는 걸 이 분한테서 배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당시 본인이 알던 폴란드어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네/아니요" 정도가 전부였을 것이다. 물론 지금 폴란드어 실력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말이다.



폴란드어 테스트를 끝으로 우리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지만, 투리한테 이 기억이 제일 인상적으로 남았던 이유는 이날이 투리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호스텔의 첫날밤이었기 때문이었다. 투리는 원체 불안감을 항상 달고 다니는 성정의 인간이라서, 모르는 백인들과 하룻밤을 보내는 게 처음에는 긴장되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외국인인 본인을 해코지하면 어떡하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날 만난 아저씨는 본인에게 욕설을 내뱉지도 않았고(당연히 그럴 이유가 있지도 않았지만), 그저 편하게 말을 걸기만 했다. 참고로 이 날 이후로 호스텔에서 모르는 사람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이 별거 없는 에피소드가 투리에게 더욱 인상 깊게 남았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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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에피소드몸집이 큰 거구 아저씨를 목격한 일이었다. 그, 미국 영상을 보면 비만의 정도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 일상생활이 걱정될 정도의 사람들을 본 적 있을 것이다. 투리는 그 사람을 이 호스텔에서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이 아저씨를 처음으로 마주친 날은 둘째 날 오후였는데, 방으로 들어오니 뱃살이 비계덩어리처럼 넘쳐흐르는 거구의 아저씨가 왼쪽 아래 침대에 앉아 있었다. 팬티 차림으로 앉아 있던 남자는 제대로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북미에서나 볼 법한 그 충격적(?)인 모습을 폴란드 루블린에서 보게 될 줄이야. 어지간해서는 투리도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지만, 시선이 자꾸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살냄새마저 남자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조금만 그에게 가까이 가도 그 향기에 눈이 저절로 찌푸러졌다.



다행히도 그 남자하고 어떤 트러블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틀 동안 정말로 생각이 많아졌다. 약간 편견일 수도 있지만, 가끔 오타쿠 매장이나 영화관에서 불쾌함을 유발하는 덩치 큰 분들(?)을 목격한 제보를 받지 않는가. 그런 분들은 차라리 화라도 나지, 이 아저씨는 그걸 넘어서 건강이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심지어 이 분은 오타쿠 거구 분들과 달리 방금 씻은 몸에서도 살냄새가 진동했다(그냥 냄새가 많은 체질일 수도 있겠지만). 뭐랄까, 살면서 수명이 길지 않은 예감을 느끼게 한 사람을 마주한 기분이랄까...?



이건 여담이지만, 사실 투리는 환경적으로 살이 찔 수가 없는 체질이다. 평소 먹는 걸 그렇게 밝히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요리하는 것도 귀찮아서 식사를 하루 두 끼로 때우기 일쑤니까. 이런 식단 때문에 나이 드신 분들과 마주치면 만날 때마다 살이 빠졌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래서 투리는 그 아저씨를 봤을 때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살이 찔 수 있을까 싶었다. 비아냥이나 인격모독이 아니라, 진짜로 순수하게 궁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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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투리의 개인적인 견해지만, 아마 그 남자는 폴란드인이 아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폴란드에서 그 정도로 초고칼로리 식단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투리가 본 폴란드인들은 상당수가 날씬한 분들이었고, 그 아저씨 이외의 다른 초고도비만 사람들은 보지도 못했다. 부디 아저씨가 식단을 잘 관리해서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상의 썰들이 투리가 인생 최초의 호스텔에서 있었던 시답잖은 이야기들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교환학생 기행글 시리즈에서 큰 의미가 있나 싶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사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글의 매력을 높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담이야말로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나타내는 좋은 장르니까 말이다.



아무튼,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이야기도 그에 비례해 풍족해진다. 누군가에게 평범한 일상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법. 투리는 이 사실을 유럽에서 제일 많이 체감했다.



20250404_210301.jpg 루블린 거리.



지금도 파트너 유한열과 대화해 보면, 한열이도 본인이 교환학생을 정말 잘 갔다 온 것 같다고 말한다. 단순히 시야가 넓어졌다느니, 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을 누렸다느니 하는 진부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첫째투리는 본인의 적성이 글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으며, 둘째여행의 즐거움을 깨달았고, 무엇보다 셋째유럽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가 높아졌다! 추후 작가나 인플루언서로서 활동한다면 이런 부분들이 아주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요새 환율을 보면 예전 같지 않다. 혹자들은 작금의 환율이 IMF 시절의 환율을 능가했다고도 한다. 슬프게도 이 기조는 내년에도 유지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걸 생각하면, 어쩌면 투리가 올해 교환학생 학기를 보낸 선택본인의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앞으로의 유럽 여행에는 먹구름이 끼겠지만, 그만한 한때의 시절을 보낸 게 어디인가.



그럼에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환율의 공포를 무릅쓰고 유럽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독자 분들이 계신가? 그렇다면 투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왕 갔다 오는 거, 갈 거면 제대로 즐기다 와라!



...이상, 투리스럽지 않고 (내 파트너) 한열스러운 대답이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분들 모두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환율을 극복할 정도로 뛰어난 분들이 되시길 기원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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